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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한울 Jul 10. 2019

퇴사 후 유럽 - 이탈리아 피렌체에서(2)

2018.05.09

낭만이 가득한 도시일 것 같았던 피렌체는 정말 말 그대로였다. 하지만 아름다운 도시이기에 당연히 관광객들도 연중 문전성시인 이 곳의 정신없고 복잡함이 나에게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지쳐 잠시 긴장을 놓았던 것일까 넋이 나가 두오모를 구경하다가 그 많은 인파 속에서 그림을 바닥에 널어놓고 파는 상인에게 그림을 강매당할 뻔했다. 처음에는 그림을 밟을 뻔한 나에게 주의를 주는 듯했으나, 어느새 내 뒤를 따라와서 그림을 밟았으니 사야 된다고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여러 장 컬러 복사된 것처럼 보이는 그 그림의 가장자리 여백에 희미하게 신발 자국이 나 있었다. 그림이 망가진 것도 아니고, 신발 자국이 지워지지 않는 것도 아닌데 막무가내로 사야 된다고 말하는 그 상인의 속셈이 눈에 보여 어이가 없었지만 너무 무섭기도 했다. 계속 'NO'만 외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왠지 나에게 해코지할 것 같은 무서운 표정을 보였던 그 상인은 결국 포기하고 나를 떠났지만 온 몸이 떨릴 만큼 놀라서 그 날 하루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이 피렌체에서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또 언제 이 곳에 와보겠냐는 생각이 들면서 가까운 근교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렇게 떠난 '시에나'에서는 좀 더 호젓한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지만 그곳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도시를 한 바퀴 둘러보는 동안 사람 구경을 더 많이 한 것 같아 더 머물지 않고 다시 피렌체로 돌아왔다.


사실 이탈리아 여행을 기대했었는데, 직접 와 보니 그 매력은 알겠으나 나처럼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한다면 주요 관광도시는 과감히 생략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30대가 되니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파리에서부터 (스위스를 제외하고) 늘 많은 사람들과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의 분위기에 쫓기듯 여행을 하다 보니 만약 다시 유럽을 오게 된다면 파리와 이탈리아는 다시 오고 싶지 않았다.


아직 로마, 베네치아 등 이탈리아 주요 관광지를 거치는 여행이 남았는데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이탈리아 일정이 빨리 지나가고 동유럽 여행이 시작됐으면 좋겠다. 한편으로는 내가 조금 지친 것인지, 긴 여행 중 '외로움' 때문에 힘든 것인지도 생각해 봤다. 혼자서도 충분히 괜찮고 즐거운 여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속 마음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하지만 나를 위한 이기적인 만남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 내가 필요한 그 순간만 사람을 찾는다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는 나를 위해서도, 타인을 위해서도 최대한 관계를 만들지 않기로 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나에게 나에게 '맞는' 사람을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과거의 관계에 대한 상처들에 갇혀 있다고도 한다. 그 말이 틀리다고 하지는 못하지만, 이제는 나 스스로도 내가 이렇게 된 이유를 명확하게는 모르겠다. 그저 혼자인 게 편한 것뿐이다.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해가 지는 피렌체의 모습을 바라보며 마지막 밤을 마무리한다. 이 도시는 이렇게 멀찍이 떨어져서 고요하게 바라볼 때가 나에게는 가장 멋있고, 아름답고, 낭만적인 것 같다. 하지만 다시 온다면 글쎄.. 좀 더 조용한 곳을 가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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