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아파렐리, 그리고 다시 돌아온 초현실주의
패션에는 두 종류의 아름다움이 있다.
하나는
즉시 보면 아름다움을 느끼며
지금 내가 바로 즐길 수 있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더 오래 여운이
남는 특별함 같은 것.
이번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여우 조연상을 받은
헐리우드 배우 테야나 테일러가 입은 드레스는
프랑스 쿠튀르 브랜드
스키아파렐리이다.
스키아파렐리는 20세기 초
샤넬과 열띤 경쟁을 했던
당대 최고 패션 디자이너였다.
1930년대
스키아파렐리와 샤넬은 프랑스 최고 패션 대기업을
운영하던 라이벌이었다.
가난하여 고아나 다름없이 수녀원에서
힘들게 성장한 샤넬과 달리
스키아파렐리는
이탈리아 로마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뉴욕 파리 로마를 넘나들며
활동했던 당대 최고 사교계 유명 인사였고
수천명 직원을 거느린 대기업 오너이기도 했다.
그녀는
당시 초현실주의 예술가들 거의 모두와 교류하였고
패션을 예술로 인식했던 디자이너였다.
2019년부터
스키아파렐리 크리에이티브디렉터로
프랑스 쿠튀르 하우스를 이끄는 최초 미국인
디자이너인 다니엘 로즈베리(1985년생)는
이 오래된 전설적인 브랜드를
오늘날 시선으로 다시 재창조하고 있는 중이다.
스키아파렐리(Schiaparelli)
2026년 가을겨울 패션쇼는
생전에 그녀가 추구했던
초현실주의가 던지는 이해할수 없는
의미를 남겼다.
‘옷’을 보여주기보다
쉽게 이해하기 어렵고 설명하기 어려운
‘초현실적 이미지’를
탐구하는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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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과 경쟁했던, 또 하나의 세계
엘사 스키아파렐리(Elsa Schiaparelli, 1890~1973),
동시대의 코코 샤넬(Coco Chanel, 1893~1971)은
서로 다른 성장 배경과
다른 개성을 가진 디자이너이며,
당시 프랑스 패션 산업에서
라이벌로
종종 비교되어 왔다.
두 사람은 거의 같은 시대를 살았고,
평생 경쟁했던 인물들이다.
그런데
1954년 은퇴한 스키아파렐리와 달리
샤넬은
1955년
샤넬 2.55백과 트위드 자켓을 디자인하여
럭셔리 명품 역사를 다시 쓰게 된다.
두 사람 경쟁은 결국
스키아파렐리는 사라지고
샤넬이 하이엔드 럭셔리 패션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현재까지 남으면서
마무리되었다.
스키아파렐리가
1954년 은퇴하고 종료되었던
스키아파렐리 하우스는
이탈리아 럭셔리 기업인
토즈 그룹에서
브랜드 IP를 인수하여
2012년
다시 재개하게 된다.
생전에 활발히 활동했던 시기인
1930년대
샤넬과 스키아파렐리는
단순한 라이벌이 아니었다.
서로 전혀 다른 세계를 대표했다.
•샤넬이 ‘현대 여성의 현실’을 만들었다면
•스키아파렐리는 ‘현실을 벗어난 세계’를 만들었다
샤넬이 기능과 해방을 이야기할 때,
스키아파렐리는 꿈과 환상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 둘의 긴장은
20세기 패션을 입체적으로 만든 가장 중요한 축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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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 예술가들과 함께 만든 패션
스키아파렐리는 디자이너라기보다
하나의 ‘문화적 허브’에 가까웠다.
그녀는 당대의 초현실주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패션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와의 협업
•장 콕토(Jean Cocteau)와의 작업
•만 레이(Man Ray)와의 교류
랍스터 드레스,
눈물 드레스,
인체를 연상시키는 장식들.
이 모든 것은
단순한 ‘디자인’이 아니라
사유의 형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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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페이즈망, 낯선 곳으로 옮겨진 현실
그녀의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은
**데페이즈망(dépaysement)**이다.
데페이즈망은 초현실주의 기법 가운데
비교적 널리 많이 알려져 있다.
데페이즈망은 한마디로,
"익숙한 것을 낯선 맥락에 옮겨,
현실을 낯설게 만드는 것"이다.
익숙한 것을
낯선 맥락에 놓는 것.
•몸의 일부가 장식이 되고
•사물이 생명체처럼 보이며
•현실이 비현실처럼 느껴지는 순간
이때 우리는 비로소
‘보던 것’을 다시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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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처럼 살았던, 마지막 보헤미안
스키아파렐리 삶 자체가
하나의 작품
예술같은 것이었다.
이탈리아 귀족 출신,
파리 사교계의 중심,
예술가들과 어울리던 보헤미안.
그녀의 삶은 철저히 ‘현실적 성공’과 동시에
‘비현실적 감각’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가 만든 디자인은
그녀 삶이 추구했던 연장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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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FW, 다시 등장한 초현실주의
이번 시즌 쇼에서 보인 것은
단순한 아카이브의 재현이 아니다.
•신체를 연상시키는 주얼리
•생명체와 사물의 경계가 흐려진 형태
•장식과 구조가 뒤섞인 디테일
이 모든 요소는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데페이즈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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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에베, 같은 흐름의 또 다른 신호
흥미롭게도 이 흐름은
동시대
다른 럭셔리 브랜드에서도 포착된다.
로에베(Loewe)의 최근 주얼리에서 등장한
집게 형태 주얼리 오브제.
스키아파렐리가 추구하는 초현실주의 데페이즈망 기법과
유사한 방식에서
자연적 모티브를
다른 맥락으로 이동시킨 것.
자연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 아니라
초현실주의적 패션 조형 오브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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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우리는 너무 많은 이미지를 소비한다.
빠르게 이해되고,
빠르게 잊혀진다.
그래서 동시대 패션은
다시 ‘이해되지 않는 것’을 선택하려고 하는 것일까?
새롭게 등장하는 경향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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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옷을 만든 것이 아니라
스키아파렐리는
자신이 만든 패션 디자인을
초현실주의
예술품이라고 생각했다.
초현실주의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친절하게 의미를 설명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