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엔 감사했습니다. 올해도 감사할 예정입니다
2023년 결산
'결산(決算)'이라는 키워드가 어울릴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만한 느낌의 단어도 없는 것 같다. 그래 생각해 보니 찰떡이다. 예전 연말에는 거칠게 지내왔던 365일을 곱씹고 반성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스스로를 향한 채찍질로 뭔가 반성했다면 또 그걸 계기삼아 손톱만큼이라도 성장한 느낌이 있어야 하는데 이룬 것 없이 그냥 365일을 숨 가쁘게 지내온 것 같다.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그렇게 됐다. 사실 이 글도 반성이라고 썼다가 한해를 돌이켜봤을 때 아무런 변화가 없으면 자괴감이 들 것 같아 대놓고 결산이라고 해본다. 생각해 보면 지난해 역시 어김없이 '다사다난' 했던 것 같다. 이 단어 역시 떨어지지 않고 따라붙는 것 같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1년 365일 8천760시간을 살아가는데 다사다난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꼭두새벽 일어나 하루 '삼시 세끼'를 꼬박 챙기시고 의자에 앉아 TV를 보거나 산책을 하셨던 할머니의 똑같은 일상을 떠올려보면 세상 평범해 보이긴 해도 (그 사이 휘몰아치는 아주 작은 일들이 수십 개나 있었다면) 당신 역시 분명 '다사다난' 했었을 것이다.
작년에는 연초부터 큰일을 겪어야 했고 불황에 흔들리는 회사에도 변화가 있어 적응이 좀 필요했다. 그 후 몇 개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게 됐다. 물론 그것은 현재진행형이다. 정신없던 와중에도 자기 계발 좀 해보겠다며 골린이 주제에 주짓수까지 한답시고 겨우겨우 시간이 되는대로 끼워 맞추기를 하고 있다. 물론 초보딱지를 떼지 못하고 있다. 연말에는 이사까지 했다. 접은 지 오래됐던 토익도 다시 공부하게 됐다. 글 쓰는 일은 이전과 다르지 않게 나름 꾸준한 편이다. 무언가 새로 시작하기엔 여전히 + 굉장히 빠듯한데도 불구하고 그냥 하나둘씩 꾸역꾸역 채워 넣고 있는 중이다. 전에도 최측근 지인이 이런 말을 했다.
"아니 그걸 어떻게 다 해? 일을 안 하는 거야 아니면 잠을 안 자는 거야?"
일도 하고 잠도 잔다. 그래, 솔직히 잠은 좀 부족하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현대인이니까. 어쨌든 어떻게 하다 보면 된다. 특히 30일이라는 한 달, 그리고 24시간이라는 하루 중에도 '틈'이 없을 순 없다. '숨 쉴 틈도 없다'라고 하지만 물 한잔 마실 시간 있고 화장실에서 손 씻을 시간도, 밥 먹는 시간도 있지 않은가.
하나
이 브런치에는 작년 한 해 48개의 글을 썼다. 그런 와중 기고도 꾸준히 했고 가벼운 일상글보다 인공지능에 대한 글을 응원하기가 더해진 '연재'로 이어가기도 했다. 새롭게 마련된 응원하기 기능을 베타서비스 차원에서 가장 먼저 써보긴 했다만 함께 참여했던 다른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보다 그 글의 가치가 '졸작' 수준인지라 딱히 재미를 보진 못한 것 같다. 물론 재미를 보려고 한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하나씩 뱉어내야 하는 부담감과 하나의 글을 작성하기 위한 고민과 글쓰기, 퇴고에 이르기까지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았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응원하기라는 기능 자체보다 '연재'에 더 욕심을 내긴 했다. 이제와 말하지만 글을 하나 쓰고 발행을 누르게 되면 구독자가 줄어드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아니지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겠다 싶다. 아마 이 글을 발행하고 나면 또 몇 명 줄어들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떠나시려는 그대, 붙잡고도 싶지만 놓아드리리다) 그런 와중에도 구독 버튼을 눌러주고 뒤에서 응원해 주시는 분들께 정말이지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하고 싶을 정도다. (진심입니다) 글을 쓰는 건 이제 일상이 되어 결코 놓지 못할 것 같다. 이곳에 몇 개를 더 쌓게 될지 모르지만 올해도 이렇게 반성과 결산으로 빈 공간을 채우고 있으리라.
