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스한 교사인 척, 속으론 욱 ep.8
※ 이 글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창작한 에세이입니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여러 사례를 종합해 재구성한 가상의 인물입니다.
인간관계라는 게 참 잔인하다.
괜히 마음이 가는 사람이 있고,
또 괜히 미운 사람이 있다.
이렇게 하면 좋아하고,
저렇게 하면 싫어한다고들 하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이유라고 할 만한 게 없으니,
사실은,
그뿐이다.
교실에서도 그렇다.
아이들 얼굴을 스쳐만 봐도 유난히 끌리는 아이가 있다.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가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예뻐 보이는 아이.
대개 그런 아이는 여지없이
친구들한테 환영받고,
선생님들한테도 사랑을 독차지한다.
공부 머리나 운동신경처럼,
호감이란 것도 어떤 복처럼 타고나는 모양이다.
반대로,
조금만 삐끗해도 미워지고 정이 도통 붙지 않는 아이도 있다.
굳이 말하자면,
태생부터 ‘비호감’의 그림자를 짊어진 아이.
그리고,
호장이는 딱 그런 아이였다.
껑충한 키에,
나뭇가지처럼 바싹 마른 몸,
세상만사에 불만이 가득해 보이는 눈매에
사람 신경을 있는 대로 긁는 언행.
이를테면,
오늘 급식이 제육볶음이라 들떠 있는 친구에게
“그런 싸구려 음식이 맛있냐.”
툭, 하고 한마디 내뱉는 식이었다.
아이들은 그런 호장이를 두고
“좀 짜증 나요.”
“말투가 별로예요.”
하며 슬슬 고개를 내저었고,
교사들의 평가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전호장… 걔는 뭐랄까, 정이 안 가.”
목소리를 높이는 일도 없고,
그렇다고 사고를 치는 타입도 아니어서
중1 내내 ‘숨겨진 비호감’으로 지내던 호장이었지만
중2가 되자, 상황이 바뀌었다.
아이는 갑자기 자신의 숨겨둔 은밀한 취향을 꺼내었고, 하필 그 취향이 문제였다.
호장이는 1900년대 유럽 전쟁사에, 그중에서도 유독 히틀러에 집착하듯 빠져 있었다. 쉬는 시간마다 두툼한 전쟁사 책을 끼고 다녔고, 토론 시간만 되면 “힘으로 평화를 만든다”는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그걸 본 교사의 얼굴이 굳어졌고, 아이들 사이에서는 수군거림이 시작됐다.
그렇게 호장이는 더 이상 ‘숨겨진 비호감’이 아닌, 모두가 고개를 젓는 ‘대놓고 비호감’이 되었다.
급기야 인권교육 시간에는 “필요 없는 인간은 전쟁으로 쓸어야 한다.” 고 목청을 높여 보는 이들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그 일로 교무실로 끌려온 호장이는 담임과 ‘설득’이라는 이름의 ‘말다툼’을 한 시간가량 벌였고, 논리도 힘도 밀린 아이는 끝내 외쳤다.
“아! 그만해요! 제가 선생님을 어떻게 이겨요!”
흥분해 발작하듯 외치는 아이를 담임이 가까스로 달래 교실로 보냈다.
호장이가 나간 뒤,
교무실엔 묘한 정적이 흘렀다.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다들 이 아이를 이대로 두기엔 위험하다고 직감하는 얼굴들이었다.
이 난감한 아이를 누가 맡을 것인가.
잠시 뒤,
누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역사 선생님이 한번 이야기해 보시죠.
아무래도 제일 잘 아시잖아요.”
“… 제가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호장이 담임이 이때다 싶었는지
내 손에 평소 아끼던 비싼 드립커피백을 쥐여주며 말했다.
“우리 호장이를 민주시민으로 좀 이끌어줘요.”
그리고 그렇게
나는 별안간
‘호장이 담당’이 되어버렸다.
나는 원래 어딘가 살짝 삐딱한 데가 있다.
