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저 어렸을 때부터 많이 아프셨거든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너 초등학교 입학하는 것만 보고 죽어도 소원이 없겠다'며 눈물을 흘리셨어요. 초중고 입학이나 졸업 전이면 늘 비슷한 얘길 하며 우셨죠. 그런 엄마가 너무 불쌍했고요. 대학 졸업 후 진로이야기를 나누는데 영어를 좋아하는 전 워킹홀리데이를 가고 싶어 했고 부모님은 경제적 지원을 해 줄 수 없다고 반대하셨어요. 다만 제게 2년이란 시간만 주면 가서경험해보고 뭘 할지 결정하겠다, 그때 만약 하고 싶은 일이 없다면 엄마 소원대로 경찰시험을 보겠다고 했더니 갔다 와서 시험을 볼 거라면 왜 시간을 낭비하냐는 거예요. 할 수 없이 죽도록 시험공부를 해서 합격했는데... 어쩌다 보니아직까지억지춘향으로 이렇게 다니고 있네요."
"그러셨군요...직업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선택 중 하나인데 그걸 본인이 못하셨네요. 지난번 상담 때 결혼과 아이를 낳는 것도 뜻대로 못하셨다고 들었는데."
"그랬죠. 상담사님 말씀을 듣고 보니제 인생인데 제 뜻대로 살고 있는 건 아니었네요.."
"오늘은 어렸을 때로 한번 돌아가볼 건데요. 어머니를 떠올리면 어떤 장면이 떠올라요?"
"음.... 엄마가 아프셨다 보니까 방 한쪽 이부자리에 힘 없이 누워있는 모습이요."
"그럼 그 장면으로 한번 돌아가볼까요? 의자에 기대어서 편안하게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워있다고 생각하세요....."
상담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어린 시절 엄마가 누워있는 장면에 도착했다.
엄마는 기운 없이 누워있고, 그 옆에는 엄마가 죽을까 봐 잔뜩 겁을 먹은 어린 내가 무릎을 꿇고 울음을 참고 있다.
그날은 엄마가 산부인과에 다녀온 날이었다.
아픈 엄마가 임신한 아이를 낳을 수 없어 임신중절수술을 하고 왔다며, 기운 없는 엄마를 쉬게 해달라고 얘기하고선 파리한 얼굴로 잠이 든 엄마를 불안한 마음에 지켜보고 있는 나.
"바라보고 있는 아이의 마음은 어떤가요?"
"무섭고 걱정돼요. 엄마가 죽을 것 같아서요. 엄마가 죽으면 제가 엄마 대신이라고 아빠도 잘 챙겨주고 동생도 잘 돌봐주랬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너무 무서워요. 차라리 엄마 대신 제가 죽었으면 좋겠어요."
"성인이 된 마음지기님이 가서 어린 시절 마음지기님을 만날 거예요. 울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서 이야기해 주세요."
어린 시절 나를 만나니 너무 가여워 눈물이 났다.
걱정하지 말라고, 이젠 내가 곁에 있으니 두려워 말라고, 넌 잘 자랄 거라고 이야기해 주면서 한참 울었다.
어릴 적 난 엄마가 죽을까 봐 늘 두려웠다.
자다가도 엄마가 숨 쉬는지 손가락을 코 밑에 대보곤 했다.
엄마가 세상에 없다는 생각을 하면 숨이 안 쉬어졌다.
그럴 때면 심장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몰래 울었다.
우는 걸 들키면 누가 죽었느냐며 호되게 야단맞을 테니까.
손톱을 피가 날 때까지 물어뜯어서 불안감을 달랬다.
애정결핍으로 채워지지 않는 감정은 먹는 걸로 대신했다.
그렇게 살이 쪘다는 이유로 아빠는 날 미륵돼지라고 놀렸고 엄마는 내가 먹는 것만 봐도 살이 찌겠다며 구박했다.
그런 이유로 나는 나를 비난하고 증오하게 되었다.
애정결핍은 자신에 대한 비뚤어진 시선을 갖게 했고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결론을 내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라 그저 내가 좋다는 사람을만나기에 이른다.
난 별로이고 사랑받을만한 자격이 없는데 이런 날 좋아해?
라는 마음으로 되는대로 아무나 만난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내가 용기를 내 좋아해서 만났던 사람을 나이가 많고 직업이 변변치 않다는 이유로 가족들이 죽도록 반대를 해서 헤어져야 했고 아이를 잃어야만 했다.
상담사님께 억울한 감정을 토로하며 공감받으며 어린 시절 나를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