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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Sep 30. 2016

아수라판에서 나뒹구는 악인들

내맘대로 리뷰 #28번째 영화 <아수라>

※ 본 리뷰에는 스포일링 요소를 다수 포함하고 있거나 포함될 수 있습니다. 꼭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김성수 감독은 박광수 감독의 <그들도 우리처럼>(1990년)과 <베를린 리포트>(1991년)의 연출부로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 내가 그의 이름을 인지하게 된 영화는 1995년 이병헌 주연의 <런어웨이>였다. 당시 악역이었던 장세진이 꽤 인상 깊었기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진짜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그의 작품은 <런어웨이>가 아닌 영화 <비트>(1997년)다. 이 영화는 정우성을 일약 스타덤에 올린 영화이기도 하면서 정우성 뿐 아니라 고소영, 임창정, 유오성까지 큰 인기를 누리게 해 준 영화로 그 시대 청춘들의 반항과 방황, 일탈이 함께 담긴 작품이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잊을 수 없는 영화!


어쩌면 김성수 감독은 이런 류의 영화가 더 어울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영어완전정복>이나 <감기> 같은 다양한 영화를 연출하기도 했으나 큰 성공을 이루진 못했다. 반면 <태양은 없다>나 <비트> 그리고 지금의 <아수라> 등 잘 생각해보면 어두운 이면 속 우리의 삶을 그려낸 작품들이 오히려 더 수작인 듯 느껴진다.

* 물론 영화는 개인의 취향입니다.



그럼 이번 영화 <아수라>에 빠져봅시다.

영화에는 정우성, 황정민, 곽도원 등 충무로에서 가장 핫한 배우들을 죄다 모아놨다. 2013년 <감기> 이후 3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온 김성수 감독의 신작이자 캐스팅부터 화제가 되었으니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끝까지 내달리는 플롯

한도경(정우성)은 강력계 형사이자 아주 악덕한 안남시장 박성배(황정민)의 하수인이기도 하다. 썩을 대로 썩은 부패 시장 박성배는 늘 검찰의 타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김차인 검사(곽도원)와 수사관 도창학(정만식)이 도경의 약점을 이용해 박성배 시장의 결정적인 범죄 증거를 캐오라고 한다. 방법이 없던 도경은 후배인 문선모(주지훈)를 박성배의 수하로 들여보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시장의 하수인이자 검찰의 끄나풀이 되어버린 도경은 양쪽 모두로부터 압박을 받게 된다.

안남시의 부패하고 악덕한 시장, 박성배(황정민)


부감으로 보여준 가상도시 안남시는 마치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에 등장했던 멕시코 후아레즈의 어두운 모습을 연상케 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박성배 시장 OUT'이라는 문구도 보이고 철거를 앞두거나 폐허가 된 주택들도 간혹 볼 수 있다. 습하고 어두운 주택가나 거리의 음침한 뒷골목이 러닝타임의 반 이상을 채우고 있다.

참고로 김성수 감독은 저개발로 몸살을 앓았던 1970년대~1980년대의 성남시와 안양시의 모습을 상정했다고 하면서 한국판 고담시를 머릿속에 그렸다고 했다.


형사인 도경이나 검사 김차인, 한 도시를 책임지고 있는 박성배 모두 나랏밥 먹는 공직이지만 누구 하나 편하게 바라볼 수 없는 '악역'들이다. 악역은 분명히 존재하는데 이를 수습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영웅적 존재 이를테면 '선한 캐릭터'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 뜯고 비열하게 움직이는 캐릭터만 난무할 뿐이다. 이들이 영화 속 배경과 어우러져 '아수라판'이 된다. 배우 황정민이 시나리오를 보고 '아수라판이네'라는 한마디에 영화 타이틀이 결정되었다는 걸 보면 아주 절묘했다 느낀다.


불교에서 아수라(阿修羅)는 '싸우기를 좋아하는 귀신'을 말한다. 얼굴이 셋이고 팔이 여섯인 악귀. 이 아수라는 교만심과 이기심이 많은 악인들이 죽은 뒤에도 항상 싸움만 한다는 '아수라도' 즉 아수라의 세계에 머물러있다. 영화 속 캐릭터를 보다 보면 '아수라'라는 말이 왜 이리 잘 어울리는지 알게 될 것이다. 김성수 감독은 하나의 '아수라도'를 그려내기 위해 마음껏 퍼부은 듯싶다.


거침없이 내달리는 카체이싱 액션


폭우 속에서 펼쳐지는 도경의 카 체이싱 시퀀스는 무서울 정도로 내달린다. 어떻게 보면 그저 그런 차량 추격신일 수 있으나 영화 초반부터 서서히 쌓여있던 관객들의 긴장감과 도경의 분노, 스트레스가 극대화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시종일관 피 비린내 나는 씬들이 여럿 존재하지만 엔딩 시퀀스에 등장하는 '아수라판'은 지나치게 과도하다 느낄 정도다. 표면적으론 범죄 누아르나 하드보일드를 말하고 있지만 감히 말해 '하드 고어(hard gore)'인 수준이랄까? 관객들이 쉬어갈 수 있는 여유조차 없었으니 일부 평론가들이 언급했던 '끝까지 간다'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아수라판이 되어버린 장례식장 엔딩 시퀀스


