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물건도 많은데 가격까지 저렴한 시장 탐방기

꿈을 찾아 나선 부부의 이야기[태국 한달 살기]

by LouisLee
Chatuchak 또는 짜뚜짝 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큰 주말시장으로 매주 20,000여 명의 인파가 약 15,000개의 상점에서 물건을 구매하기 위하여 몰려드는 곳이다.
출처 : https://www.chatuchakmarket.org/about


40일 동안의 순례길 여정을 포함하여 두 달간의 유럽 일정을 마치고 태국에서의 한 달 살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우리 부부는 몇 가지 필요한 물건들을 구매하기 위하여 짜뚜짝 시장을 방문했다. 시장 방문에 앞서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을 해보았다. 시장이 엄청나게 넓고 길이 미로처럼 복잡하기 때문에 돌아다니기 힘들다고 한다. 그리고 예상보다 가격이 그리 저렴하지만은 않다고 하는 후기도 종종 보였다. 살짝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반면에 나를 설레게 하는 내용도 있었다. 태국 전역에서 파는 모든 물건들은 전부 짜뚜짝 시장에서 구할 수 있단다. 게다가 공식홈페이지의 시장 방문 팁과 FAQ에 따르면 가격 흥정이 가능하다고 한다.

출처 : https://www.chatuchakmarket.org/tips-and-faqs/

마치 공식적으로 가격 흥정을 부추기는 듯한 느낌을 받은 나는 오히려 묘하게 승부욕이 자극되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 수강한 심리학 관련 수업에서 배운 이론을 바탕으로 체득한 나름의 가격 흥정 노하우를 국내외에서도 이미 여러 차례 성공 시킨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나보다는 마음이 더 여린 아내를 대신하여 상인들과의 가격 줄다리기는 나의 몫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흥정을 통해 내가 생각한 가격에 근접한 금액으로 최종 거래가 성사되었을 때에는 일종의 쾌감도 느껴졌다. 따라서 이곳 태국에서도 나의 노하우가 통할지 기대감에 부풀었다.


얽히고설킨 시장 길은 어차피 내가 대비를 한다고 해서 크게 상황을 개선시킬 수는 없을 거라 판단했다. 원래 시장에서의 쇼핑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게들을 들락거리며 내가 정한 일정 수준의 조건들에 부합하는 물건을 찾아 헤매는 하나의 모험이라 생각한다. 예컨대 쪼리 한 켤레를 사려면 내가 원하는 바닥의 소재와 색깔, 엄지발가락에 끼는 끈의 소재와 색깔, 바닥과 끈의 일체형 여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가격의 범위 등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한번 방문한 가게 혹은 지나간 길을 최대한 기억해서 동선이 꼬이지 않도록 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시장 개장시간인 오전 9시에 맞춰 숙소를 나섰고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제 막 상인들이 하나둘씩 가게들을 열고 있었다. 우선 가볍게 한 바퀴 돈 후 간단히 아점을 먹고 본격적인 쇼핑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도저히 가볍게 한 바퀴 돌 수 있는 수준의 규모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오가는 통로는 끝이 보이지 않았고 격자구조로 연결된 갈림길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설상가상으로 몇 블럭을 걷다 보면 동일 제품군을 취급하는 상점들이 보였고 보유하고 있는 물건들도 대동소이했다. 30분가량 돌아다닌 결과 우리의 쇼핑 리스트에 있는 물건 6개 중 2개는 판매하는 가게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이제 막 개장시간이 지났을 뿐이고 동남아 사람들의 느긋하고 여유 있는 국민성으로 인해 아직 열지 않은 가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둘러본 구역도 극히 일부라 좀 더 넓은 구역을 수색하면 찾을 수 있을 거라 애써 행복회로를 돌리며 아점을 먹기 위해 시장 안에 위치한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시장 안의 식당은 동남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였다. 한쪽에 화구와 조리대가 놓여있는 칸막이 없는 주방에서는 열심히 프라이팬에 음식을 볶고 있다. 대형 육수통에 미리 끓여놓은 육수는 약불로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사실상 주방 이외의 모든 공간에는 접이식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가 빼곡하게 배치되어 있다. 테이블에는 젓가락, 숟가락, 티슈 등 간단한 잡기류 외에 태국음식에 빠져서는 안 되는 다양한 조미료가 올려져 있다. 고추식초, 고춧가루, 피시소스, 설탕이 기본으로 구비되어 있고 식당의 주력 요리 종류에 따라 구성이 변경되기도 한다. 우리가 주문한 소고기 쌀국수와 해물 볶음밥은 5분도 안돼 테이블에 올려졌다. 고춧가루로 매운맛을 더하고 피시소스로 간을 맞춘 후 연신 미간을 찌푸리며 음식을 먹었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도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요리한다는 것이 매번 놀라울 따름이다.


