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리뷰 #29번째 '작품', 최승호의 <자백>
※ '대한민국을 바꿔라'라는 큼지막한 카피가 들어간 포스터로 시작해봤습니다. 더불어 이 영화, 이 독립다큐가 이 나라를 바꾸는 발판이자 계기이자 기반이 되기를 희망해봅니다.
※ 스포일링 요소가 있을 수 있지만 이 다큐에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
함경북도 소재의 의학전문학교 즉 일종의 의대인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의사로 활동했던 유우성씨는 북한 체제에 대한 괴로움과 고통, 환멸을 느끼고 2004년 중국으로 탈북했다. 이후 유우성은 화교 출신으로 대한민국에 들어오게 되었고 2011년 북한이탈주민 자격으로 서울시청 공무원에 '특별채용'되었다.
2013년 국가정보원은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가 국내 탈북자 약 200여 명의 정보를 북한에 넘겨주었다며 간첩 혐의와 국가보안법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국정원은 유우성씨의 여동생 유가려씨의, 이른바 '자백'을 받았다고 한다.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가 상영관을 울리며 영화가 시작되었고 대한민국의 민낯이 하나 둘 벗겨졌다.
유우성과 유가려 남매가 꿈꾸던 행복은 그렇게 멀어져 갔다
"유가려씨, 오빠 유우성씨가 북한에 다녀왔죠?" "네"
"오빠가 북한에 정보를 넘겼죠?" "네"
국정원은 유우성씨의 여동생, 유가려씨를 통해 자백을 받아냈고 그 자백은 재판에서 유우성씨가 간첩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그리고 검찰에게 유리하도록 교묘하게 활용되었다. 국정원은 오빠와 잘 살 수 있게 해주겠다고 회유했고 또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으면 오빠가 잘못될 수 있다고 협박을 해온 것이다.
유가려씨는 기자회견을 통해 국정원 직원들로부터 심한 폭행과 협박을 당해 허위로 진술했다고 이야기했다.
유가려씨의 증언은 결국 번복되었고 국정원의 간첩 조작 사건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국가정보원은 유가려씨를 통해 얻어낼 수 있는 게 더 이상 없었다. 결국 그녀는 대한민국에서 추방당했다. <자백>의 제작진들도 그녀에게 인사했다.
"가려씨, 잘 가요"
그동안 그렇게 눈물샘이 마르도록 울음을 터뜨렸지만 떠나는 날 그녀는 오히려 눈물을 참아냈다.
1심에서 유우성씨의 국가보안법 위반은 무죄가 선고되었다. 다만 여권법 위반 혐의는 유죄가 되어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검찰은 1심 이후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에서 중국 정부의 문서를 증거로 제출했다. 유우성씨가 중국과 북한을 오갔다는 출입 기록이었다.
더불어 국정원은 출입기록과 일치하는 유우성씨의 북한 배경 사진도 확보했다고 했다. 이게 진짜라면 결정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출입국 기록에 쓰여진 그 날, 유우성씨는 중국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고 거기서 찍힌 사진도 존재했다. 국정원은 이 사진을 감췄다. 최승호 PD는 중국 정부가 발급했다는 문서의 진위 여부와 중국에서 찍었다는 사진의 팩트 체크를 위해 중국 이 곳 저 곳을 파헤쳤다. 중국에서 찍은 사진은 사실이었다. 이어 중국 정부가 발급했다는 출입국 기록에 대해서 중국 공안은 발급한 적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결국 검찰이 제출한 증거 또한 위조된 것이라는 의혹이 불거졌고 그 논란은 확산됐다. 검찰이 제출한 문건은 국정원이 중국의 공안국을 통해 확보한 내용이라고 알려졌다.
최승호PD가 사건을 담당하는 검사를 쫓아다니며 묻고 또 물어봐도 늘 같은 대답으로 일관했다.
"자세한 내용은 법정에서 이야기할 겁니다"
끌어내고 밀쳐내기 일쑤였다. 최승호PD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도 마이크를 가져다댔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행정고시를 통해 공무원이 되었다. 그는 2009년 2월부터 2013년 3월까지 국정원장을 역임했다. 허위 자백으로 유우성씨를 체포한 그 당시의 국정원장이다.
