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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큐 Miss Que Jul 31. 2020

텔 미 유어 셀프!

0일차 "당신은 누구인가요?"

텔 미 유어 셀프!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뜨끔 놀랐다. 남편은 재택근무 중이다. 내가 작업실로 쓰던 방문 너머로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집이 너무 작고 방음이 하나도 안 되는 벽자제라 팬데믹이 시작된 6개월 전부터 콘퍼런스 콜 내용이 다 들린다. 안 듣고 싶어도 바로 옆에서 떠드는 음질로 들인다. 방벽에 울려 확성기라도 대고 말하는 느낌이다. 어제 2021년 상반기까지 재택근무가 이어진다는 발표가 났다. 앞이 캄캄하다.


대략 세 달 전 글쓰기 커뮤니티 [한달]에 처음 들어와서 0일 차 질문 “당신은 누구인가요?”를 받아보고 꽤나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방대한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다. 어디서부터 말하나? 십 년 차 주부인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생각나는 대로 끄적여 봤지만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주부’ ‘엄마’라는 단어를 굳이 쓰고 싶지 않아 이리저리 피했다. 그런데 그것 빼고는 지금 나를 표현할 길이 마땅치 않았다. 내가 하루 24간 중 대부분의 에너지와 시간을 그 일에 소비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한번도 주부의 삶에 만족하지 않았다. 주부로서 자부심이 있고, 가정운영을 잘 하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기도 했지만, 나는 한상 내 커리어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항상 어설픈 노력과 시도들을 했다. 뭐를 했다고 한마디로 표현할수 없을 정도로 이분야 저분야를 기웃거렸다. 최선을 다했는지는 모른다. 지금 내 안에 눈에 띄게 남아있는게 없는것으로 봐서, 아마 아닐것이다. 돈을 버는 직업을 가진것도 아닌데, 가족들에게도 집중을 못해서 미안한 감정도 있다. 


세 번째 도전하는 [한달] 글쓰기이다. 오늘”당신은 누구인가요?”라는 0일 차 질문을 세 번째 받아본다. 만족할만한 자기소개가 아직도 어렵다. 머릿속에 이 질문이 맴도는데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텔 미 유어 셀프!” 아마도 인터뷰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저 사람은 어떻게 말을 할까?"  방문에 귀를 대고 스피커폰으로 들려오는 대답을 듣고 싶었지만, 나와 같이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위해 기다리는 아들이 있어 드라이기를 켜고 젖은 머리를 말리기로 했다. 머리를 말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나는 누구인가?”


처음 글쓰기를 시작하고 한 달쯤 지났을 때 내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그러다 다시 미궁 속으로 빠져간다. 지금 하고 있는 포토샵 공부도 마찬가지다. 다 안 것 같은데, 하나도 알지 못했음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언제까지 뜬구름만 잡았다 놓쳤다 할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 보다 나에 대해 잘 알았고, 포토샵 공부 시작하기 전보다 지금 더 포토샵에 대해 잘 안다는 것이다. 앞으로 매일 더 잘 알아갈 것이다.


작년 가을 제임스 클리어의 ‘아토믹 해빗’을 읽고 자신감을 얻고, 많은 것을 시작했다. 나만 이렇게 멍청한 실패를 하는 게 아니구나  사람들 심리가 다 비슷하구나 하는 위로를 받았다. 나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새로운 도전 조깅을 시작하고, [한달] 과 함께 글쓰기를 시작했다. 나는 책 읽는 게 너무 어려워 내가 난독증이 아닐까 하는 말도안된는 생각을 한적도 있는데, 지금은 매일 책을 읽고 있다. 누군가는 평생을 해온 운동이고 독서이겠지만 나에게는 정말 큰 변화이고 의미이다. 그리고 재미있다. 정착 메인인 그림 공부를 다 소화하지 못하고 뒤로 밀려나 과제가 많이 쌓여있지만, 이번 달에는 그림 공부까지 내 몸의 습관으로 새겨 넣을 생각이다.


딱히 재능이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나는 그림을 그릴 때 가장 가슴이 뛴다. 내 그림의 포트폴리오가 어느 정도 쌓이면 내가 누구인지 조금은 더 자세히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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