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이에게 최초의 선생이니까.
아이가 생기면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든다. 이 마음이 모성애의 시작일까?
내 꿈은 무엇이고 내가 진짜 좋아하고 잘하는 게 뭔지 모른 채 아이를 낳는다. 즉 나로 온전히 살아본 적 없이 출산을 한다. 그리고 아이가 잘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여기서부터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아이가 잘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전에 엄마인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지부터 확인해봐야 한다. 나는 꿈이 있었는지,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내가 한 행동들은 있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이 과정은 쉽지 않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꿈이란 단어를 잊은 채 살아왔기 때문이다.
아이의 꿈을 설정하기 전에 엄마 꿈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아이가 어떻게 컸으면 좋겠는지 생각하기 전에 내가 남은 생을 어떻게 보냈으면 좋겠는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엄마는 아이에게 최초의 선생이다. 선생은 먼저, 산 사람이다. 내가 먼저 최선을 다해 살지 못했다면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 살기를 강요해선 안 된다.
좋은 예가 있다. 엄마는 한 달에 책 한 권 읽지 않으면서 아이가 책을 좋아하길 바란다. 어떻게 하면 책 좋아하는 아이로 키울 수 있는지, 이 시기에 읽어야 하는 책은 어떤 건지를 포털사이트에 검색을 한다. 사실 엄마가 검색할 시간에 책 한 권이라도 더 읽는 게 도움이 된다. 책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선 책 읽는 환경이 먼저다. 여기서 또 우리는 요행을 바란다. 책을 가득 사주고 책 읽는 환경을 만들었다고 위안한다. 차라리 한 권이라도 빌려와서 같이 읽는 게 도움이 된다.
사실 육아가 힘든 건 나부터 성장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성장에는 반드시 고통이 동반된다. 엄마들은 아이가 아프면 대신 아프고 싶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아이가 성장통을 경험하기 전에 엄마부터 성장통을 견뎌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백번 잔소리하는 것보다 한 번 보여주는 게 낫다.
며칠 전부터 아이와 밀린 문제집을 풀기로 했다. 문제집을 통해 덧셈, 뺄셈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보다 매일 꾸준히 하는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틀려도 뭐라 하지 않기로 했다. 잘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매일 3장의 성취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오늘이 6일째였다. 분명 어제까지도 하기 싫다고 몸을 베베 꼬던 아이가 이젠 해야 할 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는지 글을 쓰고 있는 내 곁에 문제집을 들고 와서 앉았다. "엄마 나 이거 잘 모르는 것만 도와줘"하면서 스스로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3장을 다 풀고 히죽거리면서 방으로 갔다. "오예! 다했다~ 엄마 나 달력에 체크할게. 이제 논다!!" 벌써 6개의 빗금이 쳐졌다. 6일이나 문제집을 풀었다. 내일이면 일주일이 완성된다.
매일 아이 앞에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하루는 내 옆에 슬쩍 앉아 묻는다.
"엄마는 글 쓰는 거 안 힘들어? 나는 독후감 쓰기 싫은데."
"힘들어. 수많은 생각들을 한 줄로 정리하는 일이 쉽지 않아. 그래서 오래 앉아있을 때가 많잖아. 그래도 다 하고 나면 정말 뿌듯해!!!"
글 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는 안다. 그래도 꾸준히 쓰는 엄마를 보면서 아이는 힘들어도 해야 하는구나를 배운다. 벌써 초3이 된 아이는 7살 동생에게 말한다.
"넌 어린이집 가서 매일 노니까 좋지? 누나는 구구단도 해야 하고 힘들다. 다시 어린이집 가고 싶다. 나도 가나다라 쓰기나 했으면 좋겠다."
수빈아 너도 7살 때 가나다라도 못 읽을 때 울면서 힘들어 죽겠다고 했단다. 역시나 성장에는 고통이 동반된다. 아이의 고통을 진득하게 볼 수 있는 엄마가 되기로 한다. 그전에 엄마인 나부터 너무 편하게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