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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늬 Jan 24. 2021

내 돈 그릇은 내가 경험한 크기

 어릴 적부터 엄마는 나와 동생을 데리고 은행을 자주 다녔다. 그 당시 대부분의 은행업무는 대면 업무로 처리되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초등학교를 다닐 쯤부터는 명절에 받은 용돈을 스스로 관리하였다. 엄마는 그 돈을 가져가지 않았다. 그렇게 받은 큰돈을 내 통장에 조금씩 저금했다. 또 매주 용돈을 받았다. 가끔은 설거지나 아빠 구두를 닦아서 추가로 용돈을 벌기도 했다. 그렇게 받은 용돈들도 엄마 따라 은행을 가면 일정 금액 저금을 하곤 했다.

 다른 친구들보다 빨리 돈 관리를 시작했던 것 같다. 용돈 안에서 간식도 사 먹고 만화책도 빌려봤다. 부모님 생신일 땐 적지만 용돈에서 선물을 준비했었다.


 나와 동생은 확실히 일찍 돈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다만 성향이 달랐다. 대부분의 돈을 차곡차곡 저금하는 동생과 달리 나는 반은 저금하되 반은 꼭 사용했다. 소비하는 데 거침없었다. 똑같이 만원이 있으면 만원을 저금하는 동생과 달리 나는 오천 원 이상은 꼭 썼다. 그냥 그게 편했다.




 운 좋게 아빠 회사에서 대학 등록금을 지원받으면서 다녔다. 만약 내가 장학금을 받게 되면 그 돈은 내 용돈이 되었다. 덕분에 대학교 다닐 때 제일 풍족한 생활을 했다. 어릴 때와 같이 갑자기 생긴 돈은 반은 저금하고, 반은 거침없이 썼다. 고등학생이던 동생은 "언니는 왜 저렇게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걸까"라는 일기를 썼고 시간이 지나 나에게 발각(?)됐다. 보수적이던 동생 눈에는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언니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대학교 시절부터 펀드를 했었고 나름 경제분야에 스스로 관심을 많이 가지는 편이었다.


 하지만 소비하는 것도 좋아했다. 그렇다고 뭐 하나 큰 소비를 하는 건 아니었다. 소소했다. 먹고 싶은 걸 먹고, 학교 앞에서 파는 보세 옷을 사고 싶을 때 사는 정도로 소소하게 소비했다. 그런데 신기하게 소비를 하면 할수록 조금씩 늘어났다. 뭐든지 줄이는 건 어렵지만 늘리는 건 쉬웠다.


 분산투자가 뭔지도 모르던 그때 중국펀드를 했다. 원금 보전은커녕 계속 원금까지 사라지게 되었다. 마이너스 30%를 찍었을 땐 다시 0%가 될 때까지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 마이너스 30퍼센트 이상이 되기 전에 급히 해약을 했다. 그렇게 다시 큰돈이 생겼다. 자연스럽게 그중 반은 다시 저금으로 반은 사용했다. 사실 그냥 묶어뒀음 안 썼을 돈이었는데 나는 자연스럽게 소비를 했다.


  당시 내가 만져본 큰돈이라곤 몇백만 원이었다. 하지만 그 몇백만 원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이런 내가 더 큰돈을 갑자기 관리하게 되었다. 결혼 때문이었다. 남들보다 일찍 결혼을 했고 남들보다 일찍 주택담보대출을 경험했다. 그 당시에는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는 시기를 2년 유예할 수 있었다. 2년은 이자만 내도 되는 시기였다.

 내 인생에서 빚을 처음 경험했다. 그것도 몇 천만 원의 빚이었다. 과감한 성향 덕분인지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단지 처음 빚을 졌고 꼬박 갚아야 하는 돈이 있다는 것만 인지했다. 2년이 지나고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기 시작하면서 약간의 부담감이 생겼다. 월 고정비용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축한다는 마음을 가졌고 또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렇게 내가 다루는 돈의 그릇이 조금씩 넓혀져 가고 있었다.


 30 살대 중반이 된 지금 내 돈의 그릇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본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은 1~2억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경험한 돈의 크기가 아직은 그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내 돈의 크기를 늘리는 방법은 내가 스스로 경험하는 일뿐이었다.

 그래서 지금 내가 로또에 당첨된다고 한들 그 돈을 감당할 능력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복권 당첨자들이 '그래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해피엔딩보다 파산하는 세드엔딩이 많은 이유다.


 큰돈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 돈을 계속해서 늘려보고 빚일지라도 경험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돈의 그릇은 딱 내가 경험한 그 크기가 다다.

 욕심이 많은 나는 10년 뒤 순자산이 10억이길 바랬다. 그런데 주변 지인들은 100억을 말하고 있다. 나는 욕심이 많은 축에 끼지도 못했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내가 경험한 돈의 크기가 딱 1억이었기 때문이다. 10억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100억을 꿈꿨다. 당연했다.


 나에게 어울리는 돈의 그릇을 갖고 싶다. 자연스럽게 경제에 오감을 켜놓는다. 그리고 다양한 경제활동을 경험해본다. 저금, 예금, 펀드, 주식, 채권, 부동산, 금 무엇이든 다양하게 경험한다. 무엇보다 수입을 늘리고 불필요한 소비를 하지 않는다.


 왜 나는 보다 큰돈 그릇을 갖고 싶은가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까지 받아온 여러 호의 들을 이제 돌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든든한 숲이 되어주고 싶다. 갑자기 큰돈이 생겨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돈을 통제할 수 있는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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