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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Dec 18. 2023

아랫집 집주인과 윗집 세입자

서울 입성 첫 번째 집, 그때의 짧은 경험담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만 살았던 내가 몇 년 전 서울로 전입을 했다. 듣기만 해도 손 떨리는 집값 마련을 위해 '영끌'한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됐다. 그렇게 영혼까지 끌어모았지만 아파트 '매매'는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당시만 해도 페라리 같은 스포츠카 한대 가격 수준의 전셋집 아파트 하나를 겨우겨우 구하게 됐는데 지금도 슈퍼카를 길거리에서 보면 자연스럽게 아파트(가격)와 매칭하게 된다. 서울 시내 부동산도 넘사벽인데 슈퍼카라는 '동산'도 넘사벽일세. 대체 저 사람들은 어디에 살고 있는걸까? 


1라운드

우리 집은 5층이었다. 조금 오래된 집이었고 (돌싱이거나 미혼이었던) 아줌마 혼자 살던 곳이었다. '내집' 아니니 리모델링까진 어려웠지만 도배를 하고 (몰래 못 2개도 박았다) 가전과 가구 등 약간의 새것들을 들인 후 대충 꾸며놓으니 집안 분위기가 살아나는듯 했다. 당시엔 건조기가 없어 베란다에 빨래를 걸어놓았는데 옷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마저 평화로운 기분이 들게 했다. 햄버거 하나 시켜 먹으며 영화 한 편 보던 여유가 떠오른다. 그 뒤로 몇 달 지나지 않아 아랫집에서 불쑥 찾아왔다.    

"우리 아들 방에 물이 새는 것 같은데 여기서 좀 해결해 줘야 할거 같아요. 여기 배관 문제 같아"

"네? 물이 샌다고요?"

배관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알 수 없지만 주방 바로 옆방이었고 화장실과는 떨어져 있던 방이다.

"아, 불편하셨겠네요. 죄송하게 됐습니다. 집주인 분하고 상의해 보고 금방 연락드릴게요. 저도 이사온지 얼마 안되서요"

"알았으니까 빨리 연락 주세요"

그 뒤로 바로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는데 반응이 다소 황당했다.

"(혼잣말하는 듯) 예전에도 그랬는데 아랫집 이상하네. 공사도 한번 했었는데. 아무튼 아랫집 말대로 다 해주면 손해니까 일단 버텨보고. 아니 물이 왜 샌다고 그래"

뭘 어떻게 버티라는건지 잘 모르겠다만 투덜거리는 목소리였다. 전세 계약할 때는 전혀 느끼지 못한 반응이다. 

"아, 전에도 그랬던가요? 그럼 노후돼서 그럴 수도 있을 텐데. 아무튼 연락처는 일단 남겨드릴게요"

"네, 알았어요"


2라운드

하루 이틀 지났지만 집주인도 아랫집도 연락이 없었다. 일주일 뒤였다. 저녁 무렵 아랫집이 벨을 누르며 찾아왔다.  

"아니 어떻게 된 거예요. 빨리 처리해 달라니까"

"집주인 분이 연락 안 하셨나 봐요? 제가 내용 설명하고 연락처도 공유드렸는데요"

"무슨 연락이 와요? 아니 집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대체 뭐 하는 거야"

소리소리를 지르는 와중에 집주인에 바로 연락을 했다.

"아랫집이 찾아왔는데 전에 통화 안 하셨나 봐요? 지금 여기 오셨는데 통화 좀 해보셔야 할 것 같아요. 어떻게 해결을 좀 해야 될 거 같은데요"

"일단 그냥 가라고 하세요. 제가 바빠서 그런데 나중에 전화한다고 하세요"

"네? 아니, 여보세요?"

들어보니 집주인은 통화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아랫집이 전화기를 뺏어들 생각도 없어 보였다. 내 집도 아니고 심지어 전례도 있었다면서, 결국 '내돈내산'으로 해줘야 하는 건가 싶었다. 이런 경험이 없으니 더욱 난감하고 황당했다. 한쪽은 가만히 두라고 하고 한쪽은 난리를 치고 있는 이 상황.

'아니, 이 무슨 고래(집주인들) 싸움에 새우등(세입자)이냐'


3라운드

그날 겨우 달래서 보냈는데 이틀인지 사흘인지 지나 술에 취해 찾아온 아랫집이 이번에는 문을 발로 차며 괴성을 지르기도 했다. 

"나와봐. 나오라고" 

바로 옆집이 경찰에 신고를 했는데 무슨 일이 있는 줄 알고 꽤 놀랐다고 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랫집하고 원만하게 해결하셔야 해요. 이런 경우는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경찰은 '원만히 해결'이라는 해결되지 않을 해결책을 제시하며 떠났다(사실 이런 문제는 경찰이 할 수 있는 게 없다) 포털에 이와 유사한 내용을 검색해 봐도 대부분 그러했다. 다음 날 다시 집주인에 사정사정해 가면서 상황을 이야기했다. 물론 전날에도 했다. 아랫집을 가보니 물이 뚝뚝 떨어지는 정도는 당연히 아니었고 천장과 벽 쪽 일부가 조금 젖은 느낌이었다. 어쨌든 위에서 무언가 새고 있다는 '빼박' 증거라는 점. 결국 버텨보라던 집주인이 아랫집에 연락을 했고 공사를 하기로 했다. 어쩔 수 없이 하루 휴가를 내고 바닥을 다 뜯어내는 대공사를 진행해야 했다. 보일러실과 화장실 그리고 각 방으로 이어지는 배관 자체가 문제였던 모양이다. 예전에도 그랬다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 조차 하지 않은 거였다. 집주인은 공사 당일에도 오지 않았다. 하루종일 딱 한 명이 와서 공사를 했는데 잠깐 쉬는 시간 동안 다 부서진 방바닥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날의 대공사 후 아랫집 집주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도배비용은 집주인이 따로 보냈다고 했다) 공사도 다 마무리했고 별 문제없을 거라면서 (집주인 대신) 사과를 하니 그제야 정중하게 "그동안 실례가 많았습니다"라며 역으로 죄송하다고도 했다. 그 이후로 난 아랫집 사람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난 당시 그 아파트에서 전세 계약 2년을 채운 뒤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다. 그때의 상황을 여기저기 지인들한테 이야기하니 '서러우면 집을 사라는 둥', '집주인을 잘 만나야 한다는 둥' 돌아오는 답은 죄다 비슷했다. 집을 사기엔 아직도 무리가 있고 아파트에 살려면 내가 사는 곳의 집주인은 물론이고 아랫집, 윗집, 옆집까지 잘 만나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은 이웃과 함께 사는 공동주택이 아닌가. 경험은 중요하다고 하지만 이런 경험은 딱히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


※ 당시 경험도 없었고 경황도 없었으며 조금은 무지하기도 했던 것 같네요. 실제 경험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했는데 쓰여진 일부분은 살짝 다듬어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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