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은 우울하고 반은 사랑스러운 호주의 날들
나는 어떤 사람이었더라. Cafe allounder를 구하는 채용 공고를 챗GPT에 통째로 붙여 넣고 나는 생각했다. 영어는 잘하고 싶지만 한 페이지의 영문 공고도 해석할 의지가 없는 사람. 기껏 3년 다닌 회사를 정리하고 호주까지 왔으면서도 한 달 만에 조기 귀국을 고민하는 사람.
호주 워홀을 떠나던 날, 아빠는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버스 정류장까지 나를 데려다줬다. “아빠는 아직도 모르겠다. 왜 너가 사서 고생을 하려는지.” 걱정 섞인 말에 나는 웃으면 답했다.“아빠, 난 이걸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냥 재밌는 경험이 될 거야.” 그 말에 아빠는 “그런 마인드 너무 좋다”며 안심했다.
무엇이든 쉽게 질리는 사람. 그 말은 늘 나를 새로운 도전으로 몰아 넣었다. 말이 좋아 도전이고 경험이지, 아빠 말대로 사서 고생길을 자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호주에 온 지 한 달. 여전히 안정적인 잡을 구하지 못했고, 브리즈번에 정 붙이지도 못했다. 삶은 결국 버텨낸 날들로 이뤄진다는데, 그렇다면 지금의 선택이 언젠가 ‘맞았다’고 말할 날이 올까.
난생처음 해보는 주방일로 내 손은 성할 틈이 없다. 닭을 손질하다 벤 검지, 껍질이 벗겨져 하얘진 약지. 잔뜩 갈라진 손끝. 그리고 젤라또 샵에서 일한지 며칠 만에 시큰거리는 손목을 얻었다. 작년 여름만 해도 장시간 노트북을 쓰면 손목터널증후군에 걸릴까 마우스를 바꿨던 나인데. 육체노동의 무자비한 솔직함을 이렇게 배우고 있다.
그래도 이 시간 동안 나는 한국에서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바로 사서가 되는 일이다. 전부터 고민하던 일이었지만, 학위를 취득하기까지 1년이 넘게 투자할 자신이 없어 관둔 일이었다. 그런데 호주에 오고 마음의 변화가 생겼다. 일종의 개심이었다. 더 이상 걸리는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에 기꺼이 발을 들여놓는 일. 시간이 지난 후 “그때 해볼걸” 대신 “해봤지”라고 말할 수 있는 선택을 늘리고 싶어졌다.
당장 학점은행제로 문헌정보학 학위 취득 과정을 알아보고, 몇 과목을 등록했다. 내게 세 번째 전공이 생기는 셈이다. 동시에 예전에 다시던 회사와 프리랜서 계약도 맺었다. 페이는 많지 않지만, 호주에서도 글을 놓지 않을 충분한 동기가 될 터.
결국 호주에서도 한국의 끈에 기대어 산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 한 달간 일한 카페로부터 “당분간 쉬프트를 줄 수 없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카페 사정 때문이라지만 사실상 해고 통보나 다름없다. 하지만 애초에 호주에 온 목적 중 하나는 한국에서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기 위함이었으니, 이렇게 굴러가는 삶도 난 보치보치의 일부라고 생각하련다. 반은 우울하고, 반은 사랑스러운 호주의 날들을 난 이렇게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