아수라판에 존재하는 악역들

앞서 언급했듯 이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죄다 악역이다. 이 아수라판에서 제대로 나뒹구는 캐릭터가 바로 도경이다. 형사 옷을 입고 있는 도경은 박성배 시장의 하수인으로서 어두운 커넥션에 손을 대왔다. 그랬던 그가 무사할 수 있었을까? 박성배에게 한없이 충성하며 뒤처리를 해왔던 도경은 그만큼 약점도 많은 캐릭터다. 검찰의 그림자가 도경에게 드리워졌을 때 도경은 빠져나오려 발버둥 치지만 결국 무릎 꿇고 만다. 거침없이 성질을 부리다가도 그를 향해 툭툭 내던져지는 치명적 약점은 도경의 목숨 줄을 쥐고 뒤흔든다. 박성배냐 김차인이냐. 그 어느 곳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또 살아남으려 하는 박쥐 같은 캐릭터가 도경이다. 영화가 막판으로 내달릴수록 도경의 얼굴은 상처로 얼룩진다. 점점 변해가는 그의 얼굴을 보면 그가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 쳤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악인과 악인이 서로 결탁해 지독하고 처절한 생태계 속에서 그는 먹잇감이다. 그 먹잇감이 어떻게 폭발하는지 지켜보는 것도 도경이라는 캐릭터가 주는 재미일 수 있겠다.

상처로 얼룩진 도경의 마음과 도경의 얼굴


도경의 후배인 문선모는 영화 초반과 중반, 후반까지 모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박성배 시장의 힘이 가장 잘 드리워진 캐릭터이기도 하다. 도경과 함께 같은 형사 옷을 입었을 때와 박성배 시장 밑으로 들어가 수행원의 옷을 입었을 때의 모습은 극명하게 차이를 보인다. 후배 선모가 먹고 있는 밥 위에 생선살을 발라 얹어주는 도경. 하지만 박성배 시장의 수행원이 되고 나니 도경의 말은 그저 잔소리가 된다. 역으로 도경에게 생선살을 발라 얹어주고 지갑 속에서 2만원을 꺼내 밥 값을 내며 도경의 어깨를 툭 치며 사라진다. 권력과 돈의 힘을 알게 되면서 문선모는 점차 악인의 세계에 제대로 빠져든다. 도경과 선모가 은근하게 보여주는 브로맨스가 진실인지 거짓인지 아수라판 속에 가려져 정체를 알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도경이 생각하는 선모에 대한 애정은 '참'인 듯 느껴진다.

 

도경과 그의 후배이자 박성배의 수행원 문선모


도경과 선모, 검찰까지 뒤흔드는 악의 축이 바로 박성배 시장이다. 도시를 책임지는 시장의 모습이라기보다 도시를 지배하는 지배자의 느낌이 든다. 악행을 저지르고 있으면서도 언론과 시민들 앞에서는 그저 선행이라는 거짓을 뒤집어쓴 채 행동한다. 아주 태연하게 말이다. '악어의 눈물'도 서슴없이 내뿜는 그는 자신의 이익과 사리사욕을 위해 도경과 선모를 아주 능수능란하게 요리한다. 악한 존재임은 분명한데 그를 처단해줄 수 있는 영웅이 없다.

도경의 목을 쥐고 있는 박성배 시장

그렇다면 그를 수사하는 김차인 검사는 어떨까? 그는 과연 법을 집행하는 영웅인가? 도경을 프락치(fraktsiya)이자 미끼로 이용하는 김차인 검사는 시종일관 신사답게 대하며 존대를 한다. 김차인 검사 캐릭터를 연기했던 곽도원이 가장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그리고 그렇게 해왔던 모습이기도 하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 등장했던 조범석 검사나 <타짜2>의 장동식 캐릭터를 생각하면 아주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도 아수라판에서는 어쩔 수 없는 악인이다. 도경을 이용해 박성배를 쫓는 그도 위로 올라가고픈 욕망이 있다. 그 탈출구가 바로 박성배 체포라는 점. 도경이 발버둥 칠 때마다 도경의 약점을 하나씩 꺼내 드는 김차인 역시 박성배만큼 도경을 요리할 줄 아는 인물이다. 도경의 얼굴에서 피가 솟구칠 때도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았던 인물 역시도 김차인이다. 그가 펼치던 수사가 어떤 압력에 가로막히자 그의 절제도 분노도 한꺼번에 폭발한다. 반면 목숨이 위태로울 땐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고자 끝까지 살려달라고 외쳐대는 나약하면서 현실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박성배 시장과 맞닥들인 김차인 검사



과유불급(過猶不及)

김성수 감독의 팬이지만 아쉬운 부분은 분명히 존재한다. '꼭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나'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긴장감이라는 것 자체가 과도하다 보니 그로 인한 피로가 크게 거슬린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폭력성이 짙게 그려진데다가 수위를 벗어나 넘쳐흐르는 지독함이 반복적으로 보이니 질리기까지 한다. 단역으로 등장했던 황병국 감독이 <아수라>의 시나리오를 보고 '진짜 이렇게 할거야?'라고 했다니 플롯으로만으로도 느낌이 왔을 것이다. 물론 시나리오 자체가 통렬함으로 점철될 수 밖에 없는 점, '아수라판'에서 나뒹구는 악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럴 수밖에 없다라는 부분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더불어 훌륭한 배우들임은 분명하지만 그들에게 입힌 옷이 조금씩 맞지 않는듯한 느낌도 지배적이다. 부패한 대한민국의 씁쓸한 뒷모습이자 자화상이라고 하기엔 '과유불급'이자 비현실적 픽션으로 다가온다. 조금만 절제의 미를 보여줬더라면 '수작'이자 '명작'이 될 수 있었을텐데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 본 리뷰에는 스포일링 요소를 다수 포함하고 있거나 포함될 수 있습니다. 꼭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영화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영화에 대한 취향은 개인차가 있사오니 참고하시고 편하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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