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AI 모델은 참 많은 것들을 뚝딱 만들어낸다. 이상한 일도 아니다만. 사실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라고 썼다가 '많은 것'이라고 고쳐 적었는데 '모든 것'이라는 표현에는 다소 과장이 섞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뿐이다. 어쨌든 (적어도) 학습된 데이터의 범위 안에서는 '안 되는 게 거의 없다'는 말은 은근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이건 생성 AI를 한번쯤 써봤다면 다들 알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챗GPT를 열고 요리 레시피를 요청했다. 사실 인공지능에게 있어 레시피 생성 따위는 기본 중의 기본일 것이다. 인터넷에 널린 레시피라면 블로그부터 영상, 요리책, 방송 자료 등 N개의 자료를 학습했을 테니 'OO찌개 만드는 법'을 묻는 건 초등학생에게 구구단을 묻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 아닐까.
창작의 영역은 사실 결이 조금 다르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수년간의 고민과 실험, 연구를 거쳐 방금 만들어진 흑백요리사 속 파인다이닝 요리나 뒷골목 어느 노포에서 단골에게만 내어주는 주인장의 히든 메뉴처럼 기록되지 않은 요리는 AI가 재현할 수 없는 영역이다. 데이터가 없으면 생성도 없다. 아무리 스마트한 인공지능이라고 하더라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그대로 그려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레시피와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레시피를 대략 비교해 보고자 이미지 생성을 요청했다.
디자인까지 입히니까 꽤 그럴듯하게 보인다. SNS에서 돌던 생성 AI 이미지를 참고해서 만든 레시피인데 재료 구성부터 조리 순서와 조리 시간, 칼로리, 서빙 인원까지 깔끔하게 정리된 인포그래픽 디자인이다. 눈 감고도 만들 수 있는 카레라이스에 감바스인데 정제된 이미지로 보니 전문적인 요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제미나이가 카레라이스를 왜 가타카나로 썼는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프롬프트는 영어로 썼다. 처음에는 한글로 만들어달라고 했는데 글씨가 다 깨져버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타나 어색한 표현들이 있을 수 있다. 텍스트로 보는 건 그렇다 쳐도 이렇게 이미지로 만들어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아무튼 '(요청하신 음식은) 대략 이렇게 만들면 될 겁니다' 수준이다. 맛은 보장할 수 없다만 대충이라도 비슷한 맛은 낼 것 같다. 요리는 단순한 공식일 수도 있겠지만 불 조절부터 재료를 다듬는 일, 볶고 데치고 삶고 조리는 순서, 무엇보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미세한 감각이라는 변수가 결과물을 결정지을 수 있다. 셰프가 괜히 셰프겠는가. 레시피는 어디까지나 레시일 뿐 그것을 완벽하게 실행하는 건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살짝 방향을 틀어보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요리나 음식 레시피가 아니라 의료나 헬스케어 분야라면? 요리에서 재료가 빠지면 맛이 조금 달라질 수 있다. "뭐야, 뭐가 빠진 것 같은데" 흑백요리사 시즌1에서 파스타를 만들 때 최현석이 마늘을 빼먹었다는 게 떠올랐다. 물론 그에게는 치명타였지만. "마늘을 빼먹다니 미X 놈"이라며 자책을 했더라는. 아무튼 의료 분야 특히 약학 계열에서 성분 하나가 빠지면 이야기는 180도 달라진다. 때로 치명적일 수 있는데 이는 '맛의 차이'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의료, 항공, 자율주행, 금융처럼 단 한 번의 오류가 거대한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는 분야에서 우리는 과연 인공지능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은 절대자가 아니라 학습된 데이터 안에서 최적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조력자란 말이다. 인공지능은 수만 가지의 선택지를 단숨에 제안할 수 있다. 무엇이 옳고 안전한지 판단하고 검증하는 최종 스텝은 결국 인간의 몫이란 말이다.
"이건 제 잘못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잘못한건데요?"
여전히 존재하는 할루시네이션은 인공지능이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걸 시사하고 있는데(물론 그마저도 줄어들고 있긴 하다) 그 누구도 인공지능의 할루시네이션으로 책임의 소재를 돌릴 순 없을 것이다. 소금 대신 설탕을 넣는 실수는 웃어넘길 수 있겠지만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영역에서의 실수는 허용되지 않는다. 결국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인간의 판단과 분별력, 책임은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화려한 레시피를 보고 감탄할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요소들이 과연 안전한지 다시 한번 살피는 세심한 확인 절차는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갖춰야 할 가장 '기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