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한울 Aug 12. 2019

퇴사 후 유럽 -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서 (3)

2018.05.29

이번 여행의 마지막 숙소에 체크인했다. 발코니에서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와 바다 전망을 볼 수 있는 숙소였다. 부족한 경비에서 무리하게 지출한 숙박비였지만 '마지막'이라는데 의의를 두고 큰 맘먹고 결제했다. 고요한 풍경을 한없이 바라만 보고 있는 것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남은 일정을 숙소에서만 보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여기서 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매일 이런 풍경을 보면서 잠이 들고,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보면 삶의 가치, 우선순위라는 건 대단한 게 아니다. 나에게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과 이렇게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욕구가 충만해져 행복이 극에 달할 때면 부모님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한창 일할 나이에 아무런 계획 없이 일을 그만두고 유럽 여행을 하고 있는 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지... 한국에서 생계를 위해 힘들게 일하고 있을 부모님의 모습과 지금 내 모습이 상충하며 30대의 내가 정말 철없이 느껴졌다. 이런 생각까지 미치니 갑자기 마음이 갑갑해지고 머리가 아파왔다. 방금 전 행복했던 기분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성장과정에서 일찍 철든 덕분에 우리 집이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다는 것을 빨리 깨달았다. 꽤 어린 나이부터 나는 내가 하고 싶거나 갖고 싶은 것을 부모님께 요구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그것을 해 줄 능력이 부모에게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부모님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정말 노력하며 살아왔다. 사교육 한 번을 받은 적이 없고, 필요에 의해 다니게 됐어도 학원비 생각에 마음이 불편해서 여러 가지 이유로 학원을 다니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중학교 때부터는 장학금이나 급식비를 면제해 주는 제도가 있었는데 담임선생님과 상담 때 항상 집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해서 지원을 받기도 했다. 대학교 진학도 등록금이나 학비가 싼 곳이 아니면 합격을 해도 가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대학교 때도 항상 아르바이트를 했고, 구직도 서둘렀다. 빨리 부모에게 독립해서 스스로의 생계를 책임져 조금의 경제적인 부담도 느끼게 해 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왔는데도, 난 여전히 알 수 없는 채무의식이 부모님에게 있다. 유럽여행을 하면서 '정말 좋다'라고 생각한 곳에서는 항상 부모님 생각이 났다. 동시에 부모님께 경제적으로 독립은 했지만, 유럽여행을 함께 올만큼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정말 좋다'라는 생각 때문인지 부모님 생각이 나서 마음이 조금 복잡해졌다.


나와 부모님의 관계를 생각하면, 결혼을 하는 것도 아이를 낳는 것도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돈을 얼마를 벌든 계속 일할 수만 있다면 혼자 살아가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나 이외에 신경 써야 할 다른 사람이 생긴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일반적인 타인이 아니라 '가족'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나는 내 욕구도 중요한 사람이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욕구도 정말이지 무시할 수 없다. 능력이 있다면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 삶의 방식을 '가족'을 위한 방향으로 수정해야 한다. 가끔은 싫어도 참고 해야 할 일이 생기며,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참고 노력하며 사는 것에 자신이 없다. 참고 노력해왔던 건 지금까지도 얼마든지 해왔다. '나'는 없고 타인만 있었던 삶에서 스스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알기 때문에 다시 나를 잃을까 봐 두렵다.


아름다운 풍경을 두고 끝이 없는 생각들로 마음과 머리가 무거워졌다. 뜨거운 열기도 느껴져 숙소에 에어컨을 틀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나'를 지키면서도 내 가족도 위할 수 있는 방법을 언젠가는 찾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눈물이 조금 흘렀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우울한 기분을 털어버리기 위해 밖으로 향했다.

작가의 이전글 퇴사 후 유럽 -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서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