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와 '땡큐'의 에너지를 따라
큰 건물이 즐비하고 많은 프렌차이즈가 모여 있는 브리즈번 시티. 시티를 중심으로 1존, 2존, 3존이 형성돼 있는데 그중 1존은 시티와 거의 유사한 모습이다. 북적임은 조금 덜하지만 마트나 식당이 충분하고 교통도 나쁘지 않다. 내가 살고 있는 West end 역시 시티까지 걸어갈 수 있는 1존이다.
이곳은 새벽부터 문을 여는 힙한 카페와 빈티지 가게가 골목마다 늘어서 있다. 호주 대표 마트인 울월스와 콜스가 마주 보고 있으며, 동네 맛집도 상당하다. 클라이밍, 복싱, 농구, 수영 등을 즐길 수 있는 운동 시설도 가득하다. 흑인 무리가 진을 치고 침을 뱉어대는 한 골목을 제외하면 치안도 괜찮다.
이곳에서 특히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 Davis Park다. 끝없이 펼쳐진 강물을 따라 나무가 만들어낸 그늘을 달리 때면, 내가 꿈꾸던 호주에 가까워진다.
월요일 아침 6시에도 러닝을 하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로 공원은 활기차다. 강에는 조정을 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는데 열 발을 맞춰가며 속도를 낸다.
나는 짧은 러닝을 마친 후, 작은 돌을 쌓아 만든 강둑에 부딪히는 잔 파도와 하나의 결로 흩어지는 새털 구름을 한참 바라본다. 잠결에 듣기 싫었던 새소리마저 조화를 이룬다. 이렇게 좋아하는 공원 하나쯤 생겨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호주의 배려 문화도 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다. 특히 버스에서 잘 느껴진다. 멀리서 뛰어오는 누군가를 기꺼이 기다려주는 버스 기사, “땡큐”라고 말하는 승객에게 눈웃음을 지어주는 모습, 가방만 스쳐도 “쏘리”라고 말해주는 사람들, 천천히 내리는 손님 한 명까지도 모두 기다려주는 태도, 그리고 내리기 전에 다시 “땡큐”라고 말하는 습관까지. 호주에서의 쏘리와 땡큐는 ‘How are you?’ 만큼이나 흔하다.
한 번은 지체 장애인과 보호자, 그리고 내가 정류장에 서 있던 적이 있다. 버스가 도착했고 문이 열리자 나는 먼저 타라고 손짓했지만 보호자는 내게 먼저 타라고 권유했다. 내가 버스에 올라타자 정말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버스 기사가 버스에서 내려 휠체어를 직접 끌어 올려줬고, 버스에 타 있던 승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어나 휠체어가 들어올 길을 터주고 공간을 만들어줬다. 그리고 휠체어가 버스에 올라타자 그 장애인 승객에게 인사하며 말을 걸어줬다.
주책맞게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늘 시간에 쫒기느라 기다림이 익숙하지 않은 한국 사람들에게 이런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서울에 3년을 살며 매일 버스와 지하철을 탔지만 누군가를 기다려주는 모습은 손에 꼽혔다. 나와 출근 시간이 겹치던 시각 장애인 분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점자블럭을 다 밟고 있어서 허둥대는 모습도 여러 번 봤다. 그때 일부러 점자블럭 쪽으로 걸어가며 길을 터줬지만, 나 혼자 해보려 해도 무리였다. 그때도 생각했다. 한국은 약자들이 살기 정말 어려운 곳이라고.
전체적인 호주에서의 삶은 그리 재밌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하지만 이렇듯 소소하게 파고드는 순간들이 나를 계속 살아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