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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큐 Miss Que Dec 15. 2022

내 인생을 돌고 돌아 그림 작업의 세계로




인생의 멘토와 주변 환경 

내가 다닌 대학교에 왜 닮고 싶은 사람, 스승 같아 보이는 사람이 없었을까요? 

대학을 졸업하고 갤러리에서 일을 할 때 내 눈에 비친 교수님들은 작업은 다른 사람에게 시키고 놀고 있는 것만 봤어요. 집에 가서는 치열하게 사셨나 모르겠지만 내가 보고 배운건 그런 것들이에요. 

작업하는 선배들이 생계유지를 위해 녹아다를 뛰고, 찢어지게 궁핍해 보이는 것도 보기 좋지는 않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선배들의 진지함과 열정을 배우고 싶어요. 


미술계를 떠나려고 노력하다. 

소 엉덩이를 벽에 박아놓고 오물이 콸콸 나오는 작품이나, 나체로 먹물을 온몸에 묻히고 전시회 바닥에서 뒹구는 선배에게서는 어떤 메시지도 받지 못했어요. 어설픈 흉내 같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용기와 시도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그때 그 젊은 작가를 칭찬해주고 배우고 싶어요.  

그때는 보고 배운 게 그게 다여서, 모든 인맥이 미술업계에 있는 사람이라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어학연수하고 와서도 못하던 영어를 붙들고 공부해서 무역회사에 취직했어요. 나는 정상적인 월급이 나오는 직장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성공한 것 같았어요.  나 스스로 진로를 튼 것에 대해 기특했어요. 


다시 돌아오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3-4년 정도는 보통사람들처럼 회사 다니고 정상적인 생활이 되는 삶을 사는 게 자랑스럽고 좋았는데, 다시 작가가 되고 싶어 졌어요. 대학원에 간 친구들이 부러웠어요. 나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할지 모르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몰랐어요. 


자기 경영이 기본이다. 

전업 작가가 되려면 자기 경영의 달인이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고, 목표가 무엇인지도 알고, 계획을 세워 추진해 나가는 능력이 없었어요. 나를 한계 짓고 감히 못 꾸는 꿈들이 많았어요. 빨리 돈을 벌어야 한다는 조급함도 있었어요.  

결혼해서 미국에 오고 학교를 가고 싶었지만 돈을 벌기로 결심했어요. 뉴욕의 패션회사에서 무역업무를 했어요. 그러면서 갤러리에 꾸준히 봉사를 하며 작가들을 만났지만 그때도 여전히 어떻게 내 작업을 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드디어 작업의 세계로 돌아왔다. 

포틀랜드로 이사를 가서 아이가 한 살이 되기 전에 작업을 시작했어요. 내가 기획한 작업이 아니라 돈이 되는 기업 프로젝트를 입찰받으려고 아이디어 스케치를 하고 샘플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입찰을 받고, 다른 조각가들을 찾아 협업하고, 조각가들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난 행운이었죠. 하지만 여전히 내 작업을 하는 법을 몰랐어요. 돈이 되는 기업 프로젝트만 쫒았어요. 그때 많은 사업의 기회가 내 앞에 왔어요. 하지만 내가 준비되지 않았어요. 


3D 프린트로 조각가들의 일이 대체되다. 

조각가들에게 주던 일들이 점점 3d 프린트 업체로 넘어가고 대체되었어요. 나조차 프로젝트를 따서 3d 디자인으로 기초작업을 하는 방법을 도입했어요. 비용이나 시간면에서 효과적이었어요.  나는 3d 프로그램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어린 아들 그리고 빠듯한 남편의 봉급으로 학원을 가는 건 사치라고 생각했어요. 혼자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여기에서 또 자기 경영의 한계에 부딪혔어요. 나에게 투자하고 그만큼 뽑아낼 자신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해요. 


독학의 어려움 

남을 위한 일은 밤을 새우고 온몸이 부서져라 하면서 내 일은 대충이에요. 학교 다닐 때도 내 숙제보다 남의 숙제를 더 열심히 도와줬던 것 같아요. 독학하기로 마음먹었던 3d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예요. 사람들과 연결되어있지 않은 내 일이니 대충 해버렸어요.  주위에 같은 공부를 하고 같은 어려움을 느끼는 동료들이 없어서 뭐가 문제인지 어디서부터 시작하고 끝을 내야 하는지 어떤 게 이 공부를 연결시켜 나가야 하는지 찾는 게 어려웠어요. 나와 같은 목표를 바라보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환경의 중요성을 느꼈어요. 