남들이 다 좋다 하면 시들해지고,
다 싫다 하면 괜히 한번 들여다본다.
완성된 것보다 미완성이 좋고,
나에게 필요한 상대보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꽂힌다.
교사 생활도 그렇다.
소위 인싸,
그러니까 호감 가는 외모에 성격 좋고,
적당히 눈치 있는 아이들이 나라고 싫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 애들은 나 말고도 챙겨줄 사람이 넘치니 굳이 내가 보태야 하나 싶은 것이다.
반면에,
모두가 비호감이라고 외면하는 아이는
나 역시 껄끄러운데도 이상하게 눈에 밟혔다.
자의적으로 ‘호장이 담당’이 된 건 아니었지만,
그 얘는 고약하고 삐딱한 내 취향의 구미를 상당히 당기고 있었다.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모두 비호감이라며 고개를 젓는 전호장.
내가 한번 먼저 다가가볼까.
호장이를 따로 교무실로 불렀다.
수업 시간엔 늘 말없이 앉아 있던 아이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이는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부터 눈에 경계가 가득 배어 있었다. 얼마 전 선생님들에게 호되게 불려 다닌 기억이 아직 몸에 남아 있는 듯했다.
“히틀러가 왜 좋아?”
“…네?”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호장이는 잠시 말을 잃은 듯 당황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왜 좋냐고.”
“… 그걸 왜 묻는데요.”
나는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그냥 궁금해서.
말하기 싫으면 말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 뒤 서류를 넘기는 척, 다른 일을 하는 시늉을 하자 호장이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사실 히틀러에 대해서는 잘못 평가된 부분도 있고요. 리더십 면에서도요…”
우물쭈물 시작하던 처음과 달리 점점 얼굴에 기운이 돌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신이 나는 법이니까. 나는 말을 끊지만 않으면 됐다. 가끔 “그래?” “오호.” 짧은 추임새만 던져주면 충분했다.
십 분쯤 지났을까.
히틀러 이야기를 한바탕 쏟아낸 호장이는 문득 정신이 든 듯, 특유의 가늘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돌아왔다.
“근데…
저 왜 부르셨어요?
하실 말씀 있으신 거 아니에요?”
“아니. 그냥 궁금해서 불렀어.
다 들었으니까, 가도 돼.”
“…네?”
“가보라고.”
한동안 의아한 듯 나를 빤히 보던 아이는
이내 고개를 숙이더니 말없이 교무실을 나갔다.
그리고 그날 이후,
호장이는
나를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역사 수업이 끝나기만 하면 녀석은 꼭 질문 하나를 들고 찾아왔다. 무슨 내용을 배웠든 어김없이 히틀러와 엮어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선생님, 오늘 배운 알렉산드로스랑
히틀러의 전쟁 전술이 비슷한 점이 있다는 걸 아세요?”
질문이라곤 하지만 굳이 답할 필요는 없었다.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라 자기 지식을 자랑하고 싶어서 묻는 거였으니까. 역사 교사인 나도 처음 듣는 전쟁 무기 이름이며 비행기, 탱크 차종을 줄줄 읊어댈 때면 나는 한마디만 하면 됐다.
“와, 나도 모르는 걸 너는 참 많이 아는구나.”
그러면 호장이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신이 난 듯 이야기를 더 이어갔다. 나는 가끔 고개만 끄덕이며 듣는 척, 반쯤 흘려들으면 그만이었다.
“샘, 저 이야기를 어떻게 다 들어주고 있어?”
옆자리에 있던 동료선생님은 매일 찾아오는 녀석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사실 그리 힘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호장이에게 약속 하나를 받아냈기 때문이다.
“너는 나한테 하루에 딱 십 분만 히틀러 얘기를 할 수 있어.”
처음엔 무슨 소린가 싶다는 얼굴을 하던 아이도 막상 타이머를 켜 놓으니 해야 할 말을 하느라 급해졌고, 이내 그 규칙에 익숙해졌다.