참고로 우리 부부는 동남아의 이런 길거리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 위생에 대한 염려는 내려놓는 편이다. 입맛에 맞는 맛있는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다는 것 만으로 우리는 충분히 만족감을 느낀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껏 수차례 길거리 음식을 먹는 동안 단 한 번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물론 아직까지는 운이 좋았던 것 일수도 있으나 우리는 계속 운에 맡기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각설하고, 배를 적당히 채운 우리는 본격적으로 장바구니를 채우러 미로 속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걸음을 멈춘 곳은 쪼리를 파는 가게 앞이었다. 평소 한국에서도 계절에 상관없이 외출 시 쪼리를 선호하는 나에게는 태국 한 달 살기를 위한 필수 물품에 해당한다. 이미 지나쳐온 신발 가게들을 눈으로 재빠르게 훑으며 시세를 파악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이곳에 멈춰 선 이유는 사장님의 인상이 온화해 보였기 때문이다. 안경 너머 옅은 미소를 띠며 인사를 건네주신다. '싸와디크랍'. 매대에 진열된 물건들을 빠르게 스캔하며 선택 후보들을 줄여나갔다. 최종적으로 2개의 제품이 남았고 양쪽 발에 한쪽씩 신은채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가격은 얼마인가요? 이미 진열장에는 가격표가 붙어있었으나 짜뚜짝 시장의 공식 홈페이지에 안내된 시장 이용 팁에 따라 가격 흥정을 위한 시동을 걸었다. 200바트, 우리 돈으로 약 8천원이다. 저렴하다. 바닥 재질도 두껍고 끈도 튼튼하고 디자인도 마음에 든다. 한국이었으면 바로 지갑을 열었겠지만 이곳은 우리나라보다 물가가 저렴하다. 150바트를 불렀다. 사장님은 여전히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난색을 표하신다. 돌아온 가격은 190바트. 400원이 내려갔다. 말 한마디에 400원이 내려간다는 것은 따지고 보면 그 가격에 팔더라도 충분히 이익이 남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다시 170바트로 절충안을 제시했다. 사장님의 얼굴이 조금 전보다는 당황해하시는 눈치다. 나는 직감했다. 여기서 내가 더 고집을 부리면 둘 다 기분 좋은 거래를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래도 사장님이 나의 숨은 의도를 파악해 주시고 170과 190의 중간 가격인 180바트를 부르신다. 오케이를 외치고 지갑을 열어 첫 물건을 구매했다. 시작이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2L 용량의 방수가방은 200바트에서 150바트에, 아내의 원피스는 290바트에서 250바트에 사는 등 7개의 물건을 사면서 총 350바트를 깎았다. (원래 계획했던 구매 물품은 6개였으나 예상보다 뜨거운 1월의 태국 햇빛으로 인해 나는 모자를 추가로 구매했다.) 한화로 약 14,000원이다. 그중 개인적으로 가장 뿌듯하면서도 재밌었던 흥정은 아내의 수영복을 구매할 때였다.


디자인은 적당히 태국 느낌이 나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입을 수 있어야 한다. 모양은 체형의 단점을 가려주면서 반대로 장점은 부각시킬 수 있어야 한다. 가격대는 500바트를 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디자인과 형태는 지극히 주관적 영역이며 실사용자인 아내가 마음에 들어 해야 한다. 따라서 아내가 수영복 가게에 들어간 순간 나는 우선 잠시 뒤로 빠진다. 아내가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물건을 선택할 수 있게 시간적 공간적 여유를 준다. 동시에 나는 근처 혹은 가게 안에 비치된 의자에 앉아 체력을 보충한다. 구미가 당기는 물건이 발견되면 아내는 최종 가격 흥정을 위해 나를 부른다. 체력 보충을 한 나는 달려가서 협상을 진행한다. 그렇지 않고 마음에 드는 제품이 없으면 다음 가게를 찾아 나선다. 이것은 우리 부부의 약속된 시장에서의 물건 구매 프로세스다.


