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핸드백 디자이너는 한국에서 '잡화'가 되었을까?

일본 근대 백화점이 만든 상품 분류 체계가 남긴 유감

by 임상덕




왜 핸드백 디자이너는 한국에서 ‘잡화 디자이너’가 되었을까


나는 30년 넘게 '핸드백 디자이너, 또는 레더굿스 디자이너(Leather Goods Designer)'로

글로벌 패션 럭셔리 브랜드와 라이프스타일 패션 산업에 몸담고 일하고 있다.


오늘은 내 직업에 대한 명칭에 대해서 가졌던 오래된 유감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다.


한국 패션회사에 들어가면 흔히 이런 조직 이름을 본다.

의류팀, 잡화팀.

그리고 가방을 디자인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이렇게 불린다.


“잡화 디자이너.”


이 분야 디자이너로 일해온 나는 오랫동안 이 표현이 어딘가 불편했다.


핸드백 디자인은 분명 매우 전문적인 분야이고 실무를 하기 위한 숙련도가 그 어떤 디자인 영역보다 많이 필요한 직업인데, “잡화”라는 단어는 마치 여러 물건이 뒤섞인 부수적 카테고리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말은 어디서 왔을까.

‘잡화’는 유통만을 위해 만들어진 오직 근대 일본에서만 사용된 한자어였다 .

심지어 근대 유럽과 미국에서조차도 비슷한 단어를 찾아보기 힘든 용어이다.


“잡화(雜貨)”는 원래 디자인 분야에 적합한 전문 용어가 아니다.

이 한자 단어 뿌리는 일본이 만든 근대 백화점 상품 분류 체계에 있다.


백화점은 본래 19세기 후반 유럽 대도시에서 발전한 근대적 소매 시스템이었다. 프랑스 봉 마르셰 같은 초기 백화점은 거대한 건물 안에 여러 상품군을 한데 모아 전시하고 판매하는 새로운 소비 공간을 만들었다. 이 모델은 곧 영국, 미국, 일본으로 확산되었다. 그런데 일본 근대 백화점 뿌리는 좀 특이하다.


image.png (일본 최초로 생긴 미쓰코시 백화점 해외 관광객을 위한 안내전단)


대표적인 일본 대형 백화점들인 미쓰코시나 다카시마야는 처음부터 백화점이 아니었다. 이들은 원래 기모노와 포목을 파는 오복점(呉服店)이었다. 다카시마야는 1831년 교토에서 출발한 오복상이었고, 미쓰코시 역시 에도 시대의 기모노 상점 계보를 잇는다. 그러다 메이지 말기와 다이쇼 시기에 들어 서구식 근대 상업 시스템을 받아들이며 ‘백화점’으로 전환한다. 특히 미쓰코시는 1904년 스스로를 일본 최초 근대 백화점이라 선언했고, 다카시마야도 1919년 이후 본격적인 백화점 체제로 이동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전환한 방식이다.


오복점은 본래 ‘옷감’ 중심의 상업이었다. 그러나 백화점이 되면서 의류만 팔 수는 없었다. 장신구, 여행용품, 식품, 생활용품, 선물용품, 장식품까지 점점 더 많은 품목을 한 공간 안에 넣어야 했다. 그래서 상품은 부문별로 나뉘기 시작했고, 의복 이외 다양한 소품과 생활 물품은 넓은 의미에서 잡화라는 범주 안에 묶이게 되었다. 다시 말해 “잡화”는 어떤 전문 분야로서 명칭이 아니라, 의류 바깥에 있는 여러 상품을 묶는 백화점 내부에서 분류를 위해 만들어진 행정 용어였던 셈이다. 이 흐름은 일본 백화점이 ‘one-stop shopping’을 내세우며 상품군을 대폭 확장한 과정과도 맞닿아 있다.


image.png (昭和7年 南海高島屋 開店 쇼와 7년 1932년 난카이 타카시마야 백화점 개점 광고)



이 일본식 백화점 분류 체계 시스템은 식민지 조선에도 이식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한국 백화점 시초를 1930년 경성 미쓰코시 지점 개설과 연결해 설명한다. 이후 화신백화점 같은 조선인 자본으로 탄생한 백화점도 등장했지만, 이미 백화점 운영 방식과 상품 분류 체계는 일본식 근대 백화점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


image.png (1930년대 일제 식민지 조선에 생긴 화신 백화점_한국전쟁 직후 불에 탄 모습이다.)




