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감정 분해 사례집

소비의 감정을 해체하고 존재로 살아간다

by Tord

한때는 스포츠카를 갖고 싶었다.
람보르기니, 페라리, 포르셰.
그 비싼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면, 사람들이 나를 쳐다볼 것 같았다.

‘와, 대단한 사람인가 보다.’

그 말이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정확히는, 사랑받고 싶었던 거다.

자랑하고 싶었고, 우월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 모든 감정의 뿌리는 하나였다.
‘나를 사랑해 달라’는 간절한 요청.

나는 스포츠카 자체를 원한 게 아니었다.

그걸 갖기 전의 설렘,
갖게 되었을 때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만족.
결국 나는 감정을 사려했던 사람이었다.


모든 소비에는 이유가 있다.
그 물건을 가지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 감정을 얻기 위해 우리는 돈을 쓴다.

모든 소비는 두 가지로 나뉜다.

1. 사랑받고 싶은 감정

2. 그 물건만이 줄 수 있을 것 같은 감정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스포츠카 → 우월감 + 짜릿함

명품 가구 → 우월감 + 아늑함

해외여행 → 우월감 + 낯섦 or 쾌적함

철학책 → 우월감 + 지혜 or 교양

머리, 옷, 식재료, 캠핑 장비까지, 결국 전부 같았다.


이 우월감이란 감정도, 결국 따지고 보면 사랑받고 싶다는 갈망에서 나왔다.
그렇다면 이 감정은 굳이 끝까지 따라가야 할 감정이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소유를 통해 얻는 우월감은 그 소유가 한계에 다다르는 순간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 한계는 여러 층위에서 나타난다.
물리적 소유의 불안정함, 비교로 인해 생기는 상대적 박탈감, 더 이상 소유할 것이 없을 때 찾아오는 공허함.
하지만 무엇보다 치명적인 건 쾌감의 시점이다.
소유로 인한 쾌감은 대부분, ‘갖기 전까지’ 존재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우리는 무언가를 가지기 전,
그것을 꿈꾸고 상상하는 동안 가장 강한 쾌감을 느낀다.
그러나 막상 손에 넣는 순간, 그 감정은 빠르게 휘발된다.
만족은 짧고, 허무는 길다.


결국 소유를 통해 지속적으로 느끼고 싶었던 감정은,
아이러니하게도 소유하는 순간부터 사라지기 시작한다.

나는 이미 갖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쾌감도 함께 사라졌다.
기다림과 상상이 만들어준 설렘은,
소유하는 바로 그 순간 증발했다.

그리고 그 허무를 메우기 위해
나는 또 다른 물건을 클릭하고 있었다.
이전에 느꼈던 감정을 다시 복제하려는 시도.

쾌감은 다시 오지 않았지만,
나는 또 한 번 시도했다.
그러는 사이, 쇼핑은 하나의 반복 루프가 되었다.

그때 알았다.

도파민에 절여진 뇌가 딱 바로 이거였다


그러다 문득, ‘소유’ 자체가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하나씩 껍질을 벗겨보기 시작했다.
겉을 걷어내자, 진짜 욕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포츠카에서 우월감을 걷어내면, 짜릿함만 남는다.
그 짜릿함은 자전거로도 충분했다.
직접 만든 트레일 위, 진흙탕을 달리는 그 순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감정을 느꼈다.

명품 가구에서 과시를 걷어내면, 아늑함만 남는다.

이케아 소파 하나로도 충분했다.

여행에서 보여주기를 빼면, 낯섦만 남는다.

그건 뒷산 캠핑 하나로도 충분했다.

철학책에 보여주기를 걷어내면, 지혜만 남는다.
중요한 건 몇 권을 읽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가였다.


나는 돈 없이도 풍요로워졌다.

돈을 안 쓰면 재미없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정반대였다.

복싱은 한 번 배우고 나니 어디서든 쉐도우 복싱이 가능했다.
체육관이 없어도 괜찮았다. 아이들과 함께 뛰는 그 시간이 훨씬 값졌다.

체스는 나만의 세계가 되었다.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는다. 어제의 나만 이기면 되는 게임.

이상하게도, 그건 존재의 철학과 닮아 있었다.

책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엔 열 권을 한 번씩 읽었다면,

지금은 한 권을 열 번 읽는다.
중요한 건 읽었다는 완성이 아니라, 살아낸 행동이었다.


그러다 보니, 타인의 욕망도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머리 좀 하러 가야겠어.”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진짜 머리 때문일까?
혹시 뭔가 사고 싶은 게 있었는데,
그걸 참고 대신 만만한 걸 고른 건 아닐까?

차라리 지금 진짜 원하는 걸 사는 게 어때?
어차피 가격은 비슷하잖아.

아니면 그냥, 기분 전환이 필요했던 걸 수도 있고.
외로움이나 대화가 필요해서 그런 걸 수도 있고.”

그리고 집에 도착한 뒤,

그녀는 웃으며 내게 말했다.
“이 삔 꽂으니까 예쁜 것 같아.”
“이 옷 팔아버리려고 했는데, 어때?”

그리고는 옷장을 뒤져 작은 패션쇼를 열었다.

정답은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타인의 행동도
감정의 구조로 읽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득, 내 손에 들린 철학책을 봤다.
『소유냐 존재냐』를 덮은 직후였다.

나는 곧장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니체, 사르트르, 데리다, 볼테르의 책을
장바구니에 마구 담고 있었다.

방금 ‘존재하라’는 책을 읽고 나서
나는 또 무언가를 소유하려 하고 있었다.

왜? 그 책들을 책장에 꽂아두고

‘이런 책 읽는 나, 멋지지?’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건 스포츠카를 원하던 내 마음과 하등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그걸 알아차렸다.


그 자각이 내 삶을 바꿨다.
이제 나는 돈을 쓰기 전, 그 돈을 써서 얻고 싶은 감정이 무엇인지부터 살핀다.
조심스럽고 면밀하게 묻는다.

“내가 지금 바라는 감정은 무엇인가?”

그러면 답이 나온다.
“아, 나는 지금 외롭구나.”
“나는 지금 인정받고 싶구나.”
“나는 지금 지쳤구나.”

감정을 분해하고 나면, 그 욕망이 단지 ‘소유’에서 온 것이었다면
나는 과감히 버린다.
그건 억누르는 절제가 아니다.

그건 내가 나를 스스로 가르치는 순간이다.
이미 원리를 알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남은 감정을 조용히 따라가다 보면
결국 내가 지금 존재해야 할 방식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나로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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