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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Jul 27. 2016

그 해 여름, 그 곳엔 온종일 비가 내렸다

해변가 선셋을 집어삼킨 비바람과 함께 파란만장한 휴가를 보내다

꿈을 꾼다. 

이 도심을 떠나 푸른 빛의 파도가 넘실거리는 그 곳 어딘가로 떠나는 꿈. 

한동안 해변가를 뜨겁게 달궜던 태양이 점차 수평선 아래로 사라지면서, 마치 카메라에 필터라도 끼워넣은듯 아주 강렬한 빨간색의 노을이 하늘을 뒤덮는다. 


보라카이의 해변을 빨갛게 드리운 노을


한여름 밤으로 접어드는 시간. 곧이어 시원한 바람이 잦아든다. 어두컴컴한 해변, 파도소리와 음악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낭만으로 가득찬다. 


보라카이, 화이트비치, 산 미구엘, 낭만


한 방울, 두 방울.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해변가 모래 위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누군가는 비를 피해 도망치듯 달려가고, 누군가는 이 빗방울 마저도 기분 좋게 맞이한다. 

거센 바람이 분다. 빗방울은 점차 굵어지고 강한 바람이 불어닥치자 잔잔했던 파도소리 마저 거칠어진다. 

빨갛게 물들었던 아까 그 하늘에 몇 초마다 번개가 친다. 

그 해 여름, 난 태풍과 함께 휴가를 맞이했다. 




2013년 여름, 우린 태국 푸켓으로 떠났다. 

무려 14명이라는 인원이 한꺼번에 휴가를 맞추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뭘 하면서 놀까?' 라는 세부적인 휴가 계획보다 친구들과 함께 즐길만한 숙소를 찾는게 급선무였다. 


태국 푸켓의 Nap Batong

다소 흐린 날씨, 태양이 구름 뒤에 가려져 힘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온도는 쉽게 내려가지 않았다. 


푸켓에 들어온지 3일째 되는 날, 태양이 작렬했다. 난 마침 초여름 감기에 걸려 수영장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에어컨의 위력과 약해빠진 면역력 때문이리라. 

"무더운 이 여름날, 감기라니" 

태국 푸켓이 선사한 더위는 견딜만했다. 가방 속에서 잠자고 있던 썬글라스를 꺼내 햇살의 강렬함을 막아본다. 시간이 지나자 바람조차 불지 않는 뜨거운 기운이 온 몸을 달군다. 이 날 푸켓의 더위는 정점을 향해갔다.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른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일이 닥칠지 아무도 모른채. 



빠통비치를 바라보며 2박을 했고 푸켓 국제공항 부근에 위치한 '센타라 그랜드 웨스트 샌즈 리조트 & 빌라'로 옮겨 다시 3박을 했다. 

워터파크와 수십개의 풀빌라가 존재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리조트. 하지만 체크인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가 예약했던 풀빌라 중 하나가 이중으로 부킹이 되었단다. 리셉션 매니저는 미안한 기색 없이 우리에게 선택권을 던졌으나 말만 선택권이지 정작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  약 10분 거리의 펜트하우스와 풀빌라를 나눠서 숙소를 써야 한다는 둥, 룸 하나에 엑스트라베드를 주겠다는 둥. 

'같은 금액을 지불했음에도 누군가는 엑스트라베드라니' 

누가봐도 성의 없는 서비스에 체크인을 하는 곳에서 시위라도 하듯 불만을 표시했다. 

우린 "여기 책임자와 이야기하고 싶다"

하지만 매니저는 "책임자는 나다. 나에게 이야기하라"

"이중부킹이 말이 되느냐. 그렇다면 다른 숙소를 알아봐달라"

한참이 지나서야 "사정은 잘 알겠지만 다른 숙소가 없다. 비어있는 펜트하우스와 풀빌라를 사용해라. 대신 요구사항이 있으면 들어주겠다"

요구사항을 이야기했지만 "어려울수도 있다. 컨펌을 받아야 한다"는 불확실한 답변을 받고 말았다. 

우린 1시간을 넘게 실랑이를 벌였고 다음 날 이 곳의 임원급 되는 사람을 만나 공항 픽업서비스와 딱 1회분의 식사 쿠폰 등 몇가지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친구들 14명은 결국 10분 거리를 두고 이산가족이 되었다. 사실 '이중부킹'이라는 기술적 오류보다 고객에 대하는 태도와 대응 방식에 화를 낼 수 밖에 없었다. 뭐 어쩌겠는가. 감내할 수 밖에. 어쩔수 없는 선택, 그냥 편하게 즐기기로 했다. 

