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이 사라지자 삶의 본질이 보였다

만약 당신이 외식을 할 수 없다면 무슨 일이 펼쳐질까?

by Tord


해외여행이 당기지 않았다.

호캉스도 싫어졌다.

친구 만나는 것도 귀찮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카니보어 식단 때문이다.

밖에서 먹을 수가 없다.

외식이 안 되니까, 애초에 외출 자체가 귀찮아졌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좋아하던 것들에 흥미가 사라진 것이다.

그제야 본질이 보이기 시작했다.


해외여행, 호캉스, 친구와의 만남.

그 모든 것들의 핵심에는 외식이 있었다.

해외에 간다 = 맛집 찾아다니는 일.

친구를 만난다 = 술 마시고 밥 먹는 일.

호캉스를 간다 = 룸서비스를 받고 맛집 찍는 일.

외식이 빠지자,

그 모든 게 시들해졌다.

“그럼 그냥 경치 보러 가면 되잖아?” → 아 힘들어.

“그럼 친구랑 그냥 대화만 하면 되잖아?” → 술도 없이? 무슨 얘기?

“그럼 호텔 가서 럭셔리한 분위기 느끼면 되잖아?”

→ 집도 충분히 좋고, 그 돈이면 집안 매트리스 시트랑 이불, 베개까지 최고급으로 싹 바꿀 수 있다.

결국 본질은 이거다.

소비였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지출을 통해 '뭔가 하고 있다는 느낌'을 사는 것.


그럼 나는 속물인가?

나는 자유로운 삶, 새로운 세상, 설렘을 꿈꾸는 사람이 아니었나?

그 모든 이상이,

실은 세속적인 외식과 유흥에 달려 있었던 건 아닐까.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여행한다”는 말은

“좋은 음식 먹고 소비하고 싶다”는 말의 낭만적인 번역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친구와 미래를 논한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면 알코올과 야경이 필요했던 거다.

그게 빠지면 대화도 어색하고, 만남도 불필요해졌다.


그런데 여기서 끝은 아니다.

나는 지금 다시 욕망을 점검하고 있다.

소비가 본질이라면,

그 돈으로 집을 세상에서 제일 편한 공간으로 바꾸는 게 낫다.

안락한 의자와 조용한 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이국적인 자극'이 아니라 '나를 위한 공간'이라면

지금 이 방식이 더 정직한 선택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알게 됐다.

경험을 위한 여행은 여전히 의미 있다는 것.

내가 만약 해외여행을 간다면

미국 사막, 혹은 외국의 트랙에서

모토크로스를 배우고, mtb를 타고

지겹도록 흙밭을 달리고, 넘어지고, 또 타고 싶다.

진짜 체험이니까.

꿈속에서도 하고 싶은 거니까.

진짜 내 욕망에 다가가는 길이니까.


나는 지금,

삶의 표면을 걷어내고

속을 들여다보고 있다.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걸 어떤 방식으로 채워야 하는지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나는 지금, 집에라는 조용한 우주 안에서 나를 더 깊이 들여다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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