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처음으로 단호해진 순간은 단유 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2개월을 완모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놀라울 일이다. 어떻게 1년을 모유수유만 했는지. 모유수유를 하게 되면 내 생활은 사라진다. 아이와 나는 한 몸으로 묶인 거나 다름없다. 요즘 엄마들은 수유 텀을 철저하게 지키는 편이지만(물론 10년 전에도 철저한 엄마들은 철저했다) 비교적 헐렁하게 육아를 했던 나는 아이가 울면 젖을 내주었다. 모유수유를 해 본 엄마들은 알겠지만 아이가 젖을 오물조물 빠는 모습은 정말이지 너무 귀엽다.
'젖 먹던 힘으로'라는 말이 대명사처럼 자리 잡은 이유는 정말 '젖 먹는'일이 그 누구보다 힘들기 때문이다. 4kg도 안 되는 아이가 살기 위해 젖 먹는 모습을 보면 그 문장이 한 번에 이해가 된다. 땀을 뻘뻘 흘려가며 젖 먹던 그 아이가 6개월만 지나도 설렁설렁 장난치면서 젖을 빤다. 그 모습도 정말이지 너무 귀엽다.
그런 아이가 일 년 사이 급성장을 해서 내 팔뚝 길이밖에 안되던 아이가 팔 길이가 된다. 잇몸만 있던 아이가 이빨이 생긴다. 이빨이 생기면 모유수유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빨이 5개가 넘어도 모유 수유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오히려 갈수록 귀여웠다. 하지만 이유식을 시작하고 서서히 일반식으로 넘어가면서 당연히 모유수유는 줄어들게 된다. 이 쯤되면 결단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온다. 육아의 첫 번째 고비, 단유의 순간이다.
처음으로 아이에게 독해지는 순간이었다. 젖을 주지 않으면 죽을 기세로 우는 아이와 줄 수 없는 엄마와의 신경전이 시작된다. 이 전쟁의 주요 패자는 엄마다. 우는 아이 앞에서 속수무책 약해진다. 무엇보다 단유 후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수유의 추억에 나를 합리화시킨다. "그래. 이렇게 우는 애한테 잔인하게 할 짓이 아닌 것 같아. 어차피 단유 할 건데..." 그렇게 첫 번째 단유는 실패한다.
건강한 부모는 아이의 독립을 응원해줘야 한다. 그 첫 번째 독립이 단유다. 하지만 첫 독립에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은 사실 아이가 아닌 엄마다. 한 몸이었던 나를 뚝 떼어 놓는 건 쉽지 않다. 완모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단유도 힘들어진다.
"내가 너를 어떻게 먹이고 키웠는데!"
온전히 나로 인정받지 못한 채 엄마가 되면 위험한 이유는 여기 있다. 어쩌면 처음으로 나 아니면 안 될 누군가가 있어서, 그 순간들이 내 삶의 이유가 된다. 내 삶의 이유는 온통 아이 었기 때문에 독립하려는 아이와 독립시키지 못하는 엄마가 남게 된다. 아이가 사라지면 내가 사라지니까.
아이의 첫 번째 독립을 쿨하게 받아들이고 내 삶의 지분을 조금씩 넓혀나갔으면 좋겠다. 결국 내 삶의 주인공은 나다. 아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