둘
전에는 심장이 터질 정도로 달리기를 했더랬다. 3km에서 5km, 5km에서 10km 정도를 열심히 달렸더랬다. 하루가 견디고 이틀을 달리다 보니 어제보다 늙은 오늘 괜히 무릎도 아픈 것 같고 심지어 발바닥에 생긴 물집이 굳은살이 되어 박힌 지 오래다. 어느 순간 운동화를 벗어던지고 도복을 입기 시작했다. 침대 매트리스 마냥 푹신하진 않지만 적당히 구를 수 있는 매트 위에서 초면인 사람과 부둥켜안고 땀을 흘리고 있는 나를 보게 됐다. 주짓수란 누군가를 공격하지 않는 격투기다. 간혹 스트라이킹이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 누군가를 제압하는데 쓰인다. 기술 역시 상대를 넘어뜨리거나 관절을 꺾거나 조르는 무술의 한 종류다. 주짓수를 배우는 이유는 내가 건방을 떨기 위함도 아니요, (결코 강하지도 않은 종이인형이지만)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요, 내가 누군가를 넘어뜨리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 누군가 주먹을 던지는 순간 도망을 가야 할 것이고 주먹을 던지는 순간이 생기지 않도록 지금처럼 배려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결국 주짓수는 격투기의 한 종류이지만 그저 상대방을 배려하는 '운동'이고 웃음꽃 피는 '취미'일 뿐이다. 도복을 입고 1시간 내내 매트를 뒹굴게 되면 전에 달리기를 했을 때처럼 숨이 가쁘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힘들게 스파링을 하기도 한다. 손은 떨리고 허리도 쑤시지만 다음 날 생길법한 근육통마저도 뿌듯함이 된다. 틈이 나는 대로 달려가 인사를 하고 악수를 하며 미소를 던지는 그 순간들은 내게 새로 잦아온 또 다른 행복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운동'은 쭉 이어질 예정!
셋
한참 오픽이라는 시험을 준비했었다. 아이엘츠를 하다가 책을 다 보지도 못한 채 접기도 했다. (온라인 강의도 비쌌지만 시험 응시료는 더 비쌌다) 그리고 몇 달 전에 토익 온라인 강의를 새로 등록했다. '다시 등록했다'가 맞는 표현일 수도 있겠다. 실로 오래간만에 접해보는 토익이다. "이제 와서 무슨 토익이냐" 할 테지만 뭔가 목표를 삼고 그 목표를 향해 달리는 기분이 새로운 듯하다. 뭔가 만학도의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꾸준하게 자신을 불태우는 건 기분 좋은 일임을 새삼 깨닫는다.
"그거 공부해서 뭐 하려고"
웃기지도 않은 뼈 있는 농담을 던졌던 대학 동기 녀석이 생각난다. 심지어 그는 '박사학위'를 앞두고 있던 친구다. 나도 모르게 '쳇, 잘난 척이야. 뭐야'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대학원이나 박사 공부에 훨씬 못 미치기는 하지만 토익이든 뭐든 공부라는 게 시기가 딱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서울대를 나와 나이 좀 드신 선배도 사이버대에 등록해 무언가를 다시 배우는 모습, 고졸이었지만 야간대를 다니고 대학원까지 꾸준함을 잃지 않고 공부했던 또 다른 친구의 모습 또한 내게는 귀감이 됐다. (늦었지만 졸업 축하한다)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은 걸 원망해야 하나 싶지만 영어를 쓰지 않는 나라에서도 열심히 발버둥 치면 어느 정도 커뮤니케이션 가능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물론 그걸 토익으로 이룰 순 없다. 이제는 토익 점수가 새겨진 Score Certificate가 어딘가에 필수적으로 제출하는 서류처럼 되어버렸는데 초심을 갖고 노력해야 하는 동력원으로 이만한 게 없다.
누군가가 봤을 때 "와 대단한 목표네?"라고 할 것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니 참 특별할 것도 없다. 그렇다고 특별해지기 위함도 아니니 그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게 어쩌면 올해 최대의 목표일 수도 있겠다 싶다. 아직은 정리되지 않은 어수선한 새해다. 뭔가 새집으로 이사했는데 전에 살던 짐을 여기저기 마구 어지러 놓은 꼴이다. 하나씩 수습하다 보면 또 어느새 봄이 올 테지.
벚꽃 만발하는 봄날을 스쳐 보내면 무더운 여름이 성큼 그리고 또 낙엽 떨어지는 가을 지나 다시 하얀 겨울로 그리고 또 새로울 것 없지만 언제나 새로웠던 봄을 맞이하게 되는 우리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라는 삶 속에서 모두가 작은 행복들을 하나둘씩 찾아 큰 행복을 이루시고 또 그 행복을 다른 누군가에게 나눠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작년 한해 감사했습니다. 올 한해도 감사할 예정입니다. 매순간 감사하며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