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포트존을 벗어난 29살 워홀러에게 생긴 일(2)

외노자로 살아남기

by 기차타는 삐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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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반. 알람이 울리기 15분 전 눈이 떠진다. 양치를 하고 어둠 속에서 빠르게 옷을 갈아입는다. 나보다 일찍 일어난 키키만이 나를 배웅해 준다. 출근 시간은 6시. 버스를 탈 수도 있지만 언제 지연될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며 스트레스받을 바에야 걷는 걸 택했다. 그렇게 약 50분을 걸으면 내가 일하는 한인 카페가 나온다.


분명 호주에 있지만 모두가 한국인인 카페. 캐쥬얼로 딱 3시간을 일한다. 난 올라운더로 채용됐지만, 일하는 시간 내내 주방 밖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커피 근처에도 가본 적 없단 소리다. 출근 이틀 차에 내가 하는 일은 이렇다. 먼저 머핀을 굽는다. 밀가루, 기름, 우유, 계란물, 설탕을 넣어 반죽을 만들고 빵 틀에 넣는다. 중간 중간 초코칩과 블루베리, 라즈베리 등을 함께 넣고 위에도 군데군데 올려주면 된다. 또 이후 베이컨을 굽고, 토마토를 반으로 가르고 올리브를 자르는 등 끝없는 재료 손질이 이어진다. 다음엔 샌드위치와 랩을 만든다. 영어는 물론이고 한국말도 몇 마디 하지 않는다. 시간은 곧 돈이기 때문에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난 출근 이틀 차에 “이렇게 느리면 고용한 의미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호주의 시급이 왜 높은지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이번주 내내 많은 카페에 레쥬메를 돌리고 다녔다. I was wondering. if you guys are hiring at the moment. 처음엔 채용하지 않은 곳에도 일단 레쥬메를 줬는데, 다음부턴 내 레쥬메가 아까워서 Have a nice day! 하고 발걸음을 돌렸다(레쥬메 한 장 당 500원의 인쇄 비용이 든다). 대부분은 채용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언젠가 연락을 준다는 곳은 연락 한 통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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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력. 호주에서의 3주차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거다. 나름 29년 동안 열심히 꾸린 삶이지만, 말이 안 통하는 낯선 땅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나는 돈 주고 부릴 어떠한 이유도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걸 자각하는 순간 극도의 우울감이 찾아왔다. 오직 내 몸뚱이 하나로 부딪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호주에 오지 않았으면 생각해보지 않았을 부분이다.


한국에서의 취업 고민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될까’ 하는데 집중돼 있었다. 전공을 살리지 못한다거나, 내가 가진 것들을 활용하지 못하고 전혀 상관 없는 일을 하게 될까 하는 생각들.


호주에서의 취업 고민은 그저 나를 써주기만 한다면...까지 뻗어 있다. 처음엔 한인 잡은 일이 정말 안구해지더라도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정당한 시급을 주지 않는 오지잡은 쳐다도 보지 않을 생각이었고. 하지만 지금은 그저 나를 써줄 수 있는 오지잡이라면 일단 킵고잉이다. 일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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