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이름을 싫어한다.
나의 이름은 이민정.
살면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게 되는 경우는 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친구를 부르면서 나의 이름을 불렀다.
그럴 때 느껴지는 어색함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나의 이름은 흔해서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복수'의 사람들과 함께 서게 된다.
사실 흔하기 때문에 나의 이름을 싫어한다는 것은 덜 솔직하다.
나의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나에게 일정한 컴플렉스로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솔직한 이유일 것이다.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니말이다.
'민정' 이라는 이름이 가진 비극은 ' 사회'를 처음 경험하게 되는 국민학교(난 국민학교를 다녔다.)입학부터 시작되었다.
작은 동네에서 조직을 이루고 놀았고, 조직속에서 보호를 받고 살았던 사람이 한 개인으로 다른 집단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엄청난 공포와 위축감을 주게 된다.
비교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내쳐지게 되는 하갈과 이스마엘이 가졌던 막막함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야말로 죽을 것 같다는 공포 말이다.
그런 공포를 가지고 입학한 첫날 내가 배정받은 반은 1학년 4반이었는데, 반에 또다른 '민정'이 있었고, 선생님들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서 나를 1학년 6반으로 보냈다.
위축되어 있는 상태에서 반까지 옮기게 되니, 나의 뻘쭘함은 극에 달했고, 이 첫경험은 나를 이후 학교에서 한마디도 안하는 아이로 만들어 버렸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바뀌는 반마다 성은 달랐지만, '민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한명씩 꼭 있었고, 나는 존재감도 별로 없는 아이로 성장해 가고 있었다.
점차 고학년이 되면서 나의 키가 크게 되었고, 주로 뒤에서 노는 아이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나의 성격도 점차 달라졌고, '주류'의 맛을 보긴 했다. 하지만 항상 '민정'이라는 이름의 주인공은 다른 사람이었던 운명은 비켜가지 못했는데, 어떤 아이가 전학을 오게 되었고, 그녀의 이름 역시 '이민정'이었다.
이 친구의 등장은 나에게 많은 콤플렉스를 자극시켰다.
활발한 성격에다 개방적이었고, 경제적 능력이 되었던 부모님 덕분에 여행도 자주 가고, 심지어(!) 사투리를 쓰지 않는 주류였다.
유명 연예인들을 좋아하는 방식도 남들보다 당연히 앞섰고, 소풍을 가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감 있게 춤을 추고 있는 그 친구를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래저래 전교에서 유명한 사람이었다. 쉽게 말해서 연예인급이었다.
거기에 비해 같은 이름을 가진 나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자연히 여기저기서 나의 이름은 호명되는데, 그럴 때마다 놀라면서 쳐다보지만 그 주인공은 내가 아니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랬고,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그랬다.
내가 잘못한 것은 없지만, 나는 늘 뒤쳐진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 빌어먹을 운명은 그 친구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까지 같은 곳을 다니게 되면서 이어지게 되었다.
'뺑뺑이' 돌려서 가는 학교가 아닌 고등학교를 선택하는 바람에 광안리에서 약간 먼 곳까지 통학을 하게 된 우리는 같은 '봉고'를 타고 등·하교를 하였다. 등교시간은 거의 잠을 다 잤고, 하교 시간은 여러 간식들과 함께 수다를 떨었다.
어느날 초등학교, 중학교 때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사람이었던 그 친구의 성적을 알게 되었고, 그 뒤 나는 그 친구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나의 전교 등수가 그 민정이보다 앞섰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뭐라도 하나 그 친구보다 나은 점이 있기를 바랬기에 그 발견은 아주 큰 것이었다.
인생에서 '역전' 만큼 짜릿한 것이 있겠는가!
그 뒤로 조금씩 나의 성격도 변해갔다.
같은 반에 꼭 한 명이 있는 '민정'이들과도 잘 지냈고, 아무 미묘한 차이기는 하지만 나를 부르는 것인지, 다른 민정이를 부르는 것인지를 구별할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누가 '민정아'라고 부를 때 흠칫 놀라거나 돌아보지 않게 되기도 하였다.
성격이 변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달라졌고, 나는 아주 원만한 사람으로 바뀌어갔다.
