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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Dec 28. 2023

<나의 아저씨>, 그곳에서는 편안함에 이르시기를

사회적 타살로 인한 그의 죽음과 미디어에 대한 짧은 글

난 그 배우를 참 좋아했다. 여러 작품을 통해 그 얼굴을 만나볼 수 있었고 흡인력 있는 연기는 물론 매력적인 보이스에 흠뻑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나의 아저씨>가 정점이었다고 본다. 거칠게 살아온 지안(이지은)을 가슴으로 감싸 안으며 위로하는 모습만으로도 힐링이 되었단 말이다. 자신도 삶의 무게를 버티며 살아가는,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소시민이자 평범한 아저씨였음에도. 아직도 그 작품의 엔딩신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눈부신 햇살 아래 마주한 지안과 동훈의 마지막 모습 말이다. "제가 밥 한번 사드릴게요. 아저씨 맛있는 거 한번 사주고 싶어요. 전화할게요" 지안의 마지막 한마디에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하게 미소 짓던 동훈의 모습.   


<톱스타 L 씨, 마약 혐의로 내사 중>이라는 기사가 처음 터진 후 미디어는 또다시 혈안이 되었다. 특히나 '유명배우'라고 했으니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조금 지나면 그 정체가 드러나게 될 것이고 이름이 알려지면 여기저기서 떠들어댈 것이 분명했다. 당시에는 대통령실 의전비서관 자녀의 학폭 문제가 거론이 되었을 시점이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팩트체크가 필요한 찌라시와 카더라가 돌았고 '정치권 문제를 연예계 이슈로 덮는다'라는 전형적인 음모론도 있었다.

사실 연예인에 대한 뉴스는 늘 '클릭커블'하다. 과거 가판대에 올라온 스포츠신문들은 전일 있었던 스포츠 이벤트보다 연예계에 집중하기도 했다. 가수 A와 배우 B가 열애한다더라, 유명배우 C가 이혼했다더라 하는 가십성 기사를 1면에 올려놓으면서 미디어라면 지켜야 할 올바른 저널리즘보다 상업성과 선정성을 앞세우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늘 그랬다. 그 안에 몸담고 있는 본인들이야 싫을 수도 있겠지만 옐로저널리즘이라 불리는 것도 결국은 '자업자득'인 셈인데 누가 뭐라든 대놓고 장사하는 모양새가 아닐 수 없다. 또 어떤 저널리스트는 자신의 펜을 무기로 삼는다. 누군가에는 지극히 평범한 점심인데 자신이 기분 나쁜 대접을 받았다면서 이를 기사화 하기도 한다. 당연하지만 그들이 쥐고 있는 펜은 권력도 무기도 아니다. 사람들이 휩쓸리고 속아넘어간다고 하니 신나서 휘두르는 꼴이다.

 

포털과 SNS의 탄생은 미디어 업계를 변화시키기에 충분했다. 일단 유저들의 클릭을 유도할 수 있어야 트래픽을 먹는데 사실 트래픽은 곧 수익이다. 그러려면 재미없고 무거운 정치, 경제 기사보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등 말랑말랑한 연성기사를 전면에 붙여야 돈이 된다는 걸 서로가 잘 알고 있다. 그러니 그게 무엇이든 '국민의 알 권리'라는 핑계로 물어다 놓는다. 방송인 B 씨가 임신한 소식, 개그맨 D 씨가 새집을 샀다는 썰까지 쓸데없는 가십들을 뉴스 기사라며 내보낸다. 심지어 별다른 내용도 없이 하이에나처럼 셀럽들의 인스타그램을 쫓아다니며 사진을 긁고 유저들의 댓글을 장황하게 써붙이기도 한다. 사실상 페이지 낭비 수준이다. SNS를 쫓아다니며 신변잡기를 떠들어내는 미디어의 행태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이번 사건만 해도 그러하다.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굵직한 톱 배우들이야 여럿이지만 미디어가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유명배우 L 씨가 마약 투약 혐의로 수사를 받는다' 정도로만 그쳤으면 모르겠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실명이 터져 나왔고 쉬쉬해야 할 수사 내용들이 대서특필 되기도 했다. 포토라인에 선 그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정중했고 또 진지했다. 수많은 카메라의 플래시가 터지는데 마치 화살촉이 날아드는 듯했다. 단 한 번도 정면을 응시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은 안타까울 정도였다. 경찰도 언론도 심지어 이름 모를 유튜브 채널까지 적나라하게 모든 것을 공개하는 수준이었다. 유명 변호사와 공중파 기자 출신이 만들었다던 어떤 유튜브 채널은 본질을 벗어나는 사생활까지 공개하면서 지극히 저질의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했다. 수사 내용은 물론 그의 사생활까지 조리돌림 하는 수준으로 난도질하던 언론은 그의 사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장례식장을 쫓아가 다른 연예인들의 모습들을 보이는 그대로 기사화하기도 했다. 뭐랄까 사회적 타살에 동조하는 것을 넘어 주도했던 수준이었음에도 뒤늦게 찾아가 영혼 없이 조문하는 꼴이랄까? 어떤 언론사는 그의 유서까지 공개했다고 했다. 이렇다 할 물증도 없이 수사 중인 사건의 내용을 언론이 가져간 그 후부터 그는 피해자가 되어있었다. 그런 와중 언론사는 클릭수 장사만 하는 꼴이었으니 이토록 비극적인 결말에 언론은 책임이라는 걸 조금이라도 느끼고 있을까? 범죄 피해자가 언급되거나 2차 가해가 우려되는 보도의 경우 댓글창 자체를 비활성화하는 기능이 있다. 보도 가이드라인에도 이러한 부분들이 있고 포털의 경우는 댓글 정책도 있다. 2차 피해가 우려된다는 가이드라인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댓글러들의 댓글은 막고 자신들은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면서 1차에 이은 2차 가해를 하고 있는데 그걸 왜 알지 못할까? 이번에도 재발방지 대책에 대해 언급하는 곳들이 소수 있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질 것이고 언젠가 같은 이슈가 벌어지면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올게 분명하다. 그때도 언론은 지금처럼 하이에나로 변해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악플 달며 히히덕 거리는 댓글러나 무책임하게 마구 기사를 남발하는 빌런 수준의 미디어가 분명히 존재하는 와중에도 일상에 찌들어 신경조차 쓰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 같은 사람은 그 어느 것도 아닌 회색 경계에서 양쪽 모두를 손놓고 바라만 보고 있는건 아닌지. 사실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갈길은 편안하기를 바란다고 굳이 이 공간을 빌어 이렇게라도 조심스럽게 남겨본다. 일면식도 없는 그저 팬이었다는 이유로.


▶◀<나의 아저씨>,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언론에 타깃된 이선균... "무엇이 문제인지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미디어오늘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4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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