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노인의 노래
오후 휴식시간이다.
중식 후 주간 근무자 2명이 교대로 1시간 정도 방에 들어가 쉰다. 한마디로 낮잠을 자는 시간이다. 공장 경비원에게 부여된 법정 휴식 시간이다. 이런 덕분에 환갑을 넘은 나이에 공장경비원이라도 일할 수 있는 것이다. 날씨가 덥다. 냉방이 들어오지 않는 방에 조금이라도 찬 공기가 들어오도록 문틈을 열어놓고 오수를 즐긴다. 얼마 후 두 사람의 소곤거리는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들어보니 우리를 파견한 경비업체 대표가 방문하여 이야기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도 모르는 특이한 목소리를 갖고 있어 보지 않고도 실제로 신분 추측이 가능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경비업체 대표가 며칠 전 근무지 원청업체와의 미팅 결과를 경비반장과 심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경비원 4명 중 오늘 비근무자 두 사람을 해고하기 위한 작업과정이다. 후속 배치될 두 사람을 새로 선발했단다. 다음 주에 시간 내서 하루를 실습하고 인수를 받는다는 것이다. 신입의 오리엔테이션 후 확정되면 그 후 현재 근무 중인 두 사람에게 해고 통보를 한다. 계약기간이 1년으로 5개월이나 남아 있는데. 그 두 사람은 제조업체 경비원을 5년 이상 오래 근무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자꾸 과거의 근무 직장과 비교하는 버릇이 있었고 그것이 불평불만으로 이어갔다.
작업이 일사천리로 이루지고 있다. 두 사람은 모두 위태위태하게 무슨 일이 곧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는데, 결국 그 사단이 터진 모양이다. 근무 태만이다. 몇 번인가 이야기 하면 잘못을 인정하면서 자세를 바로 고치고 시정해야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못했다. 현장 근무자와의 마찰, 지시사항의 미 이행, 순찰 시간 미 엄수 등이 그동안 지적되어 왔다.
마지막에는 결정적으로 두 사람 근무 중에 등기우편물의 분실 사건이 벌어졌다. 집배원은 항상 하던 대로 근무자가 없으면 등기를 경비 사무실에 놓고 나간다. 오후에 한 사람은 휴식을 취하고 다른 한 사람이 정 위치하여야 한다. 잠깐 이석표시도 없이 자리를 비운 것이다. 등기는 ‘환경폐기물검사필증’으로 사무실에 항상 게시해야 하는 중요한 서류인데 분실한 것이다. 환경관리공단에서 발급한 필증으로 군청을 거쳐 회사에 온 것이다. 서류담당 공무팀에서 우리를 관리하는 총무팀에 보고가 되어 망신스럽게 된 경우였다. 우체국까지 전화하여 집배원도 상사로부터 구두 경고로 질책을 받았다. 결국 우리가 근무하는 원청 사무실에서 직접 두 사람을 찍어 해고 요청한 것이다.
반장과 경비업체 사장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방에서 나와 후임자 교육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사실 나도 언젠가는 나가야 하는 몸이다. 영원한 직장은 없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퇴직하는 많은 선배들을 보면서 나는 한 가지 원칙을 세웠다. ‘내 발로 왔기에 내 발로 나간다.’ 라는 자세이다. 절대로 강제 퇴사라는 불명예 해고는 피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항상 자신의 신분상승을 위한 능력개발과 언제라도 나갈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이 곳의 직장경험도 사람 사는 세상을 배우는 귀한 기회이고 중요한 시간이다. 내가 필요로 하는 곳에 내가 선택해서 온 것이다.
다음 날 퇴직 대상자인 사람 A와 같이 근무하는데 나만이 아는 이 비밀을 지켜야 했다. 모든 임면권은 대표인 사장이 갖고 있기에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 입이 간질간질했다. 이런 것이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의 귀’ 우화이구나.