소나기처럼 간간히 비가 내렸다. 스콜(Squall)처럼 엄청나게 쏟아지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다시 햇살이 활짝 내리쬐었다. 

'동남아의 날씨란 이런거구나' 

결국 여행 막바지엔 비바람이 어마어마하게 몰아쳤다. 또 다시 문제가 터졌다. 정전으로 인해 전기가 끊긴 풀빌라는 매우 더웠다. 가장 중요한건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방에서 물이 샌다는 것이었다. 리조트에 전화를 걸어 문의를 했다. 방을 옮기란다. 우린 급히 이사를 하듯 중요한 것만 들고 방을 옮겨야 했다. 바로 옆동이었던 풀빌라는 청소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풀(pool)에는 온갖 풀(grass)이 떠다녔고 이 곳 역시 방 하나는 물이 샜다. 전기가 들어오는듯 하더니, 결국 또 나가버렸다. 

풀빌라 앞쪽에 펼쳐진 바다에선 쓰나미라도 밀려올듯 '살벌한' 파도소리가 어두운 방안을 가득 채웠다. 

마지막 날 밤 비행기에 오르기 전까지도 비가 왔다. 

마치 피난을 하듯, 방에 옹기종기 모여 잘 터지지도 않는 와이파이로 게임을 하거나 태국어가 쏟아지는 TV를 바라보며 멍하니 공항에 갈 시간을 기다렸다. 뭐랄까, 굉장히 묘한 분위기였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애증(愛憎) 섞인 푸켓 여행은 '기억' 속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젠 그저 웃으며 이야기한다. "그래, 그땐 그랬지"라고.



2014년 여름, 필리핀 보라카이

다시 한번 '추억'을 쌓고자 14명이 일정을 맞춰봤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6명이 겨우 휴가기간을 맞췄고 '얼리버드(early bird) 이벤트'와 알찬 정보가 담긴 블로그를 통해 생각보다 합리적인(reasonable) 가격으로 휴가를 떠났다. 

보라카이의 환상적인 날씨가 화이트비치와 어우러져 '난 지금 휴가 중'이라는 사실을 더욱 실감나게 했다. 

푸른 바다, 파란 하늘. 그리고 유난히도 빨간 자태를 뽐냈던 노을마저도 보라카이가 선사해준 매력으로 다가왔다. 

7일이라는 짧은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우린 숙소를 옮겨다녔다. 보라카이의 샹그릴라 리조트(Shangri-La's Boracay resort & Spa)는 소문도 무성했던 고급 리조트였는데 마침 체크인을 하는 날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푸켓에서 경험했던,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떠올랐다. 

이 곳 역시 바람은 거칠었다. 

비는 저녁때까지 그칠줄 몰랐다. 테라스에서 보이는 시커먼 바다에서는 폭풍우가 밀려왔다. 마치 태풍의 눈에 들어온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불빛 하나 없는 저 망망대해 위에 있다면, 얼마나 공포스러울까?'

그런 걱정도 잠시, 서서히 배가 고팠다. 비바람이 약해질쯤 6명 중 여성들만 디몰(d'mall)에서 먹을거리를 사오겠다고 했다. 나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빗소리는 강해졌고 바람은 태풍의 위력을 뽐냈다. 창문을 두드리는 세찬 빗소리는 그칠 줄을 몰랐다. 

"잘 오고 있는거겠지?"

다행히도 그들은 먹을거리를 양손 가득 들고 무사 귀환했다. 

그 때의 기억은 영화 <투모로우>의 한 장면처럼, 태풍의 눈 한가운데 고립된듯한 느낌이었다. 자연의 힘이란 이렇게나 거세고 무서운 것. 

다음 날 아침 나무에서 떨어져나간 풀잎들이 여기저기 나뒹굴었다. 얼마나 거센 폭풍우였는지 더욱 실감났다. 

비바람만 없었다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거늘. 보라카이에 머물렀던 일정동안 대략 이틀 내내 그렇게 퍼부었던 비는 여행 막바지에 그쳤다. 그리곤 다시 무더위가 찾아왔다.


2년 연속, 우리는 비바람과 함께 파란만장한 휴가를 보냈다. 잔잔했던 파도가 성나게 변해가는 모습 역시 두 눈과 두 귀로 확인했다. 


그 해 여름, 그 곳엔 온종일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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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센타라 그랜드 리조트'를 '까는' 내용은 아닙니다. 그저 개인적으로 느꼈던 그리고 당시엔 굉장히 기분 나빴던 '우리의' 경험이었으니 혹시나 리조트를 찾으시는 분들에겐 오해 없길 바랄 뿐입니다.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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