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다 써야 끝난다

– 물건과 나, 관계의 완결에 대하여

by Tord

나는 물건을 끝까지 써본 적이 거의 없다.

화장품은 유통기한이 지나면 버리고,

음식은 몇 입 먹다 냉장고에 처박고,

생활용품은 조금 쓰다 마음에 안 들면 그냥 멈췄다.

그건 버리는 것도 아니고, 끝낸 것도 아니었다.

그냥… 중단.

나와 물건 사이의 관계는 늘 중간까지만 이었다.

중단된 물건들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이 관계를 끝맺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건 단순한 소비 습관이 아니라,

내 인간성에 대한 신호 같았다.


어느 날, 중고마켓에 자전거를 팔았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안 쓰는 물건들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라운 해방감이 몰려왔다.

단순히 돈을 번 기쁨이 아니라,

완결을 지었다는 감각.

그 물건과의 관계를 마무리했다는 느낌.

그제야 나는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화장실 청소를 하다 문득 샴푸통이 여러 개인 걸 알았다.

왜 이렇게 많지?

그래서 내용물을 하나로 합쳤다.

빈 통 하나를 비운 순간, 엄청난 홀가분함이 느껴졌다.


중고 판매, 샴푸통 정리, 뭐지 이 기분?

창고에 안 쓰는 물건이 줄어들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서랍을 정리하면서 깨달았다.

나는 아깝다는 이유로, 맘에 안 든다는 이유로

언제 버릴지도 모를 운명을 품은 채 물건을 쌓아두고 있었다.


젤 같은 제품은 머리에 바르는 걸 싫어한다.

머리에 끈적한 걸 올리는 느낌이 싫어서다.

하지만 요즘 나는,

싫어도 하나씩 꺼내 바른다.

진심으로 바르고 싶은 게 아니다.

없애기 위해 바른다.

끝내기 위해, 책임지기 위해, 쓰는 것이다.

쌓아둔 것들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행위.

샀다면,

팔든, 쓰든, 버리든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를 해야 한다.

(신기하게도 계속해서 발랐더니 이제는 오히려 바르고 싶어 졌다.)


그래, 그냥 버려도 된다.

하지만 버리지도 않고 유보하는 상태,

그게 가장 문제였다.

유보된 물건, 유보된 관계,

그건 나중에 정리하겠다는 핑계를 품고

기억과 공간을 동시에 점령한다.


미니멀리즘은 단순히 안 사는 게 아니다.

샀다면 끝까지 잘 쓰는 것,

실패했다면 완전히 폐기까지 가는 것이 진짜다.

그냥 짱박아두는 게 최악이다.

차라리 눈물을 머금고 버려라.

"내 돈 아까워"라는 감정을 받아들이고,

그 경험을 다음번 선택의 신중함으로 전환하라.


내가 정리하지 않은 물건들은

어느 순간부터 내 생활공간을 넘어서

내 뇌를 침범하고 있었다.

그건 단순한 청소가 아니라,

정신의 질서와 기억의 명확성을 위한 작업이었다.


모든 물건이 꼭 처분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쓸모는 없지만 감정적 애착이 있다면,

단순한 오브제로 두고 싶다면,

그것도 괜찮다.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쓰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고,

애매하게 '유보된 물건'으로 방치해 두는 건 문제다.

그건 내 공간을, 내 정신을, 그리고 내 의식의 여백을 갉아먹는다.


물건을 버리지도, 쓰지도 않는다는 것.

그건

내 장소를 낭비하는 일이며,

내 뇌를 어지럽히는 일이다.


뇌를 자유롭게 해주어야 한다.

아, 이제 그 물건은 더 이상 없다.

뇌는 더 이상 그것을 써야 한다는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또한

그것이 어디에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는 부채감으로부터도 자유로워졌다.




정리는 집 청소가 아니다.

뇌 청소다. 마음 정리다.

진짜로 내가 사랑하는 것을 분명히 남기고,

그 외의 것들과는 책임 있게,

존중하며 작별하는 법을 배우는 일.

물건을 끝까지 써보는 일.



그건 결국,
나 자신을 완전히 살아보겠다는 태도였다.

그리고 나는 이제서야 깨달았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용서하고, 이해하고 있었다.


버려진 물건처럼 유보되었던

나 자신이,

다시 회복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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