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릉, 봉은사에 가다
웬 세상에..
아들이 사고를 쳤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신상에, 내 몸에 안 좋은 것은 넘어가자
본인도 후회하고 있으니, 조기 수습이 중요하다
듣다 보면 기분 나쁘니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자
마누라도 모른다
놀랜다고 우리 부자가 이야기 말자고 했다
이미 엎어진 물, 돈으로 해결해야 할 것 같다
추석연휴에 시골 갔다가 좀 쉬고 오니 일어난 사건이다
마음도 심란하여 어디 나설 기분이 아니지만
그래도 발을 옮겨야 한다
그래야 마음속의 화가 좀 식을 것 같다
가을이 오는 데 시샘하듯 가랑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이다
오늘은 2호선 선릉역 10번 출구에서 시작한다
살면서 수없이 거쳤고 봉은사 근처 결혼식장이 있어
지나치지만 한 번도 들어간 적이 없는 선정릉이다
등진밑이 어둡다나.
왕릉이 그저 능이겠지
젊은 시절 바쁜 생활로 신경 쓰거나 관심도 없던 것이
사실이다
사전에 지도를 보니 생각보다 넓다
입구에 들어서니 일요일이라 사람이 꽤 있다
월말에 <조선왕릉축전>을 알리는 플래카드도 보인다
강남 한복판이고 교통이 좋다 보니 외국인도
많이 보인다
홍수가 지면 여기까지 범람하여 왕릉유실을
걱정해야 했다니 지금은 믿기지 않는다
먼저 오른쪽 정릉(중종)을 거쳐 북쪽 숲을 지나
선릉(성종, 정현왕후릉)이 있다
잘 가꾸어놓아 산책길로 최적이다
곳곳의 잔디와 물 빠짐이 좋은 마사토 흙길
졸졸 흐르는 도랑의 물소리
가을이 깊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북에서부터 이제 곧 단풍이 몰려올 것 같다
생각보다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성종 릉이 큰 봉분을 자랑하고
왕비 릉은 거대한 문인석, 무인석으로
좀 떨어져 있다
돌아오는 길에 선정릉 역사문화관에 들려 소박하게
조선왕릉 소개도 있어 둘러보았다
정문을 나서 봉은사로 가기 위해 왼편으로 돌아
북쪽으로 향한다
단독, 연립, 상가건물이 혼재된다
여기도 아무리 비싼 강남이지만 불경기, 시대 흐름은
피하지 못한다
통 건물의 임대와 빈 상가들이 많이 눈에 띈다
한때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고 했는데
이제 까닥 잘못하면 있던 재산 다 날리게 되었다
무리한 대출로 인한 토지 매입, 건축
상가 미분양으로 대출이자, 세금으로 가지고 있던
재산마저 다 날리게 생겼다
곳곳에 빈 점포, 그나마 식당과 fitness센터, 사무실이
명맥을 유지한다
봉은사에 도착하니 새로 봉은사 명상길이 있다
북쪽으로 경기고교 울타리를 철거하고 강남구의
협조아래 만든 길이란다
대나무 길이 좋다. 추천한다.
힘들다, 세상이 각박하다면 나를 돌아봐야 한다
'혹 나도 그렇게 살지 않았나?'
한 바퀴 돌고 대웅전에 들렸더니 사람들이 많다
동남아인도 보인다
역시 이제 교통이 좋아야 한다
산골 속에 고즈넉한 사찰도 좋지만 항상 지근거리에서
수시로 드나들 수 있는 기도와 명상의 사찰도 중요하다
생활 속의 종교로 불교가 거듭나길 기도해 본다
강남, 이 비싼 땅에 보물이 있다
이 보물을 보고 느끼며 나만의 조용한 시간을 가졌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내 것이 없다
신의 영역이며 절대자의 것이다.
목숨, 재물, 명예, 지식, 권력 등
나는 오직 유한한 시간으로 사용하다 다 내려놓고
갈 뿐이다
<노병(老兵)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라는 맥아더장군의 말이 생각난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길은 신앙에서 절대자의 믿음뿐이다
이제 나도 주변을 하나씩 정리할 시간이다
누구나 다 시한부(時限附) 인생을 살다 갈 뿐이다
당신과 나도,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