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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그 고요함으로의 초대

좀 느리면 어때. 멈추지 않았다면 말이야

뭘 욕심껏 해본게 없었다.


중학교때 잠깐 미술에 관심있   줄줄이 있는 동생들을 보며 미술공부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접었다.    소질이 많았다면 들켰겠지 


고등학교때도 공부도 운동도 재밌는 게 없었다.

     지      


대학도 그냥 엄마 아빠 고모 삼촌의 의견에 따라  취업 될 것 같은 과에 들어갔다.

 내  회와 방황은 그때부터였던것 같다. 


어느 순간 나는 나를 원망하고 있었다. 

지나온 날들의 후회와 아쉬움이 나에게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인생을 다시 살고 싶었다. 

고집피워본적도 없는 욕심이 나는 것도 없던 그냥 나는, 다른 나를 꿈꾸고 있었다.


난 누구인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가.


나의 질문들은 나를 폭풍우가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로 밀어놓았다.

머리터질것같던 후회과 피가 마르는 괴로움 속 그 목마름의 끝에서 나는 절망하고 괴로웠다.

 

그리고 서른, 깊은 바다에 들어온 것 같은 고요함과 나를 누르는적당한 수압이 나를 안정케했다.

나에게 서른은 폭풍같은 이십대를 벗어난 새로운 안정이었다.

하고 싶은일들을 시작했고 도전했다.

그동안 왜하는 지 몰랐던 일들이 결국 내 비전과 맞닿아 있었고 거름이 되어주었다. 


돌이켜 보니 20대에 해놓은게 없다. 

뭘하나 진득하니 배워둔것도 없고 하고 싶은걸 마음껏 한것도 아니고 돈을 열심히 번것도 아닌 

그냥 내 20대는 마치 잉여같았다. '그냥'과 '적당히'의 적정선 어딘가.


그 와중 하나 열심히한건 신앙생활. 

해외취업을 다며 멀쩡하던 직장까지 때려치웠   1500명 집회를 꾸려가는 리더 중 한사람이었다.

북한에 관심이 많아 풍선날리는 데도 여러번 쫓아다니고 없는 돈 쪼개서 후원도 했었더랬다.

다 큰    엄마아빠의 불안한 눈빛을 보며 교회에서 하는 리더십성경공부에 매진했었다.

그시간에 나는 정체성을 찾아갔던 것 같다. 


자존감이 회복되고 나의 존재의 가치를 새롭게 부여하던 시기,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나를 사랑하게 되는 시기 

내가 회복하면서 다른 누군가에 아픔에 공감하고 그를 안아줄수있는 여유가 생겼다. 


29살, 방황의 정점을 찍던 한 사건을 맞이하며 나의 20대는 찬란하게 끝이 났다. 

서른인 되던 해 나는 자유함을 느꼈다.   내  고 

나를 사랑하는 순간 나에게 찾아온 자유는 진정한 해갈이었다. 마르지 않을 오아시스.


다시 20대로 돌아가겠냐고 묻는다면


아니. 


안가련다. 치열했던 20대가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 

조금더 욕심껏 살았으면 어땠을까. 더 열정적이었음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나는 충분히 치열했고 충분히 괴로웠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내일의 날은 오늘 내가 만들것이다. 

과거에 얽매이지도 오늘에 절망하지도 않겠다. 아직 내일이 있으니까 


깊은 바다는 폭풍에 요동하지 않는다. 

서른, 그 고요함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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