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틀랜드에 오면 꼭 다시 들러보고 싶었던 곳이 이 책방이었다. 예전 책을 많이 읽지 않을 때도 책방은 언제나 좋아했다. 책방에서 와서 책 냄새와 그 모양을 구경하고 뒤적거리다가 내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을 사서 기저귀 가방 한쪽 구석에 끼워 넣고 다녔다. 읽지는 못하고 너무 들고만 다녀 책이 너덜너덜 해지고, 우유병에서 쏟아진 우유에 젖어 우글우글해지고 만싱창이가 된 적도 있다. 한 번은 친구가 같은 페이지만 계속 보는게 아니냐고 물었을 정도로 책을 못 읽었고, 액세서리 아이템이라 농담할 정도였지만 , 나는 너덜너덜해진 책도, 그 책을 만지는 느낌도, 책방 냄새도 사랑했다. 읽는 것만 잘 못했다.
포틀랜드 다운타운에는 젊은 홈리스들이 많았다. 홈리스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돈을 달라는 메세지와 함께 모금(?)통을 앞에다 두고, 책을 보는 이들을 많이 보았다. 내가 기억하는 한 청년은 책에 빠져 돈이 들어오는지 눈치채지도 못하고 책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카페나, 기차안이나, 공원이나 어딜가나 책을 손에 든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미국 최대의 서점, 추억의 Powell's book은 문이 닫혀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아직도 이 책방은 임시로 문을 닫은 상태이며, 온라인 오더 픽업만 가능하다고 한다. 온라인 오더 활성화로 이번 팬데믹으로 해고한 100여 명의 직원들을 다시 고용할 수 있었다고 하며 온라인 오더를 권장했다.
https://www.powells.com/category
내가 기억하는 이 책방에서는 오래된 책도 많이 팔고, 헌책도 산다. 없는 책이 없고, 없으면 구해 준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 책방 카페에는 여러 사람들이 앉아서 바둑을 두고 있다. 미국에서는 바둑을 Go라고 한다. 중국 게임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곳 서점을 점령한 Go는 한국과 인연이 깊었다. 아는 지인을 보니 이곳 바둑 대회에서 일등을 해 순위에 오른 몇 명과 함께 한국행 티켓을 받았다고 했다. 대구에 가서 바둑 대회에 참가한다고 했고, 몇 년 전 우승을 해서 다녀온 적이 있고, 그때가 두 번째 한국 방문이라고 했다. 내가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가 2012년이었다. 포틀랜드 바둑 클럽은 아직도 존재한다. 바둑클럽 웹사이트에 들어가보니 얼마 전 성공적으로 온라인 게임을 했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지금 이 소식을 확인하고 반가워서 Go Club에 가입을 해버렸다. 나는 바둑을 둘 줄 모른다.
친정아버지는 바둑을 사랑하셨다. 항상 친구분들과 밥도 그 자리에서 드시면서 하루 종일 바둑을 두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2013년 뇌경색으로 쓰러지시기 전까지 온라인 바둑도 한참 두셨다. 지금은 재활치료와 후유증으로 바둑을 두시지 못한다. 이제 손자가 커서 한글학교 특별활동시간에 바둑수업을 듣는다. 이 손자는 집에서 바둑을 두지 못하는 엄마, 아빠와도 제멋대로 규칙을 정해 바둑을 즐긴다. 외할아버지가 바둑을 잘 두셨다는 말에 흥분해 한국에 가면 할아버지를 꼭 한판에 쓰러뜨리고 말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외할아버지가 바둑을 둘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불안한 마음에 친정아버지에게 연습을 하고 있으라고 잔소리를 해도 아빠는 그냥 장난섞인 말로 얼버무리고 스리슬쩍 넘어가고 만다. 친정아버지가 바둑을 기억해 두지 못하면 슬플 것 같다.
지금 나는 바둑을 배워보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