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지역에 따라 사람들의 욕망은 항상 변해왔지만, 이곳 로스 산토스에서는 부촌에 위치한 대저택, 럭셔리한 스포츠카 그리고 멋진 정장과 같은 것들이 특히 인기를 끄는 듯하다. 빈민가에서 살아가는 갱스터 프랭클린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남부러울 것 없는 화려한 삶을 꿈꾸지만, 실제로는 자질구레한 범죄를 저지르며 생계를 이어나가는 3류 범죄자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 어느 날, 자동차 압류 일을 하던 그는 우연히 범죄 세계의 거물 마이클을 만난다.
프랭클린은 세 주인공 중 가장 어리고, 동시에 과거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인물이다. 그렇기에 그는 가장 순수하게 욕망한다. 돈과 힘, 명예와 지위 - 떵떵거리며 사는 삶. 그런 그에게 마이클은 3류의 삶에서 벗어나 그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는 주저 없이 기회를 잡는다. 그렇게 프랭클린은 범죄의 세계로 점점 깊숙이 빠져들고, 동시에 위험한 인연들도 만들어간다.
프랭클린은 마이클과 트레버의 유산을 통해 범죄 세계의 모든 것을 새로이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플레이어의 대리자 역할을 수행한다. 프랭클린은 불법적이지만 그만큼 효율적인 방법으로 큰 돈을 벌어 높은 경제적 지위를 쌓아가고, 플레이어는 그것을 허용하는 게임의 틀 안에서 간접적인 만족을 경험한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보편적으로 욕망하는 프랭클린이 게임의 서막을 맡았기에 플레이어는 그에게 쉽게 이입할 수 있고, 게임의 복잡한 서사는 서서히 필연적인 것으로 변모한다.
이 반사회적 자수성가 신화의 끝에서, 게임은 프랭클린(즉 플레이어)에게 한 가지 선택을 강요한다. 너무도 강대한 조직들과 지나치게 깊게 얽혀버린 탓에, 한 쪽을 고르지 않으면 생존을 장담하기 힘들게 된 것이다. FIB의 편에 붙어 통제가 불가능한 트레버를 죽일지 혹은 억만장자 데빈의 편에 붙어 일을 너무 크게 만들어버린 마이클을 죽일지, 플레이어는 선택을 내려야 한다.
혹은, 누구도 죽이지 않든지 말이다. 사실은 제 3의 길인 루트 C(“Deathwish”)가 게임의 정사이다. 이 세 번째 분기를 선택할 경우 프랭클린은 마이클과 트레버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주인공들은 힘을 합쳐 서로의 숙적을 처리하고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이 직선적인 해결책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게임 내내 자신을 괴롭히던 적들을 한 번에 해치워 버린다는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지만, 동시에 어딘가 허망한 기분도 들게 한다. 이렇게 쉽게 될 일이었다면, 왜 진작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주인공이 민간 군사기업을 휘하에 둔 억만장자의 자택에 혈혈단신으로 침입해 그를 생포해 온다는 이 바인우드 액션 영화 풍 엔딩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최소한 게임적 쾌감 대신 리얼리즘의 측면에서는, 다른 두 분기가 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지 않나 하는 것 말이다. 사실 그들은 그 외에 또 다른 매력도 하나 가지고 있는데, 바로 프랭클린에 비해 더 복잡한 사연을 가진 두 주인공, 마이클과 트레버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말해 준다는 점이다.
마이클 드 산타: "The time's come"
The Chain Gang of 1974 – Sleepwalking
프랭클린이 자신의 성공을 위해 욕망한다면, 가족이라는 입체적인 인간관계를 가진 마이클의 입장은 조금 더 복잡하다. 마이클에게 가족은 동기이면서 동시에 걸림돌이다.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고 분노하여 마피아 보스의 집을 부숴버린 탓에 범죄 세계에 복귀하게 되었지만, 그 이후로 마이클은 오히려 범죄자 생활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족들은 예전의 폭력적이고 자기기만적인 모습으로 돌아가버린 그를 떠나지만, 그럼에도 그는 작업을 쉽게 멈추지 못한다.
