로그오프
컴퓨터나 인터넷 관련 용어가 가득 담긴 사전을 굳이 뒤져보지 않아도 로그오프(Log off)가 어떤 의미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전적으론 '컴퓨터 시스템의 사용을 끝내고 접속을 끊는 일'을 의미하는데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사용자가 하루 종일 일하고 퇴근 시간에 맞춰 전원 버튼을 눌러 시스템과 데스크에서 벗어나는 일이죠. 컴퓨터, 노트북,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 디지털 시대의 디바이스에는 모두 로그오프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로그인과 로그온도 존재합니다. 출근과 동시에 로그온, 퇴근과 함께 로그오프라지만 실제로 그러한가요?
어느 날 TV 화면에 흘러나오는 자막 뉴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ATM 기기에서 실물카드가 없어도 QR코드만 있으면 현금 입. 출금 가능해진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ATM 앞으로 달려갔는데 손에 스마트폰 하나만 쥐고 있을 뿐 주머니에 먼지만 있던 적 있나요?
"아 카드를 두고 왔네"
스마트폰만 있으면 만능이라고 생각했는데 은행 카드 없어 당황스러웠던 적. 하지만 이제는 실물카드가 없어도 QR코드만 있으면 된다고 하니 스마트폰은 점차 만능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스마트폰이 없는 경우라면 어떨까요? 난 이렇게 만능이 되어가는 스마트폰에 365일 24시간 접속이 되어 있고 결코 끊기는 법이 없어 실제로는 로그오프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회사에 있는 노트북에 전원을 끄고 시스템으로부터 벗어나는 경험을 매일 같이 하고 있지만 지금도 케이블에 연결되어 배터리를 충전하고 있는 스마트폰 앞에서는 늘 로그온 되어 있는 셈인 거죠.
디지털 시대의 로그오프란 가능하기나 할까요? 어떤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 눈을 감고 명상을 한다고 했습니다. 10분에서 30분까지 시간을 늘렸으니 그만큼 일어나는 기상시간도 빨라졌겠죠. 그리고 1시간까지 늘려 아침햇살 맞으며 평화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잠깐의 시간이지만 그 시간 동안 휴대폰의 취침 시간은 조금 늘어나는 셈이겠죠.
"근데 명상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거예요?"
참 바보 같은 질문이었죠. 명상에 어떤 방법이 있다기보다 눈을 감고 잡생각을 지워버리는 것, 무엇보다 스마트폰과 떨어져 온전히 '나' 자신을 느끼는 것이 어쩌면 디지털 시대의 로그오프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물론 명상이 끝나고 온전히 일상에 로그인하게 되겠죠. 로그온 되어 있는 시간 동안 나는 또다시 어딘가에 접속해 언제 그랬냐는 듯 온라인 세상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회사에 있는 시간이면 인트라넷에 '9 to 6' 머물러있어야 하고 그보다도 더 오랜 시간 동안 슬랙이나 카카오톡 단톡방 등 어떤 플랫폼에서 떨어질 수 조차 없게 될 것입니다. 점심을 먹을 때도 메뉴 하나 찾으려고 포털에 접속하고 맛있게 플레이팅 된 음식이 나오면 SNS에 접속하게 되며 저녁 약속 위해 어딘가로 찾아갈 때도 지도 앱을 켜고 사람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는 조금도 변함없이 어딘가에 로그온"
스마트폰이 없던 그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누군가의 아날로그는 디지털에 가려져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도 이렇게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접속해 도화지 같은 하얀 공간에 검은색 글씨를 새겨 넣고 있네요.
최근 아이폰을 17.2에 해당하는 '베타버전(Developers Ver)'으로 업데이트하니 '일기'라는 앱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면 말 그대로 하루의 일기가 되는 것이고 이게 쌓이고 쌓이면 나만의 일기장이 되는 셈이겠죠. 과거에는 못난 글씨로 그날의 감정과 겪었던 일들을 꾹꾹 눌러 담아 썼는데 지금은 내 글씨가 어떻게 생겼는지.
"지금 시대가 그런 건데 굳이 로그오프가 필요해?"
굳이 그럴 필요도 없겠지만 때론 로그오프라는 것이 살아 숨 쉬는 걸 느끼게 해 줄지도 모릅니다.
그럼 퇴근도 했으니 잠깐 로그아웃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