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바쁜 와이프를 대신해, 어린이집 마칠 시간에 맞춰 두 아들을 데리러 간다. ‘하~ 오늘은 이것들 어떻게 케어를 해야 되나.’하면서도 밝게 맞이해주는 두 아들 미소에 끔뻑 쓰러질 정도니, 마중을 나갈 때면 언제나 기분은 좋다. 는 아주 잠시일 뿐. 힘들다. 살려줘...
“아빠 마트 가자 마트!”
“아빠 돈 없는데 아들 돈 있어?”
“아니 없는데. 돈 사면되지.”
‘돈을 사라.’ 해석을 하자면, 이 말은 즉 더 열심히 일해서 먹고 싶은 걸 대령하라는 말로 들린다. 처음에는 교육차원에서 단호하게 “안돼!”라고 하지만 어정쩡한 발음과 말도 안 되는 말들로 나를 기어코 설득시킨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마지못해 마트에 간다. 뭐 자식을 키울 때 해달라고 하는 거 다 들어주면 안 된다고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하겠다. 어린아이들은 놀고, 먹고 싶은 욕구가 가장 강할 때가 아니던가. 그렇지 않나? 이 작은 것들이 먹어봐야 얼마나 먹는다고. 먹는 만큼 에너지 소비를 하니 그나마 다행이긴 하다. 어릴 적 먹고 싶은걸 못 먹고 커서 그런지 내가 굶으면 굶었지 자식들이 먹고 싶다고 하는 건 다 사주고 싶은 마음이다. 부모라면 당연한 걸. 참 나도 부모라고 이런 생각까지 하고 있다. 그래 대견하다!
각자 좋아하는 간식을 들고 집으로 향한다. 첫째와는 다르게 둘째는 짧은 단발머리를 했다. 아이들이 부끄러움, 멋을 모를 때 부모 마음대로 해보는 거다. 지금 이 시기가 아니면 하지 못 하니까. 그래서 동네 지나가는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딸이냐고 묻는다. 자연스러운 미소와 함께 어른에 대한 예의를 갖춘다. “아니요 아들입니다.” 아이들이 귀엽고 예뻐서 관심을 가져 주는 건 감사한데, 듣기 좋은 말도 지겹도록 들으니 솔직히 일일이 답하기 귀찮은 건 사실. 그렇다고 무례하게 무시하지는 않는다. 예. 그런 사람 아닙니다.~
한 번은 정말 도를 넘어서 남의 가정사에 침투하는 할머니가 있었다. 마찬가지 두 아들 하원 하면서의 일이다. 내 성격 탓인가, 한국사람 특유의 성격 때문인가. 그리 바쁘지도 않은데 횡단보도의 빨간불은 나를 초조하게 만든다. 할머니는 한심한 인간 쳐다보듯 하며 나에게 말을 건다.
“아이고 아들이 둘이네. 아들 키워봤자 소용없다. 딸 하나 더 낳아라”
“저도 아기들 좋아하는데요. 너무 힘들어서 안 낳으려 구요.(미소)”
“무슨 소리 하노~ 우리 때는 10명도 낳고 다 키우고 했다. 딸 하나 더 낳아라.”
“저희는 맞벌이도 하고 둘도 벅차서 셋까지는 힘들 거 같아요.(미소)
“우리 때는 애 업고 밭일도 하고 다했다. 애 키우는 게 뭐가 힘드노. 낳아놓으면 알아서 다 큰다. 하나 더 낳아라.”
‘아니 이 할망구야 적당히 해 적당히! 애 한 명 더 낳으면 할망구 당신이 키워주기라도 할 거야? 당신 시대엔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고요~ 집 한 채 사기 힘든 나라에서 애를 더 낳으라고? 이 무례한 할망구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목구멍에서 부정적인 말들이 입 밖으로 밀려 나오지 못하게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리곤 또 어른에 대한 예의를 한없이 갖추며 웃어넘긴다. 이런 부류에 사람들을 만나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해서 막 하면 안 되니까 사람 아니겠나. 그렇다고 그 할머니가 사람이 아니라는 소리는 아니니 오해하지 말기를.
오늘도 예의와 겸손으로 나의 진실을 포장한다. 잘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