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인문학] ‘옥’을 캐는 일

내 옥은 내가 캡니다

by 모간

다 큰 어른인 파라솔과 나는 중지 앞에 나란히 소환되었다. 파라솔의 인사이동과 관련한 고민이었는데, 어른 둘이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통에 결국 중지라는 법정 앞에 섰다. 일단 가볍게 시작했다.


<1라운드> 아빠와 엄마는 언제 가장 행복해 보일까?


중지는 말했다. 아빠가 가장 행복해 보일 때는 첫째 집에서 빨간 술(와인 또는 복분자) 마실 때, 둘째 가족여행 갔을 때, 셋째 잠잘 때(밤새도록 쩝쩝거리며 뭘 먹는다고 함)라고. 이어서 엄마가 가장 행복해 보일 때는 첫째 애지중지가 해주는 이야기를 들을 때, 둘째 책 읽고 책 쓸 때, 셋째 고된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라고 했다. 파라솔은 발끈했다. 자신이 행복할 때와 엄마가 행복할 때가 극명하게 달라서 실망했다는 투였다. 그러자, 중지는 '아빠가 우리한테 보여줬잖아요.'라고 응수한다. 파라솔 1패.


<2라운드> 아빠가 생각하는 그 '옥'은 대체 뭘까요?


재작년, 시동생 결혼 궁합을 보기 위해 방문한 철학관에서 파라솔의 한 해 사주도 보았다. '돌을 깨서 옥을 캐는 사주이니, 힘들어도 참고 끝까지 인내하면서 성취해라. 돌을 깨는 게 말처럼 쉽지 않지만, 결국 옥을 손에 넣게 되니 참을 가치가 있다.'라고 일러주셨다. 운명의 장난일까? 파라솔은 정말 1년 내내 돌을 깼다. 다행인 건, 파라솔이 무너지고 힘들어할 때마다 '옥, 옥, 옥을 캔다잖아'하면서 실체 없는 희망고문이 가능했다는 것. 하지만 옥구슬 노래도 한두 번, 온 가족이 하루 걸러 하루 돌가루를 진탕 들이마시고 캑캑거렸다. 그 과정을 오롯이 목격한, 그리고 간접경험한 중지는 파라솔을 향해 날카로운 질문을 날렸다. 아빠가 생각하는 그 '옥'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어른 둘은 막연히 승진? 인맥? 인정? 성공? 그런 것들 아닌가, 생각했다.


중지 : 아빠. 그 옥은 '깨달음'이에요. 봐봐요. 옥을 얻는다고 하니까 말로는 엄청 큰 걸 얻을 것 같은데 만만하게 보다가 결국 큰코다쳤잖아요. 아빠는 '옥'을 얻는다는 게 엄청 힘들다는 걸 깨달은 거야. 그렇다면 이미 아빠는 '옥'을 캔 거야. 아빠가 그 '옥'을 캐려고 얼마나 힘들었어요? 매일 술 마시면서 '옥'을 캤잖아요?


파라솔 : 아빠가 이미 '옥'을 캤으니까 그러면 이제 나와도 되나? 결심하고 나와?


중지 : 그런데, 중요한 건 그 돌 안에 '옥'이 하나만 있을까요? 아니, 그 옆에 다른 '옥'이 하나 더 있어. 근데 그 두 번째 '옥'은 뭘까요?


파라솔 : 모르겠는데. 뭘까?


중지: 아빠, 그 '옥'은 캐봐야 뭐가 들어있는지 알 수 있어. 아빠가 원하는 게 들어 있는 게 아니고, 싫어하는 게 들어 있을 수도 있어요. 왜냐면 그 '옥'은 자기가 태어나서 자기가 살면서 만들어낸 것이 들어있거든요. 그런데 보물이 아니라, 나쁜 것이 들어 있어도 괜찮아요. 그 나쁜 옥을 캐서 깨고 뚫어내면 더 멋진 사람으로 태어나니까.


파라솔 : 그래서 말인데, 아빠의 또 다른 '옥'은 뭘까?


중지 : 아빠, 자기 머리를 자기가 조정해 봐요. 음... 내 머릿속에서 들었는데, 나머지 '옥'은 자신감 같아. 아빠가 힘들지만 아직 캐지 않은 옥, 그러니까 자신감을 캐서 나와야 돼요. 아빠는 지금 자신감이 없어. 아빠가 있는 곳이 난이도가 제일 어렵잖아. 멋지게 겪고, 깨부수어요. 그래서 깨달음과 자신감, 두 옥을 다 캐면 성취감을 얻을 거야. 그러면 쭈그러드는 게 아니라, 어깨 펴고 당당하게 나올 수 있는 거죠.


파라솔 : 그래서 말인데, 그러면 더 버텨? 나머지 하나를 더 캐고 나와? (점점점) 파라솔 2패


<3라운드> 아빠가 어렵게 캔 '옥'을 너에게 줄게

중지의 판결 앞에서 넋을 잃었다. 두 어른의 일상과 대화를 깊이 관찰하고, 방황하고 무너지는 모습, 울고 웃으며 일어서는 순간순간을 함께한 중지의 진단과 처방은 완벽해서 두렵기까지 했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도끼 같은 울림을 얻으려고, 갓 11살 중지 앞에 자진출석한 것이 아니었나?


파라솔 : 아빠가 학교폭력, 가정폭력도 아닌, 회사폭력을 1년 동안 당했는데 어쨌든 어렵게 경험해서 옥을 캤으니까 우리 딸들은 아빠처럼 살지 않도록 그 '옥'을 나눠줄게.


중지 : 아니, 괜찮아요. 아빠가 캔 옥은 줘도 안 받아요. 내 옥은 내가 직접 캘 거야. 만약에 아빠가 준 옥을 쉽게 받기만 하면 내가 고통스러운 삶을 맞이할 때 어떻게 해결해요? 옥 캐는 방법도 모르면서 스스로 이겨낼 수가 없잖아요. 나는 나대로, 언니는 언니대로, 스스로 옥을 캐서 성취감을 얻어야 돼요.


파라솔 : 넌 어떻게 그렇게 완벽하게 말하냐? 엄마한테 배운 건가?


중지 : 내 삶의 방식은 이렇게 갈 거예요. (점점점) 파라솔 3패




파라솔은 다음날 아침 눈뜨자마자 결의에 찬 목소리로 내 귀에 속삭였다. '어떤 선택을 하든,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할게요.’ 밤새 자신만이 가진 '옥'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선택 후에 뒤따르는 그 어떤 삶도 감당할 용기가 조금 생긴 모양이었다. 어쩌면 이 작은 용기가, 이 마음먹기가, 진짜 '옥'인가? (점점점) 파라솔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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