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변명

1시간의 죄책감을 내려놓는다

by 김하늬

다른 지방에서 강의가 있는 날이었다. 아이들은 자고 있었고 나는 새벽 6시에 집을 나섰다. 곧 있으면 나의 엄마, 아이들의 외할머니가 아이들 아침과 등원을 도와주러 오신다. 겨울 새벽은 손끝이 차가울 정도로 깜깜하고 춥다. 어제 업무가 늦게 끝나서 4시간밖에 자지 못하고 먼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피곤함이 몰려왔다.


강의장에 도착해서 6시간 연강을 끝냈다. 이제 바로 집으로 가면 둘째 아이 하원이 가능하다. 내비게이션에 찍힌 도착시간, 5시 44분. 쉬지 않고 적당한 속도로 달려갈 경우 도착할 시간이었다.


운전대를 잡고 몇 분지 나지 않아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졸음과의 사투에서 이겨보기 위해 내가 듣는 노래 중 가장 시끄러운 노래를 틀고 따라 부른다. 그도 안되면 들고 온 간식거리를 모두 꺼낸다. 시끄러운 노래도, 간식도 모두 한계치에 달하면 결국 다시 눈이 감긴다.

'아! 안 되겠다. 쉬어야겠다.'




졸음운전은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해 가야 한다. 결국 가장 가까운 휴게소까지 허벅지를 꼬집으며 도착했다. 시동을 끄고 바로 시트를 완만하게 내린다. 그나마 장거리 주행과 낮시간 덕분에 옷을 꽉 여미면 추위를 이길만했다.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그렇게 30분을 잤다. 순간 둘째 아이의 픽업이 생각나서 부랴부랴 엄마에게 sos를 쳤다. 든든한 지원군인 엄마는 둘째 걱정은 하지 말고 푹 쉬다가 조심히 내려오라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마음이 편해져 다시 눈이 감긴다. 나도 모르게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눈을 떠보니 다시 깜깜해졌다. 내가 출발했을 때의 풍경과 같았다. 출발했을 때도 깜깜했는데, 집으로 가는 길도 깜깜했다. 그래도 몸은 한결 가벼워져있었다. 다시 내비게이션을 찍는다. 도착시간 7시 15분.


순간 고민을 했다. 이왕 늦은 거 운동하고 집으로 갈까, 바로 집으로 갈까.

체력을 올릴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헬스장을 다시 찍었다. 순간 내 마음속에선 여러 감정이 공존했다. 어차피 늦었는데 1시간을 더 쓴다고 크게 달라질 일은 없지만 왜 그 1시간이 미안한 감정이 드는지. 엄마라서 가능한 감정 같았다. 어쩌면 쓸데없는 감정.


1시간 일찍 들어간다고 해서 내가 아이들과 놀아주지도 못할 거면서 너희들 때문에 운동을 못 갔다며 괜한 희생정신을 무기로 이용한다. 고작 1시간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기로 한다. 엄마의 합리화이자 변명이지만 그래서 잔소리하는 엄마가 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더 좋은 관계가 되지 않을까.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냐 보다 얼마나 찐하게 시간을 보냈냐가 더 중요하니까, 대신 일요일은 찐하게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