결말에서 그는 또 한번 범죄 세계에서의 성공을 이뤄내며 막대한 부를 얻고, 진솔한 대화 끝에 집을 나갔던 가족들과도 화해하며, 동경하던 영화 업계의 일자리까지 얻게 된다. 그 이후로는 자기 스스로도 이 모든 것을 가질 자격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미션의 제목("The time's come")처럼, 그에게도 드디어 빛을 볼 날이 온 것이다.
그러나 루트 B에서 프랭클린은 데빈의 말을 따라 마이클을 처리하려 하고, 결국 그는 FIB와의 악연을 완벽히 매듭짓지 못한 대가를 자신의 목숨으로 치르게 된다. 프랭클린과 발전소 꼭대기에서 육탄전을 벌이다 떠밀려 난간에 매달릴 정도로 위기에 몰린 마이클은, 결국 미련을 버리고 자신의 손을 잡고 있던 프랭클린을 머리로 들이받은 뒤 떨어져 죽기를 선택한다. "The time's come" - 갈 시간이 되었음을 받아들이고 말이다.
범죄 세계에서의 성공, 스릴, 동료들, 돈과 명성, 가정학대 경험 이후로 갈망하게 된 단란한 가정, 그를 위한 사법 거래와 비공식 증인 보호 프로그램. 마이클은 공존하기에는 너무도 위태로워 보이는 것들을 동시에 욕망하며 끊임없이 몸부림친다. 심지어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는 꾸준히 상담을 받는 모습마저 보인다. 이렇듯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줄 무언가를 찾아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불태워 왔기에, 운이 다하는 순간 그는 미련없이 모든 것을 정리해버린다. 마치 인생이라는 게임 한 편을 플레이하다, 엔딩을 맞아 컨트롤러를 내려놓듯이.
참 빠르면서도 덧없었던 지난 날을 되돌아보는 듯한 마이클의 엔딩 크레딧 곡("Sleepwalking")은, 갈망하던 것도 일단 얻고 나면 더 이상 원하지 않게 되더라는 마이클의 성격과, 결국 그 모든 것을 얻었음에도 마지막 순간 모든 미련을 정리해버리는 특유의 덧없는 인생관을 잘 보여준다. "Maybe we're just sleepwalking" - 이 모든 것은 그저 몽유병일 뿐일지도 모른다고, 나지막이 읊조리면서 말이다.
트레버 필립스: "Something Sensible"
Yeasayer - Don't Come Close
트레버 또한 과거에 얽매여 살아가는 인물이라는 점에서는 마이클과 비슷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무언가를 찾아 끊임없이 노력하는 마이클과는 달리, 그는 스스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삶을 원래 궤도대로 되돌려놓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루하루를 순간의 욕망에 충실하게 살아간다. 그 여파는 마이클이 프랭클린에게 전하는 말로 잘 요약될 수 있을 듯하다: “그 자식은... 악마야, 세상에 풀려난 악마. 알아들어? 나도 천사는 아니야. 하지만 네가 트레버를 만나면... 내가 천사였다고 믿게 될 거다.”
결국 루트 A에서 프랭클린은 도무지 통제가 불가능한 트레버를 제거하라는 FIB의 명령을 받아들인다. 흥미로운 점은 그 소식을 접한 마이클의 반응이다. 루트 B에서 트레버는 마이클을 처리하는 것에 참가하기를 거부한 데 비해, 루트 A에서 마이클은 트레버를 처리하려 한다는 소식에 큰 주저 없이 동참한 것이다.
