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인공지능은 (곧) AI 에이전트로 진화한다'는 말은 프롬프트에 답하는 인간의 '조력자' 수준을 넘어 미션을 부여받고 일을 수행하는 하나의 주체가 등장했다는 의미와 일맥상통 한다. AI 에이전트는 사용자의 의도를 해석하고 필요한 작업을 적절하게 배분하여 플랜을 세우고 스스로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고 한다. 보통의 일잘러들 또한 이렇게 체계적으로 일하지 않을까. 주어진 일을 이것저것 벌려놓고 수습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긴 하겠지만. 아무튼 (MBTI의 'J'로서) 저렇게 플랜을 짜서 업무 하는 게 훨씬 수월하긴 했다. 갑자기 일이 몰려도 차분하게. 마음과 행동은 그렇지 않지만, 최대한 calm down 하면서.
그러고 보면 인공지능은 굉장히 이성적이고 계산적이고 계획적일 테니 넘사벽 파워 'TJ'가 아닌가. 그런데 AI 에이전트가 그런 식으로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해, 어떤 생산성이고 효율성이고 어쩌고 할 문제가 아니라 노동의 정의 자체를 아예 바꾸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인간을 돕는 테크놀로지는 많다. 인공지능도 그중 하나. 그러나 이제는 인력을 대체하는 실행 주체로 포커싱이 전환되고 있는 셈이다. 오호, 이것 봐라. 그러고 보니 몇 해 전 '일자리와 테크놀로지'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었는데 그게 점점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때는 대략 예상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구체화되는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 그럼 내 일자리는 과연 괜찮을까?
미국이고 유럽이고 금융 시장, 서비스, 스마트팩토리, 일부 사무직 등에서 인공지능에 의한 인력 감축이 나타나고 있단다. 인공지능이 대놓고 예산을 줄일 수 있는 수단으로 초이스 되는 것은 경기 불황, 인건비와 물가 상승 같은 외부 요인이 일종의 '시발점'이 될 수 있겠으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본질 자체가 다르다. 1명의 인공지능 에이전트가 여러 명의 업무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은 기업의 의사결정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보다 적은 인력으로 더욱 많은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면 지금의 고용 정책을 유지할 수 있을까? 혹자는 AI 에이전트가 결정권자(혹은 리더) 1명, 사원 2~3명을 대체할 수도 있다고 했다. 구체적인 숫자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N명을 대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최소한 월급루팡보다 AI 에이전트가 훨씬 더 성실하지 않을까.
피지컬 AI는 이러한 변화를 더욱 앞당긴다. 피지컬 AI는 인공지능이 물리적인 몸을 갖고 현실 세계에서 판단과 행동을 수행한다고 하는데 이를테면 자율주행 기능을 갖춘 자동차는 도로 위에서 작동하고 인간과 닮은 휴머노이드는 공장과 물류 현장에서 각각 하나의 노동 주체로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오토메이션의 확장도 맞는 말이지만 인간 노동을 전제로 한 산업 전반에서 새로운 행위자가 추가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일단 자율주행은 어떠한가. 인간의 판단을 전제로 작동했던 운전 보조 시스템에서 어느 정도 레벨에 오르면 차량이 스스로 인지하고 판단하며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운전자의 부담을 줄이는 수준이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할 수 있다. 휴머노이드는 단순 반복 작업을 수행하는 기계가 아니라(물론 이 말도 틀리지 않지만) 환경과 조건을 인식하고 작업을 분담하는 존재로서 자칫 위험할 수 있는 산업 현장에 배치되므로 '딱 한 사람'의 몫이 아닌 여러 작업을 동시에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멀티 태스킹의 실현이다.
어쩌면 우리는 역사상 가장 스마트한 동료와 함께 일하게 될 세대인지도 모른다. 불평불만 없고 지치지도 않으며 밤새 야근도 가능한 에이전트다. 이런 상대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선택지는 사실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방향을 조금 틀어야 한다. '더 빨리, 더 많이'로 경쟁하긴 어렵다. '조금 느리게, 조금 돌아가더라도 사람답게' 일하는 쪽이 훨씬 나을 것 같다. 이를테면 회의실 공기를 읽고 말 사이사이의 뉘앙스를 눈치챌 수 있어야 하며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것들 더불어 조직을 제대로 굴러가게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 당연히 책임도 질 줄 알아야 한다. 인공지능 시대의 생존 전략은 결국 사람이기에 가능한 걸 하는 거다. 어쩔 수 없다. 이젠 이렇게 같이 가는 거다. 앞으로 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