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누군가의 연설을 들었다. 영어로.
대한민국이라는 땅에서 영어를 배운다는 것은 굉장히 '당연한' 일이 되었다. 지극히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가 학교든 학원이든 영어를 배웠을 것이고 또 그중 대다수가 늘 영어를 쓰거나 듣거나 읽고 있을 것이며 또 그중 몇이나 될지 모를 일부는 능숙하고 유창하게 구사할 것이고 또 몇이나 될지 모를 일부는 전혀 쓰지도 듣지도 읽지도 않을 것이다. 나도 영어를 배웠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도 영어를 배웠을 것이고 내 옆에 계신 분도 내 앞에 계신 분도 모두 영어를 배웠다. 그리고 여전히 배우고 있는 중이지만 그 배움은 도대체 끝이라는 것이 없는 것 같다. 사실 모든 학문이 그러하듯 배움이라는 것에 끝이라는 게 있기는 할까? '박사학위'라는 것이 어떤 학문의 '마스터'라고 볼지언정 그 학문의 '끝'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박사학위를 따서 교수가 됐거나 연구원이 된 주변 사람들 역시 줄곧 봐왔던 책을 다시 펴고 연구를 하거나 공부를 하고 있다. 인간이 어제보다 내일 더 스마트해지려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당연한 얘기다. '영어'라고 하는 언어를 학문의 일종으로 본다면 한국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우리들에겐 영원히 끝나지 않을 공부라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그런 의미에서 (학문적으로 보면) 지겹기도 하다. 소통을 위한 언어로만 본다면 어쨌든 그 나라에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하는거. 길을 물어보든, 뭘 사든, 급할 때 화장실을 찾든, 무언가 사정을 하든.
한동안 영어회화를 배우면서 토익공부를 병행하기도 했다. 회화를 하는 것과 토익 시험을 치르는 데 있어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영어라는) 콘텐츠 자체가 굉장히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전혀 다른 세계임을 알 수 있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랬다. 사실 외국인을 만나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는 것은 토익 시험에서 볼 수 있는 어떤 문법에 적확하게 맞아떨어져야 하는 것과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외국 어딘가에서 '화장실 어디예요?'라고 이야기를 던졌을 때 대충 손짓 발짓을 더해 'rest room?' 혹은 'toilet'이라고 해도 알아듣는다는 말이다. 나는 급해 죽겠는데 와중에 토익이나 수능 따위에서 나오는 표현 그대로 문법에 어긋나지 않는 아주 완벽한 한 문장으로 진지하고 정중하게 던지는 일이 얼마나 될까?
"Excuse me, can you tell me where the restroom is that I can use?"
(정확하게 표현해야 화장실 키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 퀘스트
이건 뭐 아무리 급해도 정확한 문법대로 상황에 맞는 문장을 만들어 정중하게 던져야 하는 미션인건가? 해외 여행을 갔는데 매 순간 이런 미션을 깨부수고 다녀야 하느냐 이 말이다. 이 무슨. What the.. 그러고 보니 예전에 떠돌아다녔던 영어 문장 하나가 문득 머리를 스친다. 페친 중에 하나가 이런 내용의 피드를 올린 적이 있다. 그것도 불수능 영어의 대표적 사례라고 하면서 말이다.
표현 : 정오입니다.
외국인 : "It's high noon"
수능 : (조금 과하게 말해서) "I am informing you that the current time is twelve o'clock in the afternoon which the sun is at its highest elevation in the sky"
이는 구글링만 잠깐 해봐도 비슷한 것들이 나온다. 이보다 더한 표현도 볼 수 있다. 참 웃프다. 말 그대로 웃기지만 한편으론 씁쓸하다. 우린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단순한 표현도 어렵게 배우고 있는 것일까? 수능 문제부터 실생활 영어를 모두 경험해보고 나니 더 그렇게 느껴진다. 영어를 가르치는 교수나 선생님, 강사분들이 봤다면, 이런 것도 다 경험이고 짧게 표현할 수 있는 스킬의 발판이 되겠노라 말할 수 있겠지만 이제 막 한글을 뗀 아이들도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영어를 표현하는 어떤 언어적인 단계를 넘어서 최종 단계라고 할 수 있는 '불'수능에 일찌감치 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사실 우리 아이도 영어를 배운다. 단순히 알파벳을 쓰는 수준을 넘어섰다. 어떤 아이는 몇백만 원 하는 영어 유치원에 다닌다. 영어는 학문이기 이전에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언어다. 자전거 타는 근육과 또 달라서 쓰지 않으면 잊히게 마련이다. 대학 입시를 위해 그렇게나 암기했던 단어들은 죄다 어디에 있는가? 필수 영단어라고 하는 것들의 알파벳이 이리저리 흩어져 저 멀리 묻히고 배웠던 표현도 어느새 다른 것들에 모두 가려진 듯. 결국은 (영어 하는) 습관도 중요하고 (영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도 매우 중요한 것 같다.
