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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한울 Aug 09. 2019

퇴사 후 유럽 -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서 (2)

2018.05.28

오랜만에 여유를 부리며 푹 잤다. 더 이상 이동할 나라도, 도시도 없다는 것은 여행의 끝을 대신 말해주고 있어 아쉬운 마음이 크지만 대신 두브로브니크라는 도시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호스텔이 구시가지 메인 도로에서 계단으로 올라오면 거의 꼭대기에 있는 위치라 전망은 좋았지만 아침을 사들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먼 곳이어서 등대가 있던 해안가를 다시 찾았다.


아침부터 밝은 태양이 내리쬐는 바다는 어제저녁에 봤던 것과는 달리 눈부시게 파란빛이었다. 그저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며 샌드위치를 천천히 씹어 삼켰다. 파도소리가 들리고, 이따금씩 사람들이 오고 가는 소리, 뜻을 알 수 없는 외국어가 들려왔지만 어느 것 하나 튀지 않고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묘하게 풍경과 어울렸다. 샌드위치 하나를 다 먹을 때까지 바다에서 오전 시간을 보내고 다시 숙소에 돌아왔다.

여행 시작 전 고민하다 한 권의 책을 들고 왔다. 여행을 한 지 한 달이 넘어가는데 아직도 책을 다 읽지 못해서 숙소 테라스에 나와 남은 분량을 마저 읽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 무사히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다시 멍하니 주황색 벽돌 지붕의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를 바라보았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로움이었다.


내가 이 여행을 떠나오게 된 것은 결국 나를 돌보지 않았던 시간에 대한 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 매몰되었을 때는 몰랐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심하게 스스로를 옥죄고 있었다는 걸 깨달으며 그 모든 잘못을 타인에게 덮어 씌우려 했던 어리석음을 반성했다. 돌이켜보면 '나를 위한다는 것'에 어떤 거부감이 있었던 것 같다. 일이 우선이고 모든 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나를 위한다는 것'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이기적인 태도'라 생각했고,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한다는 것은 때론 피곤하고 힘든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 '나를 위하는 것'과 '이기적인 것'은 다른 차원의 것이었는데 내가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고 둘 다 부정적인 범주에 넣고 생각해 버린 탓도 있는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가 전혀 손해보지 않고 살 수는 없다. 다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이라면 그 방법이 싫어도 때로는 감수하고 배려할 줄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내 모든 권리가 다수를 위해 희생되거나 포기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아무리 모두를 위한 결정이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나'를 지키는 안전지대는 확보해야 한다. 그때 나는 이 부분을 간과했다. 


책 제목처럼 '지금 알고 있었던 걸 그때 알았더라면' 탄식하게 되지만, 이 또한 내 인생이며 삶을 깨달아 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덕분에 나는 유럽에 왔고 정말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며 스스로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뜨거운 오후의 더위 속에서 두브로브니크 성벽을 걸으면서도 해실 해실 웃음이 새어 나오고, 걸을 때마다 조금씩 바뀌는 풍경을 놓칠세라 눈과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온몸은 땀범벅이 되고 햇빛에 노출된 피부는 갈색으로 그을렸지만 그저 좋았다. 얼마나 좋았는지 하루 종일 광대가 아플 만큼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많이 웃을 수 있고, 사소한 것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인지 몰랐었는데 이제 알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나를 더욱 아끼고 즐겁게 살 수 있는지.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아껴 본 적이 없는 '나'를 처음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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