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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큐 Miss Que Aug 01. 2020

샌프란시스코 시크릿 비치의 추억

내 삶의 양념, 긴장감

최근 집안 분위기가 안 좋았다.  남편 회사일이 복잡하게 얽혀가고 있다.  이 분위기는 그대로 집안으로 흐른다.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단절했던 남편이지만 이번에는 역대급이 몰려오나 보다.  


분위기 전환도 할 겸 다른 한가족과 함께 지난 주말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 건너 위치한 하이킹에 다녀왔다.  하이킹 끝자락에 양쪽 절벽 사이로 작은 해변이 펼쳐지는 게 멋진 장관이었다.  궂은 날씨 회색빛 하늘도 너무 멋졌다. 해변에 자리를 펴고 몇 명은 왼쪽 절벽을 오르고, 나는 오른쪽 절벽을 올랐다  절벽 위에서 보는 바다와 하늘은 정말 몽환적이고 압도적인 매력을 뽐냈다.  다시 돗자리가 있는 모래사장에서 모두 모였다.  아이들은 파도 끝에서 물놀이를 했다.  

나는 물을 좋아했지만 언젠가부터 찐득한 바닷물과 온몸에 붙는 모래의 뒤끝이 찜찜해 바닷물에 잘 뛰어들지 않는다.


반대쪽 절벽을 오른 일행이 그 절벽 밑에 아주 작은 해변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보기로 했다.  다른 가족이 먼저 가고 나는 아들을 챙긴 후 뒤늦게 따라갔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장면은 별로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절벽 아래로는 길이 없이 바닷물로 차 있었고, 그 부부는 다투고 있었다. 얼핏 보니 아빠가 4살 아이를 안고 파도가 밀려나 길이 잠깐 보였을 때 뛰어가려고 시도했던 게 화근이었던 것 같다. 그 남편의 옷은 반쯤 젖어있었다.  절벽 뒤 상황은 알 수 없었다.  나는 괜한 신비감과 긴장감에 흥분되었다.  내 발길은 점점 빨라지고 한참 다투고 있는 그 부부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지나친 채 절벽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파도가 빠져나간 순간 온 힘을 다해 뛰었다.  절벽, 그 뒤 펼쳐진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아주 작은 절벽 및 시크릿 비치가 나왔다. 이 기쁜 소식을 전해 주려고 발길을 돌렸는데,  절벽 끝에서 우리 일행이 죽기 살기로 뛰어왔다.  내가 살아있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그냥 따라왔다.  그 오후 그 시크릿 비치에서 나는 미친 수영을 했다.  스포츠 브라와 레깅스 차림으로 수영을 했다.  우리를 보고 따라 들어온 낯선 커플 중 한 명이 바다에 뛰어들어 같이 수영하며 나에게 말했다  "유 아 크레이지!". 아이들은 모래사장에서 파도를 맞으며 물놀이를 즐기고, 드넓은 바다에는 그 여자와 나 단 둘이었다. 이 느낌, 무한히 자유로운 이 느낌, 바닷속에서 느끼는 파도와 바다의 에너지,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한참을 수영을 하는데 다시 불현듯 짙은 회색 바닷속에 뭐가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캘리포니아 상어 뉴스가 떠올랐다. 작년 아이스랜드에서 봤던 빙하 호수에 목숨을 잃은 독일 청년들의 기념비도 떠올랐다.  갑자기 파도가 더 높이 치고 있는 것 같았고,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급히 그 바다에서 나왔다.  아줌마가 되니 무서운 게 많다.


나를 순간 제정신이 아니게 했던 이것은 무엇일까?

절벽 뒤 알 수 없는 미지의 공간, 파도가 칠 때마다 열렸다 닫히는 길, 확인되지 않은 길이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내 모습을 봤다.  언제부터 자유롭고 청량한 느낌, 가슴을 펑 뚫어주는 듯한 바다수영이 나에게 찜찜한 일이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 삶에 이런 흥분과 긴장감이 부족한지는 꽤 오래된 것 같다.

젖은 옷과 주머니 속 모래를 빼내며 한 시간을 다시 하이킹해서 돌아와야 했지만, 즐거운 일탈이었다.




* 혹시나 여행하실 분을 위해, 내가 갔던 해변 이름은 Muir Beach이며, 아래 링크는 현지인들이 하이킹 코스 확인을 위해 자주 쓰는 앱/웹사이트 Altrail인데 정보가 아주 유용합니다.  Muir Beach 속 시크릿 비치 넘어가는 길은 날씨가 좋은 평소에 더 파도가 낮고 집입이 쉽다고 합니다.

https://www.alltrails.com/trail/us/california/tenessee-valley-to-muir-beach-via-coastal-trail


*샌프란 시스코 출장이나 여행 중 시간이 많이 없으신 분들은 시내에 있는 Baker Beach와 주변 하이킹을 추천합니다. 골든게이트 브릿지가 해변에서 풍경으로 보이며, 주차가 편리하고, 바로 모래사장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갑자기 이 팬데믹에 글 쓰다가 뜬금없이 날리는 여행정보 ^^)

https://www.californiabeaches.com/beach/baker-beach-san-franci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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