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잠깐의 여유를 가져보세요

by Pen 잡은 루이스

AI를 불러내 오늘 좀 피곤해 보이지 않느냐고 물었다.

“어제보다 눈 밑 그림자 데이터가 13.8% 더 진해졌습니다. 평균 회복 속도를 감안하면 오늘은 과로 위험 구간에 해당하니 피로도를 줄이기 위해 휴식을 권장합니다”

다크서클에 좋다는 아이크림도 매일 써봤지만 좀처럼 나아지질 않는다. 프랑스에서 왔다는 달팽이 성분이 무슨 소용이랴,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하다. 인공지능은 농담처럼 던진 질문에도 숫자와 통계로 답한다. 나는 단순히 “오늘 좀 늘어지는 것 같다”라고 말하고 싶었을 뿐인데 AI는 지난 데이터를 끌어와 나를 대신해 설명한다. 마치 건강검진을 받고 난 후 검진결과를 받아 든 기분이다.


사실 인간이 느끼는 ‘피로’는 모호하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피곤하다. 병원에서 의사에게 상담했다는 어느 부서 리더의 일화가 떠오른다.

“선생님, 제가 요즘 너무 피곤한데 왜 그런 걸까요? 좀 걱정이네요.”
“환자분, 저도 피곤합니다. 매일 그래요, 매일”

의사도 사람이니 나랑 다르지 않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몸이 무겁고, 또 다른 날은 점심 이후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커피를 세 잔이나 마셨는데도 졸음을 견디기 힘든 날이 있다. 인공지능은 이런 것도 아주 정밀하게 분석한다.

“지난 3일간 평균 수면 시간은 6시간 32분입니다. 걸음 수 목표 달성률은 98%이고, 심박수는 평균보다 높은 74 bpm입니다.”

숫자는 정확하고 논리적이다. 반박할 여지가 없다. 아니 반박하고 싶지도 않다. 이런 숫자놀음이 곧 위로가 되진 않는다. 6시간 32분이나 33분이나 별 차이가 없고, 내 심박수가 74인지 84인지 체감하기도 어렵다. 6시간 자던 사람이 7시간을 잔다고 해서 피로가 사라질까? 눈에 보이는 데이터와 내가 느끼는 피로감의 관계는 언제나 애매하다.


그래서 물었다. “결국 지금 내가 필요한 건 뭐지?”

잠시 ‘분석 중(Analyzing)’이라는 문구가 뜨더니 AI가 답했다.


“잠깐의 여유를 가져보세요.”


숫자와 통계로만 나를 진단하던 AI가 그 순간은 마치 사람처럼 내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했다. 사실 “잠깐의 여유를 가지라”고 말해주는 이는 없었다. 나조차도 내게 그런 허락을 해본 적이 없다.

“괜찮아, 그동안 열심히 달려왔잖아.”
“잠깐 쉬어도 돼.”

인간은 효율보다 존재의 안도감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인공지능이 오히려 먼저 말해준 순간이었다. 나는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휴대폰은 충전 케이블에 달린 채 고요히 잠들어 있다. 아주 잠깐의 시간이지만 숨소리마저 고요하다. 아침부터 열일하던 인공지능도 지금 이 순간에는 하는 일 없이 스탠바이 중이다.


진짜 필요한 건 나 대신 일을 해주는 인공지능이 아니다. “쉬어도 괜찮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나 자신이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