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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Oct 05. 2023

멀리서 그리고 가까이

사랑이라는 공기는 숨길 수 없다

 

 ‘언제 이렇게 선선해졌지?‘



 퇴근 길, 금세 가을이 온 듯 차가워진 밤공기를 느끼며 길을 걷던 예진의 얼굴에 웃음이 지어졌다. 퇴근 직전까지도 이게 무슨 사람 사는 꼴이야- 를 외쳤는데, 퇴근길에서 만난 선물같은 저녁은 하염없이 거리를 걷고싶게만 만들었다.


 바라만 봐도 예쁜 하늘은 지는 해가 야속할만큼 아까웠다. 저처럼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마음이 몽글해진 예진이 버스 정류장에 다다를때 쯤, 손에 들린 핸드폰에서 짧게 진동이 울렸다.



 " 어디야. "



 발신자에 뜬 명수의 이름을 보며 예진은 걷던 걸음을 멈추었다. 얼마 전, 7년 연애의 끝을 보았다. 이 나이때면 그렇듯 결혼을 앞두고 헤어지는 연인들에겐 많은 이유가 있음에도 많은 이유가 필요없는 법이였다. 말은 얼마전이라 했지만 한달이라는 시간동안 7년을 지워내지 못했다.


 아니, 지워내기엔 7년이라는 시간은 다정함과 사랑속에 너무도 잔인했고 여전히 울컥하는 순간을 만들어 내곤 했다. 애써 그런 순간들을 일로 감춰가며, 잊어가며 보내고 있었는데.. 단숨에 그 마음을 치워버리듯 제게 묻는 명수의 물음에 예진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하고 싶은 대답은 많았다. '어디면 뭐, 니가 알아서 뭐하게.' 부터 시작해서 온갖 모난 말이 머릿속에서 하염없이 뒤엉키는 중이였다. 끝없이 튀어나오는 부정적인 말을 삼키던 예진의 손에선 이번엔 긴 진동이 울렸다. 전화였다.



 " 왜 답이 없어. "

 " ...왜 물어. 헤어진 마당에 내가 어딘지는 왜 궁금해. "

 " 내가 언제 헤어진댔어. 생각 정리되면 말해달랬지. "

 " 한달동안 연락 없으면 뭐겠어? 그게 정리된거고 헤어지자는거지. "

 " 그래서, 헤어지자는거야? "

 " .... . "

 " 언제까지 화만 낼건데. 어디야. "



 어디냐고 묻는 그 목소리가 오랜만임에도 익숙함이 더 크게 다가오던 순간, 예진은 왜인지 모를 서러움에 눈물이 뚝뚝 흘렀다. 답답할법도한데, 짜증낼법도한데, 울고 있는 제 목소리를 가만 들으며 재촉않는 명수가 눈 앞에 그려졌다.


 펑펑 터지려는 눈물을 애써 감춘 예진이 회사 앞 정류장이야. 라고 대답하자 명수는 기다려. 라는 말만 남기고선 전화를 끊었다.



 사실 결혼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서로가 가지려는 미래가 다분히 달랐다. 지금까지 일궈낸 내 모든것을 놓은 채 명수를 따라 영국에서 새 삶을 살기엔 악착같이 살아 온 제 삶이 너무도 귀했기에 결국엔 헤어짐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갈지 말지 고민하는 목소리에 함께 라는 말이 한스푼 더해졌고, 차마 헤어지자는 말이 어려웠던 예진은 우리 좀 생각 할 시간을 가지자. 라는 말로 이별을 고한 셈이였다.



 얼마가지않아 앉은 자리 앞으로 익숙한 차 한대가 다가섰다. 보조석 창이 내려지며 오랜만에 보는 명수의 얼굴을 보며 예진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얼른 타. 여전한 모습으로 여전한 행동을 보이는 명수를 보며 예진은 한숨을 크게 들이쉬며 차에 올라탔다.



 " 밥 먹으러 가자. 스시 먹을까? "



 뭐 하나 어색함이 없었다. 그런 그가 반가우면서도, 한번씩 울컥하는 저와는 다르게 아무렇지도 않은 명수가 순간은 얄미워 보이기도 했다. 운전하는 옆 모습을 가만 보던 예진은 때 마침 신호에 걸려 주행을 멈춘 명수와 눈이 닿았다.



 " 잔뜩 화가났네. "

 " 넌 뭐야? 한달동안 연락없다가 대뜸 이렇게와서 한다는 말이 스시 먹자고? "

 " 생각 정리되면 말해달라 했는데 너무 연락이 없잖아. 무슨 생각을 한달씩이나 해. "

 " 그 한달이 뭐겠어? 넌 그럼 내가 한달동안 생각을 정리한다고만 생각한거야? "



 한껏 뿔이 난 제 얼굴을 가만 보는 명수를 보며 예진은 다시금 입술을 깨물었다. 7년을 만나면서 서로 속을 안다안다해도 꼭 이렇게 알 수없는 순간이 생기곤 했는데 지금이 딱 그런 순간이였다.



 " 내가 언제 헤어지쟀어. 생각 할 시간을 가지자해서 그러자고 한거 뿐인데. 그게 어떻게 헤어지자는 말이 되는거야? "



 안그래도 낮은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저만큼이나 서운함이 잔뜩 묻어나는 목소리에 예진은 다른 말 없이 가만 명수를 쳐다보았다. 이런 와중에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운전을 하다니, 두 가지 일을 한번에 하는 일이 어려운 예진은 이 와중에도 이런 명수가 신기하기도 했다.



 " 나는 뭐 신나서 한달을 기다렸을까봐. 한달동안 빠짐없이 하루가 궁금했는데 나도 참은거야. 생각 정리되면 연락오겠지, 재촉하는 거 싫어하니까. 그래도 나한테만큼은 솔직한 사람이니까 같이 가는게 어려우면 어렵다고 얘기하겠지- 그러면서 억지로 하루 하루를 보냈어. 내가 함께 하자고 했다해서 뭐, 나는 매일이 가볍고 아무렇지 않았을까봐. "



 예진에게 묻어있던 서운함이 명수에게로 간 듯 했다. 작게 내쉰 한숨 뒤로 나도 답답했어. 라는 그 말을 끝으로 저를 쳐다보는 명수를 보며 예진은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의젓한 어른이 되었음에도 사랑 앞에선 같은 말도 이렇게 다르다. 7년이란 긴 시간을 보냈음에도 감정 앞에선 사랑도 미지수다.



 "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가지마라는 말 뿐인데 그 말을 어떻게 해. 니가 얼마나 용을쓰고 살아왔는지 내가 제일 잘 아는데. "

 " 가지마라고 해보지 그랬어. "

 " ... . "

 " 생각 할 시간을 가지자해서 난 정말 생각만했어. 가는게 맞는건지, 가면 거기서 다시 터를 잡아야하는데, 나만큼이나 열심히 살아 온 너한테 다 뿌리치고 나만 믿고 가자고 하는게 맞는건지. 나는 한달동안 이 세가지 고민만해도 벅찼는데, 뭐? 그게 헤어지자는게 아니면 뭐냐고? "



 화가 날 수록 침착해지는 명수의 목소리와 함께 차는 스시 집 앞에 도착했다.



 그게 어떻게 헤어지자는 말이 되냐는 남자와, 그게 왜 헤어지자는 말이 안되냐는 여자의 목소리가 뒤엉켰다. 서로가 서로를 제일 잘 안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상황에 다른 대답으로 번져간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이라는 공기는 숨길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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