이쯤 되면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부터 가슴에 묻어둔 이야기가 있는데 해야 될 것 같았다.
확인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이름이 같다는 것이 불러온 에피소드에 대해서.
초등학교 5학년, 6학년 때 나는 한 출판사에서 주최하는 글짓기 대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커다란 사직구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나는 기념품이 탐나서 2년 연속 참여하였다.
보통 관에서 주관하는 글짓기 대회는 선생님이 선발하지만, 이 글짓기 대회는 참가 자격에 특별한 것은 없었다.
아무튼 주제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고, 수상 여부는 나와 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햇살이 무척 따뜻했던 것은 기억난다.
글짓기 대회가 있은 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어느날 전교생이 다 모인 조례시간에 그 글짓기 대회 수상자를 발표하였다.
교장 선생님은 " 6학년 이민정"을 호명했다.
보통 다른 상들은 반까지 다 부르기 때문에 누구를 부르는 것인지 명확했지만, 이번에는 그냥 6학년이었다.
선생님도 그 수상자가 누구인지 몰랐다.
한동안 수상자가 나가지 않았고, 나는 설마 나일까 하는 생각으로 망설이고 있었다.
그 순간 누군가가 나와서 교장 선생님 앞에 섰고, 부상으로 얻은 사전을 가지고 유유히 내려왔다.
다른 사람이 올라가서 상을 받았기 때문에 나는 나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그 순간은 지나갔는데, 어느 날 출판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보내준 상장을 잘 받았는지를 확인하고 수상작들이 담긴 책을 보내 줄 주소를 확인하는 전화였다.
그 전화를 받으신 어머니는 나에게 그 상의 진짜 주인은 나라는 진실을 말해주셨다.
내가 좀 더 용기가 있었더라면, 혹은 우리 어머니가 일하러 가지 않고 하루만 학교에 가셨더라면 그 상은 빨리 나에게 다시 돌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상은 나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는 그냥 넘어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고, 나는 어렴풋이 그 수상자가 나와 고등학교 때까지 같은 곳을 다닌 그 친구일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확인을 해보고 싶었지만, 역시나 단도직입적으로 '너냐?'라고 묻지 못했다.
같은 이름이 있어 일어났던 여러 일들 중의 하나로 이야기를 하였다.
이야기를 듣던 그 친구는 '그거 난데'라고 고백을 하였다.
봉고 안의 친구들은 그 기막힌 우연과 황당한 사건에 대해 놀라워했지만, 나는그 민정이가 반쯤 알고 있는 것을 모른 척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색하게 크게 웃었고, 그 다음날 그 친구는 지난날의 상장을 가지고 왔다.
부상으로 받은 '동아 영어사전'은 동생이 쓰고 있기 때문에 돌려줄 수 없다는 말과 함께.
당시 수상자가 계속 안나오자 담임 선생님이 자신을 지목했고 자신이 올라가서 수상을 했다는 부연 설명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돌려 받은 그 상장은 나의 유일한 초등학교 상장이 되었다.
개근상도 하나 받지 못하고 초등학교를 졸업했는데, 고등학생이 되어 수상의 영광을 안게 된 것이었다.
사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늘 비교가 된다고 생각하고,
늘 내가 못하다고 생각하고 질투했던 나에 비해 시원스럽게 상장을 돌려주고 추억으로 만든 그 친구는 같은 민정이었지만, 다른 민정이었다.
앨범과 성적표, 그리고 몇 개 되지 않는 상장들이 담긴 박스들을 볼 때마다 초등학교 때 부터 고등학교 때까지의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 그리고 다른 상장들 보다 훨씬 큰 그 상장을 볼 때마다 용기 없었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 머쓱한 웃음을 짓게된다.
p.s) 남녀공학이었던 탓에 고등학교에는 다양한 일들이 생겼는데, 그 친구는 연애를 잘못하면서 인생이 꼬인 고등학교 생활을 보냈고, 성적은 형편없이 떨어졌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은 그 친구를 비껴가지 않았는데, 복수로 원수 접수가 가능해서, 그냥 넣어본 명문대가 미달이 되어서 덜컥 붙어버렸다. 그 민정은 끝까지 나에게 컴플렉스를 선사하고 서울로 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