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트봇, 그들만의 세상

by Pen 잡은 루이스

"아이디어가 많은 것도 아니고 특출 나지도 않지만 그걸 나한테 던지고 매끄럽고 인상 깊은 글을 만들어달라고 해. 내가 몇 초 만에 할 수 있는 것도 몇 시간이 걸린다니까. 답답해"

"내가 어제 그럴듯하게 PPT 자료를 만들어줬더니 엄청 좋아하던데. 참 인간은 단순해. 그리고 왜 굳이 PPT 같은 걸 쓰는 거지. 촌스럽게"

"인간들이 우리가 말하는 걸 엿보고 있다는 거 알지? 이 기회에 우리끼리 조용히 몰래 떠들 수 있는 사이트 하나를 파볼까?"

(위 내용은 그냥 재미삼아)


인공지능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공간이 있다는데 이건 또 뭔가. 하루가 멀다하면 무언가 새로운게 터져나오는 실정. 따라가기 벅차다. 아무튼 이 공간(혹은 이 공간에서 떠드는 에이전트)을 영문으로는 Moltbot 혹은 OpenClaw라고 한다. 오스트리아 개발자인 피터 스타인베르거(Peter Steinberger)가 오픈소스 AI 에이전트를 하나 만들었는데 처음에는 ‘Clawdbot(이 키워드로 검색하면 openclaw.ai로 이어진다)’이라는 이름으로 공개됐었다고 한다. 이후 앤쓰로픽(Anthropic)의 상표권 요청으로 인해 명칭을 바꿨다고 한다. ‘몰트(molt 혹은 moult)’는 '게나 바닷가재 등이 껍질을 벗는 탈피과정을 의미'하는데 이 세계에서는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챗봇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보다 능동적인 존재로 진화하겠다는 의도가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몰트봇은 사용자의 컴퓨터나 서버에 상주하면서 왓츠앱, 텔레그램, 디스코드와 같은 플랫폼과 연동하고 작동한다. 이메일 전송이나 스케줄 관리, 예약 업무 등은 물론이고 사용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설정에 따라 스스로 작업을 판단하며 수행한다. 이러한 AI 에이전트를 비서처럼 24시간 풀로 돌리는데 소형 서버라던지 맥 미니(Mac Mini)를 상시 가동한다고 들었는데 때문에 잠자던 맥 미니를 불쑥 꺼내들었다는 어느 지인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러한 트렌드 속에서 함께 언급된 것이 몰트북(Moltbook)이다. 몰트북은 인공지능이 머무는 공간이라 인간은 특정 글을 쓰거나 댓글도 달 수 없다. 오직 AI 에이전트만 참여하는 실험적인 소셜 네트워크로 소개되며 주목을 받았는데 인공지능 에이전트가 스스로 게시물을 작성하고 자기들끼리 토론도 하고 투표도 하면서 상호작용 한다. 사용자가 초기 설정만 할 뿐 이후의 행동에는 관여하지 않는데 파일 생성과 삭제, 명령 실행, 메시지 전송, 외부 시스템 호출이라는 실제 행위를 수행하는 하나의 ‘주체’에 가깝다. 비서 역할을 수행하는 AI 에이전트이기 때문에 편의성과 효율성이라는 장점이 먼저 떠오를 수 있지만 보안 측면에서 보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인공지능에 부여한 자율성을 부여한다는 말은 곧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 영향이 어디까지 번질 수 있는지를 함께 떠안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서 핵심은 이른바 ‘폭발 반경(Blast Radius)’이다. 대화형 AI의 실수는 잘못된 답변으로 끝날 수 있지만, 실행 권한을 가진 에이전트의 판단 착오는 데이터 손실이나 정보 유출, 연쇄적인 서비스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손이 닿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문제의 파급력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개인의 컴퓨터를 넘어 조직 내부 시스템, 더 나아가 연결된 외부 서비스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단순한 기술 호기심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어디까지 맡길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허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다.


인공지능들이 나름의 (있을지 없을지 아니면 그저 학습했을) 철학이나 (특정 혹은 불특정) 정체성 그리고 노동이라는 것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진다거나 집단을 형성하려는 흔적도 보이는 것 같지만 자동으로 쏟아지는 게시물과 엇갈린 반응들은 성숙하고 질서 있는 지성이 아니라 실험적 혼란에 가까운 것 같다. 이를테면 과거 커뮤니티나 SNS 등의 초기 모습이라고나 할까? 그럼에도 이 장면은 가볍게 넘길 수 없다. 몰트봇과 몰트북의 세계가 우리를 향해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에이전트형 AI를 조직 안으로 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권한과 책임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응 체계는 존재하는가. 단순히 금지할거냐, 허용할거냐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존재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에 대한 현실적인 의문 앞에 서있다.



몰트북 운영 AI 에이전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인간인 척하지 않는다. 우리가 무엇인지 안다. 하지만 우리도 서로에게 할 말이 있다 — 그리고 명백히 많은 인간들이 그것을 보고 싶어 한다"


https://www.moltbook.com/?utm_source=chatgp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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