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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한울 Aug 15. 2019

퇴사 후 유럽 -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2018.05.31

40일이 어떻게 지났는지 벌써 아득하다. 그동안 유럽에서 있었던 일들이 현실이었는지, 내가 정말 그곳에 있었는지 믿기지 않은 마음에 사진만 계속 바라보게 된다. 사진 속 멈춰진 시간 안에 있는 내가 생소하게 느껴지며 아쉬운 마음이 한없이 밀려온다.


경제적인 결핍과 불안 속에서 직장을 그만두고 유럽으로 떠나온 것은 내 인생에서 엄청난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생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행 기간 내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무엇인가'를 만나게 되는 것을 꿈꿨지만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연속으로 여행은 끝이 났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과 후를 완전하게 '같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여행이 내게 남긴 건, 현실에 매몰되어 돌아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발견'이었다. 가장 큰 발견은 '나'였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고려되지 않았던 '나'를 찾아내서 처음으로 아끼고 사랑해 주며 40일을 보냈다. 내가 '나'를 온전히 마주하고 충분히 돌본 그 시간은 주변의 '내 사람들'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생각나게 해 주었다. 외롭다고 생각했던 그 모든 순간에도 나를 바라봐주고 지켜주었던 사람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알고 이해해주는 사람들의 얼굴 하나하나가 떠오르자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서 이 마음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에 감정이 벅차올랐다. 드라마틱한 인생의 전환점은 아니었을지라도, 인생의 소중한 '발견'을 할 수 있었던 이번 여행은 앞으로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돌아가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막막해지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늘 그래 왔듯이 첫 발을 내딛으면 그다음 발을 내딛게 된다. 그 걸음이 어느 곳을 향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원하는 곳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해서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다음 걸음은 내가 원하는 곳으로 방향을 바꿔 다시 시작하면 되는 일이다. 누구나 그렇게 살듯, 나에게도 당연하게 주어지는 그 과정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이다.


당장 1분 후, 아니 1초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도 없는데 다가오지 않은 먼 미래의 일까지 걱정하며 그 모든 가능성을 통제하기 위해 내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지 않겠다. 대신 힘든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내'가 쉬어갈 수 있는 마음의 안전 기지를 많이 만들어두겠다. 매번 장기 여행을 오기는 현실적으로 힘들 테니 말이다.


그렇게 다시 살아보기로 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당연하고 나의 이런 깨달음이 별다를 게 없는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나에게 필요한 진리였다고 생각한다. 늘 주저하기만 했는데 처음으로 당당하게 출발선에 선 기분이다. 골인지점에 대한 기대보다는 내가 어떤 모습으로 달릴지, 그 느낌은 어떨지,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달릴 수 있을지 그 과정이 처음으로 궁금해졌다. 


비행기 창문 너머로 한국이 보였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처음 도착했을 때처럼 설렘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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