그러니까 나는 하루에 딱 십 분만 들으면 됐다.
사람은 끝이 있다는 걸 알면 지루한 이야기도 의외로 잘 견딜 수 있다.
아이는 어떤 날은 십 분을 한 번에 써버렸고,
어떤 날은 오 분씩 나눠 쓰기도 했다.
어느 날은, 잘게 쪼개 몇 번이나 교무실에 얼굴을 들이밀길래 물었다.
“근데, 왜 그렇게 히틀러 편을 들어? 끔찍한 전쟁을 일으킨 사람이잖아.”
“… 모두가 다 히틀러 탓만 하잖아요. 저라도 아니라고 해주고 싶어요.”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아무도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교실에서 늘 눈치를 보며 살았던 아이에게 그건 신념이라기보다는 방어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끔씩 민주시민이니, 올바른 사관이니 하는 역사 교사로서의 양심이 고개를 들 때면 슬쩍 한마디를 얹었다.
“너 그렇게 히틀러만 파서는 논쟁에서 못 이겨. 반대하는 쪽 얘기도 알아야지.”
그러면서 전쟁이나 독재를 비판하는 책을 무심한 얼굴로 던져주면, 다음 날 호장이는 그걸 읽고 와서 또 한바탕 말을 쏟아냈다. 뭐, 대부분은 반박이었지만.
한 번은 빌려준 조지 오웰 책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 사람 생각은 좀 괜찮은 것 같기도 해요.” 라며 퉁명스럽게 책을 돌려주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아이의 모습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교실에서 내가 농담을 던져 모두가 웃고 있을 때 괜히 고개를 숙이며 터진 웃음을 들키지 않으려는 모습이라든지, 수업시간에 다른 선생님들에게서 받은 사탕이며 젤리를 한 주먹 모아 “전 이런 거 안 먹어서요.” 하고 시크하게 교무실 책상에 던지고 가는 뒷모습 같은 것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사이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정 같은 것이
조용히 자리 잡았다.
스승과 제자 사이라기엔 너무 느슨하고,
우정이라고 부르기엔 다소 건조한 감정.
그렇게
어느새 서로에게 익숙해진 채,
한 해가 지나갔다.
중3이 된 호장이와 2학년을 맡은 나는
이제 더 이상 접점이 없어야 했다.
그래야 맞았다.
그런데도 호장이는 계속 나를 찾아왔다.
“저 고등학교 어디 가야 할까요?”
“야, 이런 건 너네 담임선생님이랑 얘기해.”
“아… 어딜 가야 하지…”
“내 말 듣고 있냐?”
퉁명스러운 내 말에도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뻔질나게 교무실을 드나들었다.
새 학년이 시작되고 한 달쯤 지났을 무렵,
호장이는 유난히 밝은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저 정했어요!
항해사가 되고 싶어요!
제가 사람을 안 좋아하잖아요.
사람도 별로 안 만날 수 있고,
무엇보다도 함대잖아요! 함대!”
아이 눈밑에 인디언 보조개가 쏙 들어갔다. 의외로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외로운 직업, 항해사.
하지만 호장이 같은 아이에게는 그 고독이 오히려 매력이 될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전쟁사를 좋아해 함대와 제복에 유난히 마음을 빼앗긴 아이에게 그보다 더 어울리는 진로가 있을까.
“야, 너랑 딱이다.
그 이상한 취향이 이럴 땐 쓸모가 있네.”
“… 저보고 이상하다고 하신 거예요?”
“… 미안한데, 솔직히 니가 안 이상한 건 아니잖아.”
“아, 샘!”
그날 이후 호장이는 내신 공부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는 ‘중하’ 정도의 성적이었지만, 원하는 해양고등학교에 가려면 ‘중상’ 정도의 성적이 필요했다.