"사과 한마디 하시죠"라는 최승호PD의 물음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모른다"라고 화를 냈다. 그리곤 우산으로 얼굴을 가리며 제 갈길을 갔다. 카메라 렌즈는 울컥한 최승호PD와 우산에 가려진 원세훈의 모습을 한 프레임에 담아냈다.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는 원세훈의 얼굴을 보니 최승호PD가 왜 울컥했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원세훈의 모습은 섬뜩하기까지 했다.
결국 유우성씨는 길고 긴 시간을 끝내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같이 행복하게 살고자 했던 여동생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거대한 빙산의 아주 작은 일각(一角)
국정원의 간첩 조작 사건에서 유우성씨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 간첩 혐의 조사를 받던 중 사망한 탈북자 한준식씨는 무연고 무덤에 묻혔다. 하지만 국정원은 그의 죽음에 대해 부인했다. 최승호PD는 다시 한번 중국으로 넘어가 한준식씨가 남기고 온 딸과 전화 통화를 하며 그의 죽음을 알렸다.
"나 아버지 친구야. 아빠가... 아빠가 돌아가셨어"
딸에게 아빠의 죽음을 알리는 중책도 최승호PD가 고스란히 떠안았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106분. 대부분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이지만 그중 몇몇 시퀀스에서 중요인물이 등장한다. 앞서 언급했던 원세훈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 비서실장.
그는 1974년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 부장으로 1975년 학원침투간첩단 사건을 담당했다. 당시 남산에 있었던 중앙정보부 지하실은 수많은 피해자들이 나온 곳이다. 고문을 받고 협박을 당해 거짓 자백을 받는다. 수십 년 동안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쓰게 된 사람들이 뒤늦게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들이 연루되었던 사건과 판결 결과들이 오랜 시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뒤덮는다.
최승호PD의 집요한 물음과 명백한 증거 앞에서도 김기춘은 꿋꿋한 자세로 "모른다", "기억에 없다"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당시 피해자들은 '기억하기 싫은'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학원침투간첩단 사건은 중앙정보부의 재일동포 간첩단 조작 사건을 말한다. 이는 김기춘이 기획한 사건이다. 피해자 중 하나인 김승효씨는 일본에서 거주한다. 살아있지만 고문의 후유증이 고스란히 남아 몸을 떨고 무언가에 홀린듯한 모습을 보인다. 친구들이 찾아와 반갑게 맞이하지만 당시의 사건을 회상하며 "대한민국은 나쁜 나라"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곤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크라우드 펀딩의 힘이 하나의 작품으로
영화 <자백>은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있었던 국정원의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룬 것으로 뉴스타파 최승호PD의 프로젝트로 제작되었다. 이 영화 역시 펀딩 프로젝트로 제작비를 모았다. 2016년 6월 카카오 스토리펀딩을 오픈했고 약 2달 반 만에 4억이 넘는 금액이 모였다. 무려 1만 7천여 명이 이 펀딩에 참여했다.
영화가 끝난 후 나타나는 제작진 크레디트와 더불어 펀딩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줄을 지어 올라가는데 후원자의 이름만 올라가는 시간이 꽤 된다.
10월 25일, 영진위 기준으로 누적 관객 9만 6천372명을 기록했다. 13일 개봉했으니 약 2주간 누적된 결과다. 100개도 되지 않는 상영관에서 불과 200 여번 상영했음에도 이 영화를 찾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다. 독립 다큐멘터리가 10만 명을 넘어선다는 것, 특히나 <자백>과 같은 작품에 이러한 관심이 있다는 것 또한 매우 당연하면서도 놀라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영화 속에서 최승호 PD는 중국, 일본 등 여기저기서 꽤 고생한 흔적이 보인다. 이 프로젝트가 이렇게 영화관에서 상영되기까지 무려 40개월이 소요되었다. 얼굴을 가리고 마이크를 피해 다니는 권력들의 민낯을 카메라를 통해 담을 때마다 그들은 소리친다.
"누구냐. 소속이 어디냐? 명함 내놔라!", "모른다", "기억에 없다"
손바닥으로 결코 하늘을 가릴 순 없다.
팩트를 담아 하나의 작품으로 거듭난 <자백>은 완벽한 시나리오나 플롯 자체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흔한 다큐멘터리로 생각했지만 결코 흔하지 않았다. 이 작품이 이 나라 전체를 바꿀 순 없겠지만 '변화'할 수 있는 작은 힘이 되었으면 한다.
※ 내용에는 스포일링 요소를 많이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그게 무슨 의미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