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리뷰 #알프레드 히치콕 작품 <이창>
시나리오 작가 존 마이클 하예즈는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과 인연이 깊다. 영화 <이창>을 시작으로 <나는 결백하다>(1955년), <해리의 소동>(1955년),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1956년) 등 몇 편의 영화로 호흡을 맞춰왔다.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1956년 작품인데 리메이크 작업 중 크레디트 문제로 서로 간의 논란이 있었고 이후 공동으로 이름을 올린 작품은 없다고 알려져 있다. 존 마이클 하예즈가 각본으로 이름을 올린 마지막 작품은 맥켄지 애스틴과 케빈 스페이시 주연의 <늑대 개>(1994년)이다. 그는 2008년 고령으로 세상을 떠났다.
존 마이클 하예즈의 각본으로 만들어진 알프레드 히치콕의 <이창>은 관음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서스펜스 스릴러로 그려진 일종의 우화다.
사진작가인 제프(제임스 스튜어트)는 카레이싱을 촬영하던 중 사고로 인해 다리를 다치게 된다. 휠체어에 의지할 뿐 잘 움직일 수 조차 없이 하루하루 지루한 시간을 보낸다. 창 밖으로 보이는 곳에 이웃들을 바라볼 수 있어 이에 대해 나름 흥미를 느끼게 된다. 매일 같이 우울한 듯 보이는 미스 고독, 늘 발레 자세로 몸을 푸는 무용수, 갓 결혼한 신혼부부, 병든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 중년의 남자. 이웃들과 말 한마디 섞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볼뿐이다.
하루하루 무심코 밖을 바라보던 중 병든 아내는 어느 순간 사라지고 중년의 남자만 보이는 것에 대해 이상한 낌새를 느낀다. 갑자기 이웃의 강아지가 죽고 톱과 큰 칼을 신문에 싸거나 큰 짐가방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는 등 의심스러운 모습을 목격하고는 '남편이 병든 아내를 죽인 게 아닐까' 더욱 의심을 하게 된다. 급기야 연인인 리사(그레이스 켈리)와 간호사 스텔라(델마 리터)의 도움을 받아 이 집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관음에 대한 인간의 욕망
영화 <이창>은 인간 내면에 숨겨진 '관음(觀淫)'에 대한 욕망을 이야기한다.
이웃을 바라보는 제프의 시선은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과 동일시되어 나름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마치 제프가 휠체어에 의지한 채 움직일 수 없는 모습처럼 우리 또한 제프의 눈과 제프의 카메라 렌즈에 의지하여 이웃의 행동을 바라보게 된다.
제프와 달리 제프의 연인인 리사는 과감한 편이다. 제프가 이웃을 바라보며 의심이 드는 중년 부부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지만 점차 제프의 시선과 동일선상에 놓이게 된다. 급기야 중년의 남자가 집을 비운 사이 단서를 찾으려 집 안까지 들어갈 만큼 과감하고 용기 있으며 모험심 또한 넘친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살인 용의자. 제프의 시선과 심리는 이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과 동기화되어 이제 그만 거기서 나오라고 말하는 제프의 혼잣말이 관객의 마음을 대변한다. "리사 거기서 뭐해! 어서 나와!"
나 역시도 '어서 빠져나와야 할 텐데'라는 마음을 가졌으니 말이다.
이웃들의 행동 하나하나, 리사와 스텔라가 몰래 이웃집 화단을 파헤치는 모습까지도 제프와 관객은 같은 곳을 바라보며 마음 졸이게 된다.
히치콕의 맥거핀(Macguffin)
맥거핀(Macguffin)이란, 관객의 호기심을 살살 자극하면서 긴장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요소로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건이나 상황, 인물이나 동물 또는 소품을 지칭한다. 대다수의 관객이 서스펜스나 스릴을 느낄 수 있도록 교묘하게 장치해두었으며 이를 통해 관객 스스로 추리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일종의 속임수다.
최근 '떡밥 영화'로 유명했던 영화 <클로버필드 10번지>와 같은 경우가 그러하다. 이 작품은 영화 전체가 맥거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워드(존 굿맨)의 정체는 무엇인지, 외계 생명체가 있는지, 어디서 흘러왔는지, 정말 외부에 노출되면 목숨이 위태로운지. 관객은 영화가 끝나는 시점까지 알 수 없도록 만들어져 '속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바로 이 맥거핀이라는 존재는 히치콕 감독이 작품 속 플롯을 보다 역동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사용했으며 이후 보편화되었다.
* <클로버필드10번지>에 대해 일전에 리뷰했던 브런치 글입니다.
https://brunch.co.kr/@louis1st/46
영화 <이창>에서는 3층에 사는 부부가 강아지를 산책시키는데 굳이 함께 내려오지 않고 바구니에 강아지를 담아 마치 엘리베이터처럼 1층으로 내려보낸다. 익숙한 듯 강아지는 바구니에 올라탄다. 어느 날 이 강아지가 화단을 파헤친다. 마치 그 속에 무엇인가 있는 것처럼. 관객은 여기서 '미끼'를 물게 된다. 중년의 남자가 톱이나 칼로 아내를 살해하고 파묻었던 게 아니었을까 믿도록 만들어진 맥거핀이다. 물론 크게 의심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시퀀스이기도 하지만 강아지에게 짜증을 내는 용의자의 모습 그리고 의문사한 강아지를 보면서 '미끼'를 삼킬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졌다. 히치콕이 왜 맥거핀을 그렇게 중요시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창>이라는 영화는 샤이아 라보프 주연의 <디스터비아>와 굉장히 닮은꼴이다. '현대판 + 틴에이저'로 만들어진 <디스터비아>는 가택 연금으로 집에 갇힌 케일(샤이아 라보프)이 이웃들을 훔쳐보다 건너편에 사는 미스터 터너(데이빗 모스)를 연쇄 살인자로 의심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꽤 짜릿한 스릴을 안겨주었던 영화다.
<이창>에서 보여주었던 영화 속 제프의 행태 즉 영화 전체에 깔린 '관음'은 <디스터비아>에서도 그대로 전해진다. 상대를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 하지만 나의 존재를 모르는 상대. 이는 단순하게 내 시선을 통해 느껴지는 재미이자 쾌감일 수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묘한 권력이자 범죄다. <이창>이 아날로그적 관음이라면 <디스터비아>는 디지털 기기라는 트렌드를 접목시킨 관음일 것이다. 우리 시대에 흔히 볼 수 있는 '몰카범죄' 역시 진화하는 수준을 보면 <이창>에서 <디스터비아>로 이어지는 장치들과 흡사하다.
히치콕의 <싸이코>에서도 누군가를 몰래 관찰하는 장면이 짧게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도 히치콕은 서스펜스와 관음증을 아주 적절하게 믹스하고 표현했다. 누군가는 이야기한다. 스릴과 관음 그리고 그 장치들을 맥거핀과 섞어 영화에서 어떻게 쓰여지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교과서' 같은 존재라고. 역시 거장(巨匠)이라 불릴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