하지만 성적은 쉽게 오르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호장이는 교무실에 잘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꼭 하나쯤 꺼냈을 히틀러 이야기 대신, 복도에서 마주치면 꾸벅 인사만 하고 어두운 얼굴로 지나갔다.
중3 1학기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연달아 망치고,
마지막 기회였던 2학기 중간고사까지 치른 뒤,
호장이는 다시 나를 찾아왔다.
“선생님, 저 그냥… 거기 안 갈래요.”
아,
시험을 또 망쳤구나.
늘 잘난 척하느라 바빴던 아이가 그렇게 풀이 죽어 있었다.
“괜찮아. 면접 비중이 크잖아. 그거 잘 보면 돼.”
“… 저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 무너진 목소리에 마음 한구석이 덜컹 내려앉았다. 호장이도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저 미움받기 전에 먼저 밀어냈을 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의 어깨를 잡고 눈을 맞췄다.
“내 말 못 믿어? 할 수 있다니까.”
그 순간, 호장이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아이는 황급히 교무실을 뛰쳐나갔고, 나는 복도 끝에서 숨죽여 울고 있는 녀석을 찾아냈다.
“으… 흐… 꺽…”
참으려 해도 끝내 터져 나오는 딸꾹질 소리가 텅 빈 복도에 작게 울렸다.
많이 불안했구나.
처음으로 생긴 목표를 잃을까 봐 무서웠던 걸까.
“호장아.
결과는 중요하지 않아.
네가 여기까지 온 과정은 다 네 안에 남아.
진짜야.”
나는 아무 말도 더 하지 않고 그저 아이의 어깨를 조용히 두드릴 뿐이었다.
몇 주 뒤,
오랜만에 공강 시간의 한가로움을 누리며 따뜻한 믹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려는 순간—
“선생님!! 저 붙었어요!!!”
커피잔을 든 손이 덜컥 흔들릴 만큼 큰 소리였다. 호장이는 교무실 한가운데서 방방 뛰며 말했다.
“저, 면접을 진짜 잘 봤나 봐요!”
교무실이 금세 술렁였다. 주변에 있던 선생님들이 저마다 축하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아이는 나에게만 보여주던 인디언 보조개를 이제는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웃고 있었다. 원래 호장이를 알던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저 녀석, 웃으니까 꽤 귀엽네?”
그건 마치 나만 알고 있던, 아직 덜 알려진 가수가 어느 날 갑자기 유명해져 사람들 앞에서 웃고 있는 모습을 보는 기분이랄까.
솔직히 말하면 조금은— 그러니까 아주 조금은, 서운함이 스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테다. 하지만 신나게 웃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그 마음은 이내 흐뭇함에 묻혔다.
그렇게
호장이는
마지막까지 웃는 얼굴로
졸업했다.
에필로그.
출산과 함께 육아휴직을 낸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무렵, 동료 샘에게서 전화가 왔다.
“샘, 졸업한 전호장 알지?
교복 입고 학교에 왔는데…
샘 휴직이라니까 사진 찍어서 보내달라네.
자기 모습 꼭 보여주고 싶대.”
“아, 그래요?”
“잘 찍어야 된다며
은근히 협박까지 하더라고.
귀여워서 봐줬다, 진짜.”
잠시 뒤, 전송받은 사진을 보고 나는 빵 터지고 말았다.
여전히 깡마른 몸에 헐렁한 제복을 걸치고,
머리에는 제 몸보다 커 보이는 모자를 쓴 채
어색하게 웃고 있는 호장이.
야무진 멋은 없었지만, 이제 막 자기 자리를 찾아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아이가 대견했다.
전호장.
너는 여전히
네 방식대로 크고 있구나.
한참을 그렇게 사진을 들여다보다 조용히 화면을 껐다.
아마도 나는 앞으로도 계속 교실 속 또 다른 호장이 들을 외면하지 못하겠지.
아무래도 내 고약한 취향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뭐, 별수 있나.
웃고 있는 사진 속 아이를 다시 보니
굳이 고쳐야 할 일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