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 지옥을 탈출한 여자
“근데 저... 사랑에 빠진 것 같아요.”
사랑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여러 번의 소개팅을 통해 난 무너졌다. 비록 나를 강하게 밀쳐낸 사람은 없었지만. 은근히 결혼에 실패한 사람이라는 시선과. 왜 이혼했는지 문제점을 명확하게 찾아내려는 집요함이. 내 심장을 한 번 더 무너뜨렸다.
새로운 사랑은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괜찮다. 매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지옥 속에서 탈출한 것만으로도 내 인생은 선방했다. 가슴 따뜻한 로맨스를 바라지 않아도 될 만큼. 인생이 편안하고 아름답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남자가. 나보다 4살이나 많은 저 사람이. 웃을 때마다 처지는 눈꼬리와 함께 따뜻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사랑에 빠진 것 같다고 고백하고 있다. 감동보다는.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중고 거래였다. 집을 이사하면서 오래된 책들을 팔기 위해 그와 연락하게 됐다. 머리를 안 감아서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후줄근한 추리닝 바지를 입고 나갔다. 네고 없는 쿨 거래를 마치고. 난 그와 영원히 안 볼 줄 알았다.
하지만 책 속에 숨겨놓은 돈을 안 뺐다는걸. 미처 몰랐다. 이건 어릴 때부터 내 습관이었다. 현금이 생기면 책 속에 넣어놓고 보관하곤 했다. 스마트폰으로 온라인 뱅킹을 하면서도. 현금이 필요할 때마다 책에서 하나씩 쏙쏙 빼서 쓰는 재미가 있었다.
포근한 함박눈이 내리는 어느 날 밤.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책 읽다가 돈을 발견해서요. 다 찾아 보니까...11만원인데 돌려드리는 게 맞는 것 같아서 연락드렸어요.”
문자를 보는 순간 아차 싶었다. 어쩐지 현금이 요즘 안 보인다고 했는데. 중고 거래한 책 속에 몰아넣은 거였다. 문자를 보는 순간. 치밀하지 못한 스스로가 너무 한심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보통 그런 상황이면. 모른 척 가질 수도 있을 텐데. 금액까지 정확히 얘기하면서 돌려준다고 하는 게. 신기했다. 엄청 양심적인 사람이구나.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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