이렇게 들어온 백화점 체계 분류 언어는 해방 이후 현재까지도 살아남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한국 패션 기업 조직표에서 오랫동안 의류팀 / 잡화팀이라는 구분이 자연스럽게 쓰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즉 “잡화”는 직업이나 디자인 대상을 설명하는 단어가 아니라, 백화점과 유통회사가 쓰던 상품 분류 용어가 회사 조직 언어로 굳어진 결과에 가깝다.


때문에 ‘잡화 디자이너’라는 명칭은 처음부터 직업 전문성을 드러내는 말이라기보다 유통 체계가 만든 이름이었다고 보는 편이 맞다. 이 부분은 백화점이 상품류별 부문 운영을 특징으로 한다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설명과도 맞닿아 있다. 한국 패션 산업은 백화점 생태계에 의하여 50년간 유지되고 성장해왔다.


그래서 한국 회사에서 가방은 종종 ‘부속’처럼 취급되었다.


문제는 이 말이 단순한 명칭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많은 한국 패션회사에서 가방과 액세서리는 의류를 보완하는 부가 영역처럼 취급되었다.

심지어 어떤 회사에서는 팀 막내가 잡화를 맡기도 했다. 말 그대로 “옷 하다가 남는 손으로 하는 일”처럼 여겨진 것이다. 대형 의류 회사일수록 그런 현상이 강한데 무신사와 같은 패션 플랫폼과, 대기업들은 아직까지도 조직 내부에서 '잡화'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핸드백 디자인, 또는 레더 굿스(Leather Goods) 디자인은 전 세계적으로 매우 전문적인 직업이다.

가방은 의복과 전혀 다른 구조를 가진다. 패턴도 다르고, 소재에 대한 이해도 다르고, 봉제 방식도 다르며, 금속 장식같은 하드웨어, 사용성, 중량, 수납, 내구성까지 전혀 다른 설계 감각이 필요하다. 특히 천연 가죽같은 경우는 선행되어야 할 많은 지식이 필요할 뿐아니라, 텍스타일 디자인, 라이프스타일 문화, 트렌드에 대한 통찰이 있어야만 디자인을 비로소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 패션 산업 안에서는 오랫동안 이 영역이 “잡화”라는 말 속에 묶이면서, 전문 분야로서의 위상이 충분히 언어화되지 못했다.


‘잡화 디자이너’라는 표현에는 보다 더 나쁜 의미가 들어 있다.

그 말 속에는 가방 디자인을 독립된 창작 영역으로 보지 않았던 한국 패션 산업에 남은 오래된 시선이 편견으로 남아 있다.


럭셔리 산업에서 가방은 중심이다


흥미로운 것은 글로벌 럭셔리 산업 현실은 정반대라는 점이다.

루이비통(Louis Vuitton)은 여행용 트렁크에서 출발했고, 에르메스(Hermès)는 말 안장과 마구에서 시작했으며, 구찌(Gucci) 역시 여행가방과 승마 관련 제품의 계보를 갖고 있다. 오늘날 이 브랜드들의 상징은 대부분 의류가 아니라 가방과 레더 굿즈다. 브랜드 역사, 공예 기술, 상징 자산, 수익 구조가 모두 그 안에 응축되어 있다.


즉 럭셔리 산업에서 가방은 결코 “잡다한 소품”이 아니다.

오히려 브랜드 정체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떠받치는 핵심 분야다.


링크드인에 들어가면 전 세계 럭셔리 브랜드와 글로벌 브랜드에서 일하는 관련 디자이너들은 ‘잡화 디자이너’라고 부르지 않으며 대신 훨씬 명확하게 스스로를 부른다.


• Handbag Designer

• Leather Goods Designer

• Fashion Accessories Designer


이 직무들은 무엇을 설계하는지, 어떤 전문성을 갖고 있는지 바로 드러낸다.

이름이 인식을 만든다

언어는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어떤 직업을 무엇이라 부르느냐는 그 분야 위상과 전문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만든다.


그러니 앞으로 이 글을 읽은 모든 분들은 '잡화 디자이너'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아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image.jpeg 앞으로 핸드백 디자이너라고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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