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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외롭다.

서로에게 연면을 가진다면 좀 더 따듯해질 텐데

영화는 너무 아팠다.
나락으로 밀쳐져 버린 영혼은 슬픔을 가득 안은 채로 춤을 추었다.
현란한 스텝과 과감한 팔 동작, 흥에 겨운듯한 그의 몸부림에 가까운 춤의 배경음악은 지독하리만큼 잔인했
던 분노였다.

애써 웃고 애써 일어났지만 종이인형처럼 까부라졌다.
믿었던 것들에 배신당했고 그는 알고 싶지 않은 진실에 내팽개쳐졌다.

지독한 거절의 끝에 그가 섰다_ 조커.

영화는 쉴틈 없는 몰입을 선사했다. 픽션일 수밖에 없는 고담시에 마치 내가 서있는 듯했다

비 쩍 마른 몸에 굽은 어깨.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꿈을 가진 소시민
익숙한 모습.
그저 망상장애를 겪고 있고 약한 몸을 가지고 있고 어린 시절 학대를 겪었다 해도 그 어떤 폭력도 용인될 순 없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약했고 아팠고 상처 받았다.

차라리 만화 원작에서 처럼 화학 약품에 노출되어 미치광이가 되는 콘셉트이었다면 이렇게 까지 슬프지 않았을 텐데.



현실적인 아픔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영화의 복선이 어떻든, 결국 조커의 망상이었던 어떻든.
그 모습은 너무나 우리의  삶과 닮아있었다.
무엇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눌 수 있던가. 외면하던 사회에 상처 받은 미치광이를 다시금 숭배하는 미쳐가는 사회, 무엇이 정상인가 말이다.



보는 내내 더욱 아팠던 것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아서가 꿈이 있다는 것이었다.
꿈.
짓밟히고 비웃음 거리가 되어 버린 꿈.
그의 편에서 누군가가 나서서 그 꿈을 지지해줬다면.
그랬다면.
아무도 없어서 슬펐던 영화.
웃고 있지만 울고 있는 나약한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해보자.

삭막한 도시에서 우리의 역할은 우리 안에 있는 외로움이 활개 치지 못하게 하는 것.
누구나 수용되어야 되는 존재여야 한다는 것
기꺼이 위로받고 기꺼이 사랑받는 삶을 살아가기를

우리는 모두 다르다.
너무나도 다르다.
그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다름을 감히 예상하거나 판단하는 우리가 되지 않기를
따뜻한 사람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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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고 느슨한 우리가 되기 위한 심야 수다방에 들어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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