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실존적 위기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좌절된 욕구만이 있을 뿐이다. Frank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직접 언급하듯이, 매일 이성을 만나고 끼니를 거르지 않을 수만 있다면 그 외에 문제될 것이 무엇이 있다는 말인가? 프로이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욕망은 신경증 뿐만 아니라 정신질환 전반을 이해하는 열쇠이며, 그것을 외면하는 자는 결코 문을 열 수 없'다.
그렇기에 그는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이고, 그것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지 따위의 공상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이것은 Blonde가 스스로를 수많은 자전적인 사랑(혹은 실연) 앨범들과 구분짓는 지점이다. 그는 그를 둘러싼 세상을 그 일원으로서 체험한다. 그 속에서 그는 기대하고, 충족되거나 혹은 필연적으로 좌절하지만, 그럼에도 오래 지나지 않아 다시 세상 속으로 스스로를 기꺼이 내던진다. 그런 의미에서, 본 앨범은 일종의 회상록이다.
잔뜩 일그러진 일렉 기타나 신시사이저 반주 속에서도, 혹은 알코올이나 기타 약물의 영향 아래에서도, 그의 회상은 현실의 영역을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그날 밤엔 수영장 가에서 네 여름 이야기를 나눴고, 잔디는 조명을 받아 반짝이며 바스라졌고, 우리는 페로몬을 들이마시며 핑크 레모네이드를 홀짝였고, Tyler는 내 소파에서 잤지. 앨범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대신 그들의 인생 이야기와 깊게 결부되고, 어떤 질문도 직접적으로 던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각주를 동반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션은 멜로디 라인이 부재한, 불안정하며 때때로 지리멸렬하기까지 한 연주를 깔아둔다. 이는 청자로 하여금 이 미완의 감각이 해소되기를 바라면서, 그가 내뱉는 단어에 집중하게 만든다. 그러나 보컬 라인은 멜로디에 대한 욕구를 조금 충족시켜 주는 대신 청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부재에 얽매이게 만드는데, 바로 의미의 부재이다. 만약 오션이 The Microphones나 Sufjan Stevens의 방법론에 감명을 받아, 간단한 어쿠스틱 기타나 피아노 반주만을 사용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그의 자전적인 경험들은 그저 고백되는 것, 그 자체로 충분한 의미를 가졌을 것이다. 잔잔한 먹먹함이나 달콤 쌉싸름함 따위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 기존 작법에서 크게 벗어난 반주들은 그 너머에 존재하는 어떤 형이상학적인 의미의 존재를 넌지시 지시하며, 결국 청자들로 하여금 그 정체를 간절히 찾아 헤매게 만든다.
이 이중의 부재 구조가 불러일으키는 괴리감은 Nights가 절반쯤 지날 즈음, 오션이 완전히 취해 알아듣지 못할 말을 지껄이기 시작하며 더욱 심화된다. 그러고 보니까, 열반은 바로 거기 있었어. 내 계기판에 있는 불사조 깃털만큼이나 희귀하지. 내 삐뚤어진 이빨을 보관해둔 곳, 내 동료가 자고 있는 곳에 말이야. 청자들을 의미를 찾아 헤매는 가련한 비자발적 허무주의자로 만들던 그는, 이번에는 카우치에 누워 난데없는 자유연상을 시작함으로써 그들에게 비인가 정신분석가가 될 것을 요구한다. 갈 수 없는 곳에 대한 꿈을 꾸는 것을 생각하는 것에 대한 꿈을 꾸는 생각에 대한 꿈을 꾸는 것을 꿈꾼다는 그의 말은 단순한 잠꼬대 이외에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앨범의 마지막 트랙 Futura Free, 그리고 그 뒤에 자연스레 이어지는 히든 트랙 Interviews에서 혼란스러움은 극에 달한다. 어머니에게 보내는 짧은 안부 인사에서 시작한 그의 회상은 어느샌가 다른 잡다한 이슈들로 종횡무진 뻗어나가고, 그 번쩍임의 잔상들은 단순히 샤워 중에 떠오른 잡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후회와 그리움으로 쌓아올린 계단의 끝에서 엿보는 주마등에 가까워 보인다. 생애 첫 기억이 무엇인가요? 지금까지 본 것들 중에서 가장 멋진 일은 무엇이었나요? 초능력 세 개를 가질 수 있다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싶나요? 말들은 상대에게 닿지 못한 채 공기 중에서 왜곡되고, 결국 흩어진다. 정신을 차리고 기억을 정리해보려 하지만 머릿속에서 샘플링되는 Running Around는 이제 약효가 떨어져간다는 소식을 알리고, 의식 저편으로의 탐험은 머지않아 끝을 맞이한다. 좋아, 이제 됐어.
앞서 오션은 공상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고 했지만, 약간의 생화학적인 도움으로 도달한 고백들의 끝에 그에게는 한 가지 질문이 남겨진다. 광년이라는 건 얼마나 멀까? 거창한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말이다. 물론 그는 오랫동안 고민에 잠겨있지는 않고, 머지않아 Nikes의 베이스 드랍이 다시 시작된다. 우리에게는 벌어야 할 돈도, 사줘야 할 선물도 있지 않은가. 그냥, 어느샌가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다. 시간은 일정하게 흐르지만 어떤 순간들은 너무도 빠르게 우리를 지나쳐간다. 마치 빛의 속도처럼. 맞게 가고 있는 걸까? 얼마나 멀리 온 걸까? 우리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버린 걸까? 탁월한 예술가들이 종종 그러하듯,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의문들을 이 지독한 경험주의자는 단 하나의 질문으로 승화시킨 듯하다.광년이라는 거리는 얼마나 멀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