나도 한때 이런 강제 퇴사 대상자의 아픈 경험이 있다. 20여 년 전, IMF사태로 한국의 대기업이 무너지기 시작할 때다. 내가 근무한 직장도 창사 이래 최초로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그런데 당시 대출 관리과장인 내가 포함된 것이다. 당시 인천에서 근무하던 때인데 시화공단에 있던 S식품과 T정밀이 부도가 나면서 회사는 500억 정도가 물려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나에게는 충격적이었다. 왜냐하면 대출해 주었던 전임자는 다른 데로 가고, 내가 속칭 ‘눈탱이’를 뒤집어쓰게 생겼던 것이다. 나는 이런 정보도 없이 상사로 같이 근무한 적이 있는 임원의 부탁으로 그 보직을 쉽게 맡아버린 것이다. 부임해서 그런 사실을 뒤늦게 안 것이다. 이미 부도 징후가 있었고 누군가는 그 핵폭탄을 뒤집어쓰게 되어 있었다.
당시 퇴사 대기자들은 연수원에서 교육을 받고 영업현장에서 재연수가 들어갔다. 엊그제 입사한 사원부터 50세가 넘는 부장직급까지 천차만별이었다. 부아가 치밀었다. 도저히 나는 회사강요로 사직할 수 없었다. ‘내가 원해서 온 직장인데, 내 발로 나가야지’라는 생각으로 나의 방황을 정리하여, 마음을 바꾸고 열심히 재 연수에 임했다. 연수기간 평가는 최상위를 달리고 나의 억울함을 인사담당 임원에게 알렸다.
‘이 세상은 모든 것이 내 마음 먹기에 달려 있구나’, 경험한 또 다른 시간이었다. 결국 억울함이 인정되고 연수 고평가로 세 달이 가기 전에 본사의 새로운 보직을 받고 수평 이동하였다. 이백여 명중 두 명이었다.
얼마 후 평가를 담당했던 후배에게 몹시 혼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되기 전에 한번쯤 힌트라도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 나의 주장이었다. 그는 전에 같은 부서에서 근무한 살가운 후배사원이다. 술 한 잔 하면서 얼마나 혼냈던지 옆에 있던 동료들이 논쟁을 말리고, 결국 그는 미안하다고 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내가 그 자리에 있더라도 인사나 평가는 발설할 수 없는 극비사항이었다.
나이를 먹고 사회생활을 하면 조심해야 할 게 있다. 누구나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경험, 지식, 지혜는 아주 중요한 자산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 머리 속에서 함몰되어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안타깝다.
“내가 왕년에는 어디를 다녔는데. 거기서는 어떤 일을 했고 직위는, 보수는.” “내가 다니던 직장은 이랬었는데”
젊은 시절의 그늘에서 현재 자신의 위치를 비교하면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떤 정보도 완벽하지 않다, 라는 것을 전제해야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서처럼 지금 세상은 아주 급변하게 변하고 있다. 과거의 경험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문물을 스펀지처럼 받아드릴 자세가 되어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고 잘못된 정보도 있다는 사실을 항상 인식해야 한다. 끝없는 자기반성과 혁신이 필요한 시간이다. 결국 우리는 신이 아닌 이상 완벽하지 않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래서 가끔 뒤돌아보면서 전진하며 역사는 발전한다.
남자에게 직장에서 쫓겨나는 일보다 더 서글픈 일은 없을 것이다. 퇴로를 열어주면서 퇴사를 유도하는 방법도 많이 있다. 그러나 강제퇴사로 인해 개인의 자존심 상처로 그 미궁을 헤어나지 못하고 여생을 살아가는 사람도 보았다. 또 능력 있는 엘리트는 명예퇴직금을 챙기고, 조금 있다 더 좋은 직장을 구해 승승장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조직은 능력 있는 자만이 살아남는 적자생존의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다.
소유주가 아닌 월급쟁이는 언젠가는 조직에서 나가야 하는 슬픈 존재이다. 모 재벌 회장은 머슴이라고 표현했다. 주인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게 일해야 한다. 또 주인이 아닌 월급쟁이가 무엇을 알겠느냐, 라는 비아냥거림도 들려왔다. 나이가 들면서 조직을 나와 조그마한 사업이나 투자로 경제적인 기반을 준비할 때 행복하게 현재의 직장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하루살이는 내일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조직의 대열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자기 자신을 둘러싼 끝없는 환경변화에 민감해야 한다. 개인이나 조직은 이 새로운 물결을 타면서 조금씩 전진할 수 있다. 끊임없이 잠재된 자기 능력을 개발하며 나를 바로 세워나가는 일에 충실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