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호주로 갈까
브리즈번에 온 지 열흘이 지났다. 바짝 깎고 온 손톱이 자랄 만큼의 시간이다. 이곳에서의 열흘 중 일주일은 비가 내렸다. 종일 화창했던 날을 꼽자면 오늘이 겨우 세 번째다. 뜨거운 햇살 아래 널어 둔 빨래를 저녁엔 비 맞추지 않기 서둘러 걷는다. 호주는 비가 오면 꼭 천둥과 번개가 함께한다. 정확히 ‘브이’자를 그리며 무시무시한 소리를 낸다.
지금 머무는 곳은 오스테일리안 조지와 이탈리안 린다가 호스트로 있는 집이다. 린다는 임신 중이지만 눈코 틀 새 없이 바쁘다. “오늘이 특별히 바쁜 날이야”라고 말하지만 우리가 본 그녀는 언제나 청소를 하거나 일을 보거나, 혹은 요가를 배우러 간다.
남편 조지는 화가로 집 앞 화방에서 작업을 한다. 두 사람은 매일 함께 저녁을 먹으며 아무리 늦어도 먼저 먹는 법이 없다. 조지는 늘 새로운 요리를 선보인다. 어느 날은 자신이 직접 담긴 김치를 내게 소개해줬다. 배추 대신 양배추를, 고춧가루 대신 토마토를 넣은 김치라며 언젠가 트라이해 보라고 했다. 조지 고맙지만, 우린 그걸 김치라 부르진 않아.
이 집에는 키키도 함께 산다. 키키는 린다의 고양이로 일명 개냥이다. 처음 본 나에게도 머리를 내밀고 몸을 부볐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이 궁금했던 내게 정말 반가운 일이다. 키키는 낮엔 밖에서 자유롭게 놀고,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와 캥거루 고기를 먹는다. 그리고 침대로 올라와 정신없이 잠든다. 나는 집을 드나들며, 아니 화장실과 부엌을 오갈 때마다 키키를 쓰다듬는다. 그야말로 ‘고양이 있는 삶’의 기쁨을 만끽하는 중이다.
집은 예술가의 거처답게 잘 꾸며져 있다. 거실엔 기 센 그림들이 시선을 붙잡는데 모두 조지의 작품이다. 그림들은 썩 내 취향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식탁 맞은편에 걸린 대변이 묻은 휴지 그림이다. 하지만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이다.
린다가 우리에게도 집 열쇠를 줬지만, 사실상 필요가 없다. 대문은 항상 열려 있으니. 난 브리즈번에 온 이후로 한 번도 방충망을 본 적이 없다. 그래도 파리와 개미를 제외하면 벌레가 거의 없다.
우리가 머무는 방은 특색 있지만 과하지 않다. 마치 몇 편 보지 않은 로맨틱 영화 속 이십대 소녀의 방 같다. 다만 수납공간이 없어 마구잡이로 펼쳐진 캐리어 덕분에 이제 그 감성은 사라졌다. 또 한 가지 특색이 있다면 천장이 매우 높고 조명은 어둡다는 점이다. 늘 형광등 아래 살아온 우리에게는 낯선 밝기다. 불을 끄면 어릴 적 시골에서처럼 깜깜하다. 그 어둠 속에서 나는 종종 깊은 잠 대신 생각에 잠긴다.
나는 한국에서 작은 매체의 에디터로 3년간 일했다. 종종 인터뷰를 나가곤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노트북 앞에서 보냈다. 워드와 파워포인트,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가 익숙한 사람이란 뜻이다. 누구나 자기 분야에서 3년이 지나면 익숙함이 찾아온다. 완벽한 전문가가 된 것도 아닌데 스스로 ‘주니어’ 딱지를 떼고 ‘경력자’가 된다. 나 역시 3년이 가까워질 무렵엔 완벽한 컴포트존에 들어간 듯했다.
호주에 와서는 이 모든 걸 내려놓고 서비스직에 뛰어든다. 대학생 때 마트 캐셔로, 디저트 카페에서 일했던 아르바이트생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이게 대수일까. 같은 일이라도 다른 나라에서 다른 언어로 일한다면 분명 새로운 즐거움이 있지 않을까. 하고 오만한 생각을 했다.
심지어 이 글을 쓰는 시점엔 나는 아직 일을 시작하지도 않았다. 고작 1시간짜리 트라이얼*을 하고 현타가 왔다. 외노자의 삶으로 돌아간다는 건 이런 거구나.
그리고 호주에 도착한 이후로 여전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의문이 있다. 대체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호주에 오는 걸까?
시급이 높아서? 이 곳의 물가를 생각하면 한국과 큰 차이가 없다. 날씨가 좋아서? 앞에서도 말했듯, 절대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이 질문에 답을 찾는 것이 이곳에서의 첫 번째 과제다.
*호주에선 직원을 채용하기 전에 1~2시간 정도 일을 시켜보고, 정식 채용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