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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Apr 02. 2024

오프라인 첫 모임에 나간 ENFJ

안녕하세요. 저는 외향적이고 감성적이며 계획적인 ENFJ랍니다 

나는 ENFJ다. 

주변 지인들도 "너 E구나?"라고 말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감성(F)과 이성(T)의 경계선에 있는 듯 느껴질 때가 있다. 감성적인 것 같으면서 굉장히 이성적인 말을 내뱉기도 한다. 무엇보다 철저하게 'J'의 성향을 띠고 있어 여행을 가더라도 굉장히 계획대로 움직이는 편이다. 2주간 유럽여행을 떠났을 때에도, 아니 짧은 4일간 일본 여행을 갔을 때에도 출국일부터 들어오는 날까지 굳이 엑셀에 정리해보기도 했다. 그냥 그렇게 정리하는 게 머릿속으로 우왕좌왕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또 빈틈이 생기고 뒤틀리면 "난 이런 걸로 스트레스 안 받아. 괜찮아"라고 '쿨'한 척하면서도 '아니 이거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걸까'라며 자책도 해보고 곱씹어보기도 한다. 남들에게는 굳이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은근 '킹'받는 게 있는데 이것도 J라는 성향 때문인지 그냥 성격 탓인 건지 모르겠다.   


사실 초등학교 시절에는 굉장히 내성적인 꼬맹이에 불과했다. 그게 은근 걱정이셨던 부모님이 태권도 학원에 스피치 학원까지 등 떠밀었던 적도 있다. 그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모여든 어떤 그룹에 다가가 아무렇지 않게 인사말을 던지며 친한 척하기도 했다. 사실 그게 가능했던 건 "안녕하세요. 처음 이곳에 오게 된 루이스입니다"라고 했을 때 그들 역시 반갑게 맞이해 줬기 때문이 아닐까. 반대로 "얜 뭐 하는 놈이야?", "갑툭 누구세요?"라며 차갑게 대했다면 그 성향 자체가 바뀌진 않았을까?  


예전에 대학 후배가 여행과 사진을 컨셉으로 하는 동호회에 나가보자면서 '내가 전에 카페(커뮤니티)에 하나 가입했는데 이번 주말 오프라인 모임에 나가보자'라고 한 적이 있다. 여행도 사진에도 관심이 있었으니 덥석 가입을 하고 인사말을 남겼다. 온라인 게시판에 가입인사를 하니 환영하는 댓글들이 달렸다. 그리고 주말 오프라인 모임에 (후배와 손을 잡고, 아니 잡진 않고) 참석했다. 대략 20여 명쯤 모인 공간 속에서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던 멤버들 얼굴이 떠오른다. 나처럼 처음 나온 사람도 있었고 이미 충분히 친해진 사람들도 여럿이었다. 사실 지난 꼬맹이 시절이었다면 구석에서 쭈뼛거렸을게 분명하지만 그런 모습은 싹 다 지워진 지 오래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양 옆으로 앉았고 아무렇지 않게 인사하며 동호회에서 이뤄지는 활동과 컨셉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맥주 한잔 하시죠" 맥주 한잔 기울이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담소를 나눴다. 처음부터 불편하거나 어색한 것 없이 사람들과 잘 어울렸는데 본래 동호회나 커뮤니티가 이토록 액티브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아주 약간이라도 알콜의 힘을 빌린 것일 수 있으나 술을 잘 먹는 사람이든 아예 못 먹는 '알쓰'든 그런건 이 사람들 사이에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쨌든 난 그렇게 사람과 이어지는 또 하나의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몇 년이 흐르고 스노보드에 관심이 있어 여러 커뮤니티를 알아보다가 한 군데를 찾게 됐다. 누구든 주변에 같이 갈 사람 없는지 둘러보긴 했지만 딱히 관심도 수긍하는 친구도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혼자 가지 뭐' 결국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하겠다고 인사말을 남긴 후 정해진 날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로 향했다. 잠시 모임 장소 앞에서 아주 약간 서성거렸는데 갈까 말까 고민했다기보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할지, 지금 내 상태는 괜찮은지 정돈하는 시간 정도였다. 열댓 명이 모여있던 장소에 가서 "안녕하세요. 오늘 처음 왔습니다"라며 꾸벅 인사를 했다. "아, 이쪽으로 앉으세요"

처음 몇 분 동안 서로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나는 그 앞에서 눈치를 보며 눈알을 굴리기 시작했다. 알지도 못하면서 그들이 웃을 때 슬쩍 미소를 짓기도 하고 울리지 않는 휴대폰을 보면서 '오늘 스포츠 경기는 어땠나' 확인해보기도 했다. 사실 친한 사람들 사이에서 그간 있었던 이야기 틈에 끼어들기는 어려웠다. 이건 뭐랄까, 꽉 막힌 고속도로 위에서 오른편 IC로 나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중간에 깜빡이 켜고 새치기라도 하는 모양새 같은 뭐 그런 입장이랄까. 하지만 양보해 주는 사람이 있었, 아니 옆에 계셨던 분이 이야기를 건네며 그 얼음 같았던 잠깐의 시간을 깨 주었다. 이러한 모임은 대개 아이스 브레이킹이 중요한 것 같다. 아무리 외향적이라도 처음 자리한 사람 입장에서 그걸 깨부수는 것도 쉽진 않았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 토론하거나 토의하는 자리도 아니기에 달변가 따위도 필요 없는 자리가 아닌가. 어차피 여기 모인 사람들도 초면이었던 사람들끼리 만나 굳게 얼어붙은 얼음을 깨고 친분을 쌓았을 테니까. 나 역시 그렇게 이들과 친분을 쌓았고 수차례의 모임을 가졌더랬다. 그 이후로 새로 온 신입회원이 있으면 내가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어색할 순 있지만 그 처음이라는 시간의 얼음만 깨면 친분을 쌓는 것도 금방인 것 같다. 


사실 대부분의 만남이 그렇지 않을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오랜 시간 떨어지지 않고 지낸 동네 친구들도 있겠지만 처음 만나게 되는 친구도 있는 법. 그런 의미에서 대학이라는 공간은 알고 지내던 사람보다 새로 알게 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결국 대학 이전의 친구들에 대학 이후의 친구들을 덧붙여 관계를 부풀려가는 셈. 직장에 가서도 운 좋게 선후배를 만날 수도 있을 테지만 대다수 처음 경험하는 공간이 아닌가. 그렇게 우리가 사는 일상이란 무언가 처음인 사람들과 처음을 지나온 사람들, 모두 다르지 않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내게 처음이었던 시간들은 매우 좋은 경험이 되었고 그 자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여전히 나의 소중한 관계가 되어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있다. 


MBTI가 우리 주변 사람들 모두를 대변할 순 없다. 하지만 의외로 잘 들어맞아서 이를 신뢰하는 건 아닐까? 주변 지인들과 재미 삼아 이야기하는 와중에서도 진지하게 MBTI를 이야기할 때도 있다. "너는 I, 나는 E라서 잘 안 맞아", "너는 감성적인데 나는 진짜 이성적이야"라며 선을 그을 때도 있는 것 같지만 MBTI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역시 사람과 사람이 만나 친분을 쌓고 지내온 시간들을 통한 '교감'이 아닐까. 지극히 사회적인 가면을 벗어던진채 마음속 깊은 이야기들을 꺼내놓고 소통해야 비로소 그 사람의 진심을 알 수 있는 법. E면 어떻고 I면 어떻고. MBTI 과몰입도 때론 피곤하다. 그런 의미에서 아래 채용공고는 (딱히 잘못되었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여러가지 의미에서) 참 웃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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