육아와 독학의 어려움 

그때쯤 엘에이에 살고 있었어요. 학원을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알아봤는데 한 달에 3000불이 조금 안됐던 것 같아요. 아들을 데이케어에 보내고 가야 하는데 데이케어 비용은 1500불이었어요. 거리는 집에서 거의 한 시간이었어요.  왕복 2시간 빼고 그 비싼 학원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어요. 수업시간은 당연히 맞출 수도 없고요.  그때 그 학원에 다녔으면 뭔가 달라졌을까요?  어차피 게이머들의 그 분위기와 업계는 나와 맞지 않았어요. 


3D에서 모션그래픽 공부로 

포토샵, 일러스트나 처음부터 똑바로 배우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러다 모션그래픽에 관심이 생겼어요. 일단 무엇을 할지 어디에서 시작할지 몰라 이것저것 파헤치다가 나의 관심이 좁혀졌다는 것도 큰 수확이었어요. 


인생의 매 순간에 내가 하고 싶은 결정을 하고 나아간 이 여자는 누구지? 

그때쯤 큰돈을 들여서 온라인 수업을 사고, 모션그래픽을 배우기 위한 기본을 독학하기 시작했어요. 같이 배우는 그룹에 소속이 되지 않고 혼자 배우는 것은 어려운 것 같아요. 그 부분을 채워주려고 학원에서 페이스북 그룹을 만들고 연습 과제를 셰어 하게 만들었지만 소통은 어려웠어요. 그 온라인 학원의 팟캐스트를 듣다가 모니카 킴이라는 사람의 인터뷰를 들었어요. 이런 게 뒤통수 맞은 느낌일까요? 

그녀의 인생은 시기별로 나와 관심사가 너무 비슷하게 흘러가는데, 나와 동갑이거나 어려 보이는 그분은 모든 순간에 원하는 결정을 내려 자기 인생을 끌고 갔어요. 타투를 배우고 싶어서 알아보고 다녔던 때도 있었어요.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된다 흐지부지 된 일이에요. 그런데 그 사람은 혼자 유학을 와서 뉴욕에서 유명한 미술학교를 나오고, 구글에서 모션 그래퍼로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타투 아티스트가 된 거예요. 어떻게 결정의 순간마다 나는 새로운 세계로 문을 열고 나아가지 못한 거지? 그녀는 나와 뭐가 다른 걸까요? 


나의 30대 10년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찾기만 했어요. 

내 인생을 후회하지는 않아요. 30대에는 방황을 하느라 괴롬이 많았지만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기르면서 엄청난 행복을 함께 느꼈어요. 40대가 시작된 지금 나의 인생과 노력의 방향이 좋아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람들에게 나도 같은 고민과 어려움 또는 행복을 느끼면서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어요. 소 오물, 나체 먹물 작업을 보여준 그 선배들처럼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이 안될지도 몰라요. 어떤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지도 몰라요. 얼마 전에도 저는 '이 그림이 뭘 말하려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들었어요. 하지만 창피해서 도망가지 않고, 멈추지 않고 계속하다 보면 전달력도 메시지도 명확해지겠지요. 누군가와는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와 작업을 할 수 있겠지요? 회사에 소속이 되어 일을 하거나, 프리랜서로 기업의 일을 따서 남을 위해 하는 일들 말고, 혼자서 나를 위해 하는 일들을 성공시킨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나는 지금 이 시기를 뚫고 작가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까요?  


나와 사람들을 관찰하고 표현하는 일 

나는 나를 들여다 보고, 행동, 감정을 관찰하면서 내 삶을 살아가는 희로애락을 그려요. 도전, 실패, 좌절, 기쁨, 설렘, 사랑의 감정들을 그리고 싶어요. 나와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 경험들을 나누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공감과 위로를 주고받으며 소통하고 싶어요.    



궁금증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그리는 미스큐 인스타에 놀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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