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하늘을 보며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었지만 경로가 험하지는 않았다.
중간쯤 나타난 마을 Olveiroa(올베이로아)에서 독일인 Flo(플로)와 마주쳤다. 월요일 직장 출근 때문에 순례를 종료하고 독일행 버스를 타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옆에는 배웅해 주기 위해 한국인 규님이 함께 있었다. 규님은 플로와의 작별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특유의 밝고 활기찬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플로는 내가 살면서 만난 독일인 중 가장 재미있었다. 덕분에 독일인은 무뚝뚝하고 매사 진중하기만 하다는 편견이 사라졌다. 그는 재치 있는 입담을 소유한 것과 더불어 사려 깊고 겸손하기까지 했다. 며칠에 한 번 꼴로 드문드문 만난 사이인 나와 아내조차 헤어진다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이 아렸다. 하물며 하루도 빠짐없이 온종일 붙어 다닌 규님은 상실감이 얼마나 클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서로의 앞날을 응원하며 플로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아침에 식당에서 구매한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했다.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고 바람이 매섭게 불기 시작했다. 을씨년스러운 날씨를 온몸으로 맞으며 꾀죄죄한 행색을 갖춘 채 길에서 빵을 먹는 모습이 영락없는 노숙자였다. 아내와 나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이 또한 순례길이 선물하는 작은 추억이라 느껴졌다.
15년 만에 다시 찾아온 길을 걸으며 옛 기억이 되살아났다. 물이 잔잔하게 흐르는 작은 시냇가, 계곡 아래로 보이는 강, Muxia(묵시아)와 Fisterra(피스떼라)로 각각 안내하는 표시석 그리고 언덕을 오르는 긴 대각선 길이 과거에도 이곳에 왔었음을 알려 주었다. 다만 예전에는 분명 황량한 풍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숲과 풀이 무성해져 세월의 흐름이 느껴졌다.
마지막 2시간 동안 비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지대가 높아 안개 때문에 가시거리가 짧았고 길이 질퍽거렸다. 이대로라면 내리막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대서양이 보이지 않을 거란 생각에 기분이 착잡했다. 15년 전의 그 감동을 아내와 다시 만끽하고 싶었는데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절망스러웠다. 설상가상으로 아내는 힘들다며 느릿느릿 걸었다. 이런 악조건일수록 빠르게 움직여서 상황을 벗어나야 하는데 서두르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 답답했다. 여태껏 걸으며 체력과 근력이 충분히 단련되었을 텐데 왜 이리 속도를 내지 못할까 이해되지 않았다. 수십 번도 넘게 마음을 다스리려 했으나 결국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다.
"아니 왜 이렇게 천천히 걸어? 이런 날씨는 최대한 빨리 벗어나야 되는 거를 아직도 몰라? 일부러 나 골탕 먹일라고 그래?"
악천후 때문에 15년 전의 그 광경을 볼 수 없다는 실망감이 애꿎은 아내를 향해 분출되고 말았다.
이전 같았으면 아내는 눈을 날카롭게 뜨고 맞받아쳤을 건데 오늘은 반응이 사뭇 달랐다. 고개를 푹 숙이고는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기는 내가 매 걸음 온 힘을 다하고 있다는 거를 왜 몰라줘?"
쏘아붙인 것을 곧바로 뉘우쳤다.
순례길을 걷는 내내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의견 충돌과 감정 대립을 겪었다. 그때마다 대화와 타협 그리고 배려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며 별문제 없이 39일을 지냈다. 덕분에 아내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더욱 깊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끝내 봉합하지 못한 유일한 갈등은 상대적으로 느린 아내의 걸음을 받아들이는 나의 마음가짐에서 비롯되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일정을 빨리 마치고 도착 마을을 둘러보며 여유를 즐기고 싶었다. 악천후에서는 고된 상황을 신속히 벗어나 숙소에서 쉬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이러나저러나 아내가 이동 속도를 끌어올리기를 원했다. 분명 순례길을 오기로 했을 때 아내를 닦달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나보다 체력과 근력이 약하니 이해하고 배려해 주어야 하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릇된 욕심이 자꾸만 피어났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참으려 하다가도 어느새 아내를 다그쳤다. 일주일에 한 번 꼴로 그랬다.
아내는 매번 같은 반응이었다. 자신은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단다. 머리로는 알겠으나 가슴으로 와닿지 않았나 보다. 아내의 대답을 듣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 며칠 잠잠한가 싶더니 또다시 이기적인 생각이 되살아나 같은 실수를 반복해 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오늘은 고대하던 대망의 '그날'인지라 평소보다 감정이 격하게 요동쳤다. 아내의 체력이 늘지 않은 것을 탓할게 아니라 나의 이해력이 제자리인 것을 반성하며 아내에게 사과했다.
묵묵히 아내 뒤를 따라 내리막을 걷다 고개를 드니 나무 틈 사이로 대서양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어째서인지 예전에 느꼈던 감동은 재현되지 않았다. 바다가 보인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긴 했다. 조금 전 상황에서 참았더라면 기분 좋게 현재의 순간을 즐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 역시 밀려왔다.
복잡한 심정을 접어두고 눈앞의 장면에 집중해 보았다. 시야가 넓게 트였던 과거에 비해 울창하게 자라난 나무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날이 흐린 것을 감안하더라도 과거와 동일한 광경을 목격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대서양이 보이기 시작한 지점에서의 15년 전(왼쪽)과 현재(오른쪽) 모습.
내리막의 끝에 이르자 도착 마을 Cee(쎄)가 나왔다. 알베르게에 체크인을 하고 빨래와 샤워를 마친 후 휴식을 취했다. 한식 파티 멤버인 보O님과 시O님도 같은 숙소에 묵게 되어 저녁을 함께 먹었다. 식당에서 새우, 오징어, 돼지고기 요리를 1차로 먹고 피자와 라자냐를 포장해 숙소에서 2차 식사를 했다. 동료들과의 마지막 만찬이었다. 착하고 나이에 맞지 않는 성숙함을 지닌 두 친구들을 알게 되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이면 기나긴 순례의 마지막 날이다. 아직까지는 실감 나지 않는다. 단지 걷는 거리가 다소 짧은 하루가 반복될 뿐이라 느껴진다. 의외로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본 매거진은 저와 아내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생장 피에 드 포흐(Saint Jean Pied de Port)에 도착 한 날(23.10.10)부터 목적지인 피스테라(Fisterra)에 당도하기까지 40일 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직접 기록한 일기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