위에서 '정오'라는 표현을 언급하기도 했지만 같은 의미를 가졌어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그 레벨이 나눠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외국인들이 '너 영어 하는 수준이 낮구나?'라고 결코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우리들 중 누군가가 외국인과 미팅을 하면서 영어를 이야기하는데 '넌 한국에서만 영어를 배우니 발음이 이상하네', '그렇게 영어 하는 거라면 나도 하겠다', '노노, 그런 영어는 문법에 맞지 않아. 5형식으로 해야지!'라며 깎아내리는 경우들도 (결코 많진 않지만) 가끔 목격한 적도 있다. 영어는 애초에 자신감인데 외국인들은 이미 무엇이든 들을 준비가 되어있고 그 주변에 있는 다른 한국인들은 이 녀석이 어떻게 영어를 하는지 심판하러 온 기분이다. 얼마 전에도 같이 운동하는 외국인 친구에게 "어린이날이라고 아느냐" 물었더니 안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Did you have any plan?"이라며 말을 던졌다. 이거 어디서 나온 'Did'인가.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게 야구 보러 간다고 답했다. 이미 말은 내뱉어졌고 머릿속에는 'Do'와 'Did'가 함께 뒤섞였다가 흩어지는 중이었다.
수능을 거쳐온 세대들, 종로나 강남 학원가에서 새벽같이 출석 도장 찍고 영어를 배우는 이 시대의 직장인에게 영어라는 언어는 일종의 벽 같기도 하지만 그 높이를 얼마나 낮추느냐가 관건인 것 같다. 다시 토익을 준비하면서 하루종일 영어를 들어보기도 하고 오픽이라는 시험을 통해 한국어에 익숙한 혓바닥을 이리저리 꼬아가면서 어설프게 영어를 던질 때마다 자괴감을 느낄 때도 있지만 비록 영어를 하는 수준이 낮더라도, 서로 소통 가능한 수준이라면 문제 될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오늘도 아침 출근 시간에 유튜브를 열고 딱 30분간 들을만한 연설 하나를 들었다. 오늘은 톰 행크스가 하버드대학교 졸업식 연사로 나가 짧게 연설한 내용이었다. 여기에는 미국식 유머가 들어가 있다. 애초에 전체를 다 알아듣지 못하기도 하지만 다 알아듣는다고 해도 톰 행크스가 던지는 혹은 그 밖의 미국인들이 던질법한 '미국식 유머'를 이해하지 못하면 함께 웃을 수가 없다. 예전에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하나를 본 적이 있는데 옆자리고 앞자리고 모두가 웃고 있는데 '어느 부분이 웃긴 거지?'라고 생각하며 주변 눈치를 본 적도 있었다. 오늘 배운 영어 표현이 1년 뒤 오늘 또 새롭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꾸준하게 하다 보면 그들이 웃을 때 나도 함께 웃고 있지 않을까? 외국에서 영어 한번 배워본 적 없는 뼛속까지 한국인인 내겐 어차피 '끝'이란 없는 세계, 조금 늦으면 어떠하리.
※ 물론 매순간 바쁘게 돌아가는 직장에서 엉뚱한 영어를 내뱉게 되면 업무에 지장을 줄 뿐 아니라 자칫 리스크가 커질 수도 있으니 그 경우는 제외하도록 한다. 직장에서는 이메일로 그리고 가끔은 전화로 소통하는 경우들이 있고 매주 한두번 운동하는 곳에서는 가끔 마주하던 외국인들과 꼭 정확하진 않더라도 영어를 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다. 한국인인 나는 영어로 하고 미국인인 그는 한국말로 하는 아주 신박한 경험을 하기도 했더라는. 그 와중에 이상하게 소통이 되는 재미있는 경험을! 그대들이여, 오늘도 How are you?
※ 상대적 박탈감이 섞인 약간의 비약도 있겠지만 오랜 시간 영어를 접하고 배우면서 느낀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과 사견을 모아모아 꾸역꾸역 작성한 것이니 참고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