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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지기 May 25. 2023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났다.

심리상담은 처음입니다만

"이번 한 주도 잘 지내셨나요?"

"네~ 목구멍 포도청에 열심히 출퇴근했습니다"

"아.. 마음지기님은 경찰이 꿈은 아니셨나 봐요?"

"아주 어릴 적에 잠깐 꿈이었던 적은 있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경찰이 되셨어요?"

"엄마가 저 어렸을 때부터 많이 아프셨거든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너 초등학교 입학하는 것만 보고 죽어도 소원이 없겠다'며 눈물을 흘리셨어요. 초중고 입학이나 졸업 전이면 늘 비슷한 얘길 하며 우셨. 그런 엄마가 너무 불쌍했고요. 대학 졸업 후 진로이야기를 나누는데 영어를 좋아하는 전 워킹홀리데이를 가고 싶어 했고 부모님은 경제적 지원을 해 줄 수 없다고 반대하셨어요. 다만 제게 2년이란 시간 주면 가서 경험해보고 뭘 할지 결정하겠다, 그때 만약 하고 싶은 일이 없다면 엄마 소원대로 경찰시험을 보겠다고 했더니 갔다 와서 시험을 볼 거라면 왜 시간을 낭비하냐는 거예요. 할 수 없이 죽도록 시험공부를 해서 합격했는데... 어쩌다 보니 아직까지 억지춘향으로 이렇게 다니고 있네요."

"그러셨군요... 직업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선택 중 하나인데 그걸 본인이 못하셨네요. 지난번 상담 때 결혼과 아이를 낳는 것도 뜻대로 못하셨다고 들었는데."

"그랬죠. 상담사님 말씀을 듣고 보니 제 인생인데 제 뜻대로 살고 있는 건 아니었네요.."

"오늘은 어렸을 때로 한번 돌아가볼 건데요. 어머니를 떠올리면 어떤 장면이 떠올라요?"

"음.... 엄마가 아프셨다 보니까 방 한쪽 이부자리에 힘 없이 누워있는 모습이요."

"그럼 그 장면으로 한번 돌아가볼까요? 의자에 기대어서 편안하게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워있다고 생각하세요....."

상담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어린 시절 엄마가 누워있는 장면에 도착했다.


엄마는 기운 없이 누워있고, 그 옆에는 엄마가 죽을까 봐 잔뜩 겁을 먹은 어린 내가 무릎을 꿇고 울음을 참고 있다.

그날은 엄마가 산부인과에 다녀온 날이었다.

아픈 엄마가 임신한 아이를 낳을 수 없어 임신중절수술을 하고 왔다며, 기운 없는 엄마를 쉬게 해달라고 얘기하고선 파리한 얼굴로 잠이 든 엄마를 불안한 마음에 지켜보고 있는 나.

"바라보고 있는 아이의 마음은 어떤가요?"

"무섭고 걱정돼요. 엄마가 죽을 것 같아서요. 엄마가 죽으면 제가 엄마 대신이라고 아빠도 잘 챙겨주고 동생도 잘 돌봐주랬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너무 무서워요. 차라리 엄마 대신 제가 죽었으면 좋겠어요."

"성인이 된 마음지기님이 가서 어린 시절 마음지기님을 만날 거예요. 울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서 이야기해 주세요."

어린 시절 나를 만나니 너무 가여워 눈물이 났다.

걱정하지 말라고, 이젠 내가 곁에 있으니 두려워 말라고, 넌 잘 자랄 거라고 이야기해 주면서 한참 울었다.


어릴 적 난 엄마가 죽을까 봐 늘 두려웠다.

자다가도 엄마가 숨 쉬는지 손가락을 코 밑에 대보곤 했다.

엄마가 세상에 없다는 생각을 하면 숨이 안 쉬어졌다.

그럴 때면 심장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몰래 울었다.

우는 걸 들키면 누가 죽었느냐며 호되게 야단맞을 테니까.

손톱을 피가 날 때까지 물어뜯어서 불안감을 달랬다.

애정결핍으로 채워지지 않는 감정은 먹는 걸로 대신했다.

그렇게 살이 쪘다는 이유로 아빠는 날 미륵돼지라고 놀렸고 엄마는 내가 먹는 것만 봐도 살이 찌겠다며 구박했다.

런 이유로 나는 나를 비난하고 증오하게 되었다.

애정결핍은 자신에 대한 비뚤어진 시선을 갖게 했고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결론을 내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라 그저 내가 좋다는 사람 만나기에 이른다.

난 별로이고 사랑받을만한 자격이 없는데 이런 날 좋아해?

라는 마음으로 되는대로 아무나 만난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내가 용기를 내 좋아해서 만났던 사람을 나이가 많고 직업이 변변치 않다는 이유로 가족들이 죽도록 반대를 해서 헤어져야 했고 아이를 잃어야만 다.

상담사님께 억울한 감정을 토로하며 공감받으며 어린 시절 나를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았다.

애썼다 어린 날의 나.

고생했어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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