마이클의 짐이 가족이라면, 트레버가 진 짐은 9년 전의 과거이다. 강도 작업 중 경찰과의 교전으로 인해 마이클이 사망하고, 또다른 동료 브래드는 교도소에 수감된 것이다. 진심으로 마음을 열었던 친구들을 모두 잃어버린 트레버는 그 이후로 삶에 큰 미련을 두지 않고 되는 대로 살아간다. 하지만 마이클의 범죄 세계 복귀로 인해 그가 살아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가 사법 거래를 통해 신분을 세탁해 건실한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그의 무덤엔 브래드가 대신 누워 있었다는 사실까지 깨닫게 된다. 트레버는 처음에는 분노하지만, 결국은 마이클과의 옛 정을 감안해 그의 거짓말을 용서한다.
이토록 의리를 중요시하는 성격이기에 최악으로 치닫은 상황에서도 마이클을 죽이는 것을 거부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에게 또 한번 배신을 당하게 된다. 트레버 루트의 미션 제목(“Something Sensible”) 또한 중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범죄에서 손을 떼고 가족들과 함께 제도 속에서 살아가길 희망하던 마이클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쾌락을 위해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는 트레버에게 '분별력있는 일'을 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트레버의 입장에서는, 마이클이 자신의 안위를 위해 절친한 친구를 배신하고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크레딧 곡은 "Don't come close; I don't want you to see my face"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유년기의 가혹한 가정학대 이후로 진실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고 폭력으로 삶을 헤쳐나가던 트레버에게 있어, 마이클과의 관계는 그 무엇보다도 뜻깊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택한 폭력이라는 외피로 인해, 그의 진심은 결국 좌절된다. “People don't grow, they just get old”라는, 곡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가사는, 언뜻 보기엔 마이클에게 또 한번 배신을 당한 트레버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것처럼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트레버가 사회의 선 안으로 들어오기를 누구보다도 간절히 바랐을 마이클의 입장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닫으며: 상호작용으로서의 멀티 엔딩
본작을 주인공들이 힘을 합쳐 강대한 적들을 몰아냈다는 해피 엔딩으로 기억할지, 마이클 혹은 트레버가 자신의 업보를 짊어지고 죽음을 맞이했다는 새드 엔딩으로 기억할지는 전적으로 플레이어의 자유이다. 하지만 게임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정사로 취급되는 루트 C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두 분기를 위해 적지 않은 자원이 투자되었다는 사실은 분명 시사하는 바가 있어 보인다.
결말부에 여러 가능성을 제시하려는 시도는 타 매체에서도 물론 있어왔다. 가령 두 가지의 결말을 병렬적으로 구성해 놓고 각 엔딩의 페이지 번호를 안내한 소설(<위저드 베이커리>, 2009)도 있었고, 개봉 이후 감독판을 발매하여 극장판과는 다른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영화(<나비효과>, 2004)도 있었다. 하지만 플레이어와의 상호작용을 통한 피드백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가진 게임만큼이나 그것을 능숙하게 해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도, 그 속에 몰입해서 선택을 내리는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말이다.
주인공의 대리자로서 온갖 위험천만한 순간들을 지나온 플레이어는, 마지막 순간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가만히 내버려두기엔 지나치게 위험한 트레버를 처리할까? 다시 동료들을 배신할지도 모르는 마이클을? 혹은, 자신의 죽음을 감수하더라도 끝까지 의리를 지킬 것인가?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쥐어주며 그림을 직접 완성시키기를 요구하고 있다. 어떤 조각을 끼워넣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 퍼즐을 말이다.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괜찮다. 부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처음 맞출 때에는 미처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할 테니까.
혹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GTA 5는, 게임이라는 예술 형식이 가진 구조적 장점을 노련하게 활용하여 각자의 욕망을 위해 투쟁하는 주인공들의 몸부림에 서로 다른 세 가지의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주인공들의 가치관과 그것이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하나의 정해진 결말만으로는 보이지 못했을 방법으로 입체감 있게 그려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