몇 번째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여러 수영복 상점 중 하나에 들어간 아내는 한참을 안 나온다. 나에겐 긍정 신호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발견됐고 지금쯤 아내는 열심히 이리저리 고민을 하느라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증거다. 즉, 잘만하면 쇼핑이 끝난다는 것이다. 이번에 들어간 수영복 가게에는 디자인이 꽤 마음에 드는 제품이 있는 모양이다. 몇 분이 흘렀을까 시계를 볼 무렵 아내가 나를 부른다. 의자에 앉아 체력을 보충해 둔 나는 가게에 들어간다. 역시나 최종 후보지 3개 중에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아내의 니즈를 파악해서 성심성의껏 구매에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들을 해준다. a 제품은 색이 너무 무난하고 c 제품은 체형에 맞지 않을 것 같다는 의견을 조심스레 전달했다. 내가 처음부터 b 제품을 마음에 들어 한 것은 아니다. 내 눈에는 그게 그거다. 다만 아내와의 오랜 결혼 및 쇼핑 경험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아내는 이미 b제품을 마음에 들어 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아내가 a와 c제품에 대한 미련이 남지 않게끔 하면서 자연스레 b 제품을 선택할 수 있게 거들어 줄 뿐이다. 그렇게 추가적으로 d, e 그리고 f 제품까지 살펴본 이후 최종적으로 실사용자인 아내가 b를 선택했다. 이제는 아내가 한발 물러난다. 나와 상점 직원 사이의 가격 흥정을 할 차례다. 이때 중요한 것은 b 제품을 선택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에 직원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쯤 되면 직원도 지친다. 직원은 하루종일 잠재고객들의 가격문의에 대한 대답만 해주다 진짜 구매의사가 비교적 높은 손님을 맞이했다. 그리고 옆에 붙어서 쉴 새 없이 우리를 응대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우리에게 본인의 시간을 투자한 것이다. 거기다 진심을 다해 우리와 함께 최종 선택을 하기까지 고민을 거들어주었다. 이때 우리가 제품을 구매하지 않고 그냥 가게에서 나간다면 직원은 시간과 에너지를 그냥 낭비한 것이다. 그러한 상황을 막으려면 우리에게서 10원이라도 이윤을 보는 편이 낫다. 나는 이것을 이용할 생각이다.


나는 아내가 최종 선택한 제품을 들고 물어본다. 그래서 얼마인가요? 계산기에 690바트를 찍어 보여주신다. 나는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사실 이는 가격을 문의하는 순간부터 계산된 리액션이다. 사장님은 다시금 계산기를 두드리시며 10% 할인된 금액을 보여주신다. 아직도 620바트다. 전혀 만족스럽지 않다. 손에 들고 있던 제품을 다시 매대에 걸고 너무 비싸다고 말했다. 이러한 행동만으로도 직원은 가슴이 철렁했을 것이다. 계산기에는 580바트가 찍혔다. 순식간에 110바트가 내려갔다. 가격협상에서 내가 완전한 우위에 있음을 직감했다. 나의 표정이 좀처럼 풀리지 않자 나에게 오히려 가격을 제안해 보라고 하며 계산기를 쥐어주신다. 기회다. 이때 값을 확 낮춰야 한다. 400을 입력하고 보여드렸다. 직원은 난색을 표하시더니 잠시 후 다시 숫자를 찍어 보여주셨다. 530바트. 내가 재차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짓자 이 정도면 좋은 가격이라고 강조하신다. 좋은 가격인 것은 맞다. 다만 사장님에게 좋은 가격이지 나에게는 좋은 가격이 아닌 것이 유일한 문제였다. 그렇게 다시 계산기를 두세 번 주고받은 끝에 최종적으로 지불한 금액은 480바트(약 19,200원)이었다. 최초 690바트(약 27,600원)에서 210바트(약 8,400원)이 줄어든 가격이었다. 우리나라 물가를 생각하면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이지만 태국에서는 적지 않은 금액이다.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카오산 거리 초입에 위치한 길거리 식당에서 돼지고기, 닭고기 그리고 해물까지 들어간 태국식 볶음국수(팟타이)가 100바트다. 우리나라 이태원에서 같은 메뉴의 음식을 먹으려면 최소 15,000원은 지불해야 한다. 즉 내가 느끼기엔 국내 고급 식당에서 파는 팟타이 두 그릇 값인 30,000원 이상을 깎은 것이나 다름없게 느껴졌다.


4시간가량을 짜뚜짝 시장에서 머물며 수십 개의 가게를 들락거리고 수백 개의 물건들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두 손 가득 필요한 물건들을 무겁게 들고 숙소로 향하는 동안 기분만큼은 왜인지 가벼웠다. 태국을 여러 번 왔지만 짜뚜짝 시장에서는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물건들이 저렴하다는 것도 분명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가장 큰 매력은 아마도 우리 부부가 만난 시장 상인분들의 말투와 행동에서 느껴지는 인간적인 향기가 너무 따듯하고 부드러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뜨거운 날씨와 복잡한 미로와 같은 구조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매력적인 이곳을 우리 부부는 언젠가 또 방문할 것이다.


짜뚜짝 시장 물품 구매 목록 정리
(물품/협상 시작 가격->최종 구매 가격/깎은 금액[바트])

쪼리/200->180/20

원피스/290->250/40

방수가방/200->150/50

수영복/690->480/210

커플 수영바지/250->230/20

물안경/200->200/0

모자/130->120/10


태국의 통화 1바트는 우리나라 원화 37.92원에 해당(24년 1월 5일 하나은행 고시 환율 기준)하나 본문에서는 계산의 편리성을 위해